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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Jul 22. 2022

가장 따듯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법

차가운 낮의 사회생활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보내는 따듯한 저녁

저녁을 먹으며 특별한 목적 없이 휴대전화의 앱을 이것저것 눌러보던 중 반가운 메시지를 받았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십 수 개의 느낌표와 함께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친구는 최근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왔다며 정리되는 대로 만나자고 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원래 친구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다. 문득 생각났다며 연락하는 감동과 거리가 있으며 '보고 싶다'라고 문자를 보내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문자를 받는 것에 익숙해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도 나도 연애를 하기 시작하면서 주말을 연애에 투자하다 보니 만나는 횟수가 더욱 뜸해졌다. 그럼에도 가장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지난 12년을 전부 알고 있으며 얼마 만에 만나든지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런 친구가 두 명 있다. 언제 연락하든 어색하게 근황을 물으며 돌아가지 않고 본론부터 말할 수 있는 친구, '내가 이런 얘기를 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 없이 전부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꼭 나와 같은 친구. 유유상종은 과학이라는 말처럼 '어쩜 이렇게도 똑같을까'라고 감탄하며 서로의 공통점에 놀라워한다. 같은 음식을 좋아하고 비슷한 취미를 나누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태도와 고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불안과 집착까지 똑같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면 연인의 첫 만남만큼이나 강렬했다. 왜 나는 친구에게 먼저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을까? 왜 나는 친구와 공통점을 찾고 기뻐했을까? 내가 친구를 알아보고 친구가 나를 알아본 것은 운명적이었다.




친구가 첫 직장을 얻고 나서 봤던 때를 잊지 못한다. 겨우 반년 못 봤을 뿐인데 그 사이에 친구는 사회인으로서 성숙해졌다.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화장은 짙어졌다. 반가운 마음을 담아 친구를 껴안자 향수 냄새가 살짝 났다. 흔히 여자들이 친구를 만났을 때 하는 칭찬은 계산적이고 거래와 같으며 가식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와 나누는 칭찬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서로의 눈에 익은 친구의 모습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의 설 익은 모습일 테니 볼 때마다 새로울 수밖에. 하지만 퇴근 후 만난 친구의 모습은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우리 모두 직장인 5~6년 차가 되자 서서히 화장도 옅어지고 옷차림도 편해졌다. 내가 직장인이 된 것에 익숙해진 것처럼 직장인이 된 친구의 모습도 내게 익숙해졌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근황 토크의 재미는 완전히 새로운 소식이 아니라 연재물처럼 지난번 들었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맛이다. '저번에 말했던 대리 기억나?' '그때 그 부장님이 또~'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인물이 떠올랐다. 회사에 대한 불만을 실컷 토로하고 나면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차례가 온다. 누가 결혼을 했고 누가 아기를 낳고 등 어느새 친구들의 소식도 풋풋하지 않다.


대화가 절정에 오르면 서로의 연애에 대해 묻는다. 썸 타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설레게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마침 우리는 둘 다 연애 중이라 서로의 남자친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좋은 데이트 장소는 공유하고 맛집도 추천해줬다. 그리고 묵혀두었던 고민도 나눴다. 친구는 내 고민에 공감하며 자신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말했고 내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위로해줬다. 주제가 조금 심각해지자 친구는 진지한 조언을 건네며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줬다. 친구는 늘 내 편에 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진지한 고민이든 가벼운 푸념이든 전부 털어놓을 수 있었다.




때로는 친구라고 부르는 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원인 모를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친구와 다시 만날 약속을 슬슬 피하기도 한다. 대체로 그런 경우는 서로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거나 위로받지 못했을 때다. 하지만 그날은 허전한 기분 없이 추억과 응원이 가득한 마음으로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연인도 아닌데 같은 길을 왔다 갔다 오가며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그것으로도 아쉬워 진하게 다음을 기약했다.


우리는 서로가 성인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헤쳐나가는 것을 함께 지켜봐 왔다. 그 시절 속의 내가 항상 행복하고 여유롭지는 않았다. 극도로 불안하고 깊은 우울감에 빠질 정도로 암울했던 날들도 있었다. 앞으로도 따듯했다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날들이 반복될 것이다. 그런 날들에 내게 공감하며 응원을 건네는 친구가 있다면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고 힘든 순간들도 그런대로 차분하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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