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권리는 없는데요

드라마 <마인>과 '안 볼 권리'라는 말

by 사하

지난해 겨울쯤이었다. 거실에서 무어라 아득바득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 나가 보니 언니가 텔레비전을 열중해서 보고 있었다. 요즘 인기라던 드라마였다. 그 속에선 주인공들이 핏발을 세우고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부자들이 돈지랄하면서 죽고 죽이고 복수하는 내용 같았다. 뭘 저런 걸 보냐? 타박했더니, 언니는 막장인데 재밌다고 눈을 빛내며 답했다. "재밌긴 무슨..." 하면서 옆에 앉아 몇 분을 봤는데 웬걸, 재밌었다.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에 정신없이 빠져들기를 몇 시간, '대중의 취향'이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며 그렇게 몇 주를 더 챙겨봤다. 나쁘게 말하면 막장, 좋게 말하면 파격적인 내용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갔다.


-뭐야, 쟤 죽은 거 아니었어?

-엉. 다시 살았대.

-어떻게 살아? 관에도 들어갔잖아.

-몰라 살았대.

-재림예수도 아니고 무슨...


요상한 대화를 나누며 결국 최종회까지 보고 말았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에는 이상한 허망함이 남아있었다. '부자들 지지고 볶는 얘기 봐서 뭐하나, 내 인생 지지고 볶기도 힘든데. 심지어 나는 돈도 없다.' 그런 자조적인 생각이었다. 이제 부자들 나오는 막장 드라마는 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작품에 대한 감상을 갈무리 지은 지 몇 달, 나는 다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온갖 재벌들이 나오는 드라마, <마인>이다.


*드라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드라마 <마인> 포스터. 재벌 효원그룹에 발을 들인 전직 배우 서희수 역을 맡은 이보영(왼쪽)과 효원그룹의 첫째 며느리이자 실세인 정서현 역을 맡은 김서형(오른쪽)

시청자로서 솔직한 견해를 밝히자면 <마인>은 스토리적으로 '성실한' 작품은 아니다. 출생의 비밀, 혼외자식의 복수, 불륜과 모성애, 신분을 초월한 사랑까지 '막장 드라마'의 모범적 요소는 다 포함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탐욕에 휘감겨 행패를 부리는 부자들의 모습도 지겹게 봐온 풍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인>을 챙겨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배우 김서형이 연기한 '정서현'이라는 캐릭터의 결말을 보고 싶다는 것.


정서현은 '재벌가의 실세이자 맏며느리'라는 뻔하디 뻔한 키워드를 달고 있지만 권력에 대한 야망을 품고서 욕망을 따르는 악인도, 집안에 혁명을 일으키고 부조리를 뒤엎으려는 선인도 아니다. 그는 능숙하게 사람을 다루고 합리성에 근거해 필요 없는 사람은 내버리는 냉철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비합리적인 온정들을 가감 없이 내비치곤 한다. 정서현의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선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김서형의 절제되고 섬세한 연기(와 엄청난 기품의 용안龍顔)는 은은하고 압도적인 힘으로 '하차'하려는 시청자들을 붙든다. 매력적인 캐릭터만큼 드라마의 무기가 되는 것은 없을 터. 정서현은 뻔하지 않은 재벌의 모습으로 뻔한 전개에 변주를 주며 드라마를 '막장'이라는 오명에서 조금씩 탈출시키고 있다.


드라마 <마인> 중 한 장면.

정서현이라는 캐릭터가 드라마의 '변주'로 꼽히는 요인은 또 있다. 바로 그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다. <마인>은 정서현이 레즈비언임이 드러난 2화 이후 열띤 주목을 받았다. '파격적 비밀', '자극적 소재' 같은 말들이 연예뉴스 기사 헤드라인을 점령했지만, 사실 송출된 장면은 과하게 건전했다.(그냥 여자 둘이 손잡고 이마에 입술 한 번 갖다 댔을 뿐이다.) 민망할 정도로 지나친 반응들은 그만큼 한국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좀비, 구미호, 뱀파이어, 천사와 악마도 등장하는 마당에 성소수자는 미지의 생명체처럼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설사 나오더라도 우스꽝스러운 조연이나 잔혹한 살인마로 등장할 뿐이다.


성소수자는 말 그대로 '소수'이니까 당연히 보이지 않는 거라는 사람들은 드라마 속 '한지용'과 죽이 잘 맞겠다. 재벌가의 서자이자 내면에 폭력성을 감추고 있는 한지용은 정서현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 가족을 속인 죄"가 있지 않냐며 그를 협박한다. 정서현에게 정체성을 '속인 죄'를 묻는 한지용의 편리한 논리는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준다. 성소수자는 없어서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보이면 위협받기 때문에 없어'지는' 거다. 존재하는 것을 지워버리고 부러 없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는 보통 이런 것을 혐오라고 부른다.


정서현을 협박하는 한지용(이현욱, 왼쪽)

정체성을 빌미 삼아 협박하고 존재를 부정하는 행동은 드라마 속 악인만이 저지르는 일은 아니다. 극 중 정서현의 애인 '최수지' 역을 맡은 김정화 배우의 남편 유은성 씨의 혐오발언은 악이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무지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유은성 씨는 김정화 배우의 역할에 대해 "우리는 동성애 반대한다", "동성애 아니다. 나중에 정상으로 돌아간다"같은 말들을 '저질렀다.' 도대체 어떤 조바심으로 성급한 혐오를 공연히 내지른 건지 몰라도, 그는 단 한 문장으로 불가능을 시도했다. 존재를 반대한다는 것. 듣도 보도 못한 논리다. 세상에 "고양이를 반대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누가 반대한다고 해서 고양이가 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가 고양이인 것을 반대할 권리 같은 건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그러니 '반대한다'라는 말은 '내가 보고 싶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 척 해라'라는 의미와 같다. 그 폭력적이고 저급한 감정을 논리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동성애 반대' 같은 언어를 탄생시킨다.


그 터무니없는 언어를,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미 접한 바 있다.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다. 2017년 대선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는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동성애 반대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문재인은 "네, 반대합니다."라고 답했다. 한 국가를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의 입에 의해 수많은 시민들은 존재를 부정당했고, 그 입들은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안에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거나 성소수자를 '안 볼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가 하도 막혀서 막힌 둥 만 둥 한 말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껏 드라마를 왜 봤나 싶다. 막장보다 더한 막장 대사들이 뉴스에서 나오는데 말이다. 웃고 즐길 수 없다는 점에서 장르는 블랙코미디겠지만.


2017년 4월 26일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항의하는 성소수자 및 권리 지지자들 출처: 한겨레


'동성애 반대', '안 볼 권리', '사회적 합의.'

참 그럴듯한 말이다.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퍽 민주적인 단어들이고, 내뱉어지는 순간 수많은 사고思考들이 멈춰버리기 쉬운 언어들이다. 그 말들이 횡행하고 있는 공간이 어떻게 뒤틀려있는지 본다. 그 말들이 목청껏 외쳐질 동안 말해지지 못한 삶을 본다. 버젓이 존재하는 사람에게 '너를 반대한다'라는 말은 얼마나 우스운지,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안 볼 권리'는 얼마나 얄팍한지, 널려있는 차별과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합의가 덜 되었다'라는 말은 얼마나 같잖은지. 차별할 자유, 혐오할 권리. 두루뭉술한 말로 예쁘게 싸매 봤자 내용물은 달라지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이고 혐오는 혐오다. 아무리 세상이 막장이래도 그런 걸 '자유'라고, '권리'라고 부를 순 없다. 그런 권리는 이 세상에 없다.


작년 6월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차별을 막겠다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법안이 2007년 처음 발의된 후 14년 동안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기이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차별의 금지'가 대단한 검열이라도 되는 것처럼 파드득 떨며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차별금지법은 차별하는 순간 잡아다가 감옥에 넣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일을 못하고 밥을 못 먹고 거리를 못 다니고 병원을 못 가는, 그야말로 '막장'인 상황을 막기 위한 최전선을 구축하겠다는 거다. 그 최전선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이 모든 정체성에서 동떨어진 채 존재하는 사람이란 없고, 단 하나의 요소라도 차별받을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차별받을 수 있다. 반대로 한 사람의 최악을 사회가 막아줄 수 있다면 나의 최악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는 그런 식으로 이어져있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갖다 붙인 '권리'의 참뜻이 그런 거다. 나의 인격과 존엄이 훼손되지 않도록 내 삶을 단단히 붙잡아주는 것. 그 실답고 미쁜 말을 남을 해치는 아프고 나쁜 말로 쓰지 말자는 거다.


드라마 마인 6화 중. 수지를 떠올리며 웃는 서현.

유은성 씨는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사과의 대상은 기묘하게 비켜나 있었다. 배우와 스태프, 시청자들에게까지 사과한 그는 본인의 완고한 무지에 의해 순식간에 존재를 '반대'당한 성소수자들은 사과문에서 말끔하게 지워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번 주도 어김없이 <마인>을 볼 것이다. 누가 반대하건 말건, 정서현은 드라마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나에겐 그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으니까. 세상의 그 어떤 편견과 차별도 깨부수고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결말. '막장 드라마'의 시청자답게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해피엔딩을 바라고 있다. 그 엔딩이 이 세상에도 기어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6월 23일까지 진행되는 차별금지법 청원에 참여해주세요. 손가락만 조금 움직여서 우리 같이 해피엔딩을 봅시다.

링크: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C25F4B51E8D2312DE054A0369F40E8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