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써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스물여덟 명의 구독자님. 그리고 우연히 이 글을 눌러보신 분들. 열여섯 번째 편지네요. 저는 사하입니다.
우선 안부부터 묻겠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7월 초의 날씨치곤 징그럽게도 덥지요. 안부를 묻는 마당에 외람된 말씀이지만, 우리는 결국 멸망으로 가고 있나 봅니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사는 일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으니까요. 너희는 이제 돌이킬 방도가 없다고 경고하느라 햇빛이 이토록 격렬한 지도요.
나는 잘 살고 있는데 왜 초를 치냐고 하신다면 미안합니다. 저라는 애가 좀 그래요. 비약이 심하다고 할까요, 절망이 과하다고 할까요. 이제는 암울한 뉴스를 보아도 화내지를 않아요.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지구 끝까지 쫓아’ 처벌하겠다는 경찰청장의 말이나 청소 노동자들의 농성이 ‘폭력’이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학생의 얼굴 같은 것을 듣고 보면서 저는 그냥 생각하죠. 죽자. 역시 죽자. 그냥 다 같이 죽고 새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 이딴 식으로요.
최근 들어 이 타고난 비관이 극성을 부린 탓에, 근 몇 주는 저에게 침묵과 회피의 시기였습니다. 아침에 눈 뜨기도 기력이 모자란데 뉴스는 무슨, 하며 눈 감고 귀 막았습니다. 당연히 글도 못 썼죠. 마음에 들어오는 재료가 하나도 없었어요. 아니 사실, 드릴 수 있는 ‘좋은 진심’이 없었어요. 당신에게 역시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들려드릴 순 없잖아요. 그것은 죽어도 싫었습니다.
여기까지가 편지가 늦어진 첫 번째 변명입니다. 이제 다음 변명을 들려드릴 건데요. 저번 편지의 말미에 ‘편지 쓰기를 다른 방식으로 시도할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꿍꿍이, 실은 이미 시도했습니다. 아래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세요.
https://brunch.co.kr/@relayletter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다른 방식’이란 ‘함께 쓰기’입니다. 우연한 인연으로 만난 분께서 감사하게도 서로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제안해주셨거든요. 벌써 세 번 정도 편지를 주고받았는데요. 왜 진즉에 알리지 못했냐면, 자신이 없었어요. 수신자가 구체화된 편지에서는 발신자도 구체화될 수밖에 없잖아요. 조금 더 날 것인 저를 보여줬다가 다 도망가면 어떡해요. 저에게서 ‘나쁜 진심’을 발견하시면 어떡해요. 그보다 더 절망적으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시면 어떡해요. 제 글이 아무 의미도 없으면요.
그런저런 조악하고 비겁한 이유로 아예 절필을 해버릴까 고민하면서요.(알아요. 놀랍도록 극단적이죠.) 저의 작은 방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요. 해 질 무렵 화장실에 빛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무지갯빛이요. 그것을 보다가 생각했어요. 아, 알려주고 싶다. 들려주고 싶다. 내 방에 빛이 들어왔다고. 실시간으로 멸망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극단적으로 절망하는 이 나약한 사람의 좁디좁은 방에 빛이 들어왔다고. 당신께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게 된 겁니다. 이토록 엉망진창 제멋대로인 저이지만, 당신이 함께해준다면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세상은 계속 멸망하고 저는 계속 절망할 테지만 당신은 제 글에서 무지개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무엇이든 써내려가다 보면 저 또한 무지개를 찾아낼 단단한 마음이 될 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함께 쓰기’의 ‘함께’에는 당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찾는 운명 공동체인 거예요. 멋지죠?
이곳에서도 글을 계속 쓸 테지만요. 당분간은 ‘이어달리기’의 사하로 자주 찾아뵐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궁금해지는 드문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어달리기로 놀러 오세요. 아직은 이것저것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지만 진심만은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일종의 성장 드라마처럼 읽어주시기를. 저희의 편지에 숨어있는 무지개도 기쁘게 찾아주시기를.
저는 어디서든 당신의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2.07.03. 사하 보냄.
P.S 아래 노션 홈페이지에서도 저를 찾아보실 수 있으세요! 평안한 일요일 밤 되시기를.
https://relayletter.notion.site/relayletter/316e2d82e524480c8701430bd9e6df3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