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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Feb 09. 2021

부끄러움에 대하여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말로 내성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남들 앞에 나서거나 주목받는 걸 싫어한다. 다수의 사람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내가 인생에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다.

오래전 교생실습을 나간 중학교에서 수업을 해야 했다. 학생들은 물론 담당 선생님이 수업을 듣고 평가를 하는 시간이었다. 교단에 선다는 사실이 너무 떨리고 긴장이 돼 우황청심환을 먹었지만, 약을 먹고도 교단에서 내 목소리는 천 갈래로 갈라진 듯 떨렸다. 떨리는 내 목소리가 내 귀에도 이상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지. 지금도 몇몇 장면들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얼굴이 붉어진다. 물론, 그 후로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은 접었고, 다시 교단에 설 일은 없었다(발표 때문에 교직을 포기한 건 아니고, 선생님이 되기엔 내가 너무 모자라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곳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을 온전히 즐기거나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학생 때 친구 따라 간 강남역 나이트클럽에서도 나는 춤을 추지 못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깨를 으쓱하는 동작마저도 할 수 없을 만큼 어색했다.



처음 누군가와 만나면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내내 떠드는 것도 나다. 그래서 상대방은 내가 꽤나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시끄러운 사람은 정말 별로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어색한 침묵을 어떻게든 깨보려는 나만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특히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있을 때, 어색함은 더 견디기가 힘들었다. 단 한순간의 침묵도 견디기가 힘들어, 상대에게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을 상세하게 물어보게 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런 내가 자상하거나 친절한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최근엔 오프라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운동도 학원도 모두 스톱이다. 대신 온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늘어났다. 처음엔 온라인이니까, 직접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니니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줌 강좌를 신청했다. 첫 강좌가 열리던 날, 내 얼굴과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 여기저기 나타난 순간, 나는 또다시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건 가리려야 가릴 수도 없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수줍음이었다. 오프라인 강의실에서는, 적어도 딴짓(낙서를 하거나 책상을 내려다보거나 창밖을 보거나)을 할 수 있었지만, 줌으로 모인 공간에서는 그런 게 어려웠다. 고개를 들고, 모든 사람들(화면)을 바라보게 된다. 그 화면들 안에는 나를 바라보는 나도 존재한다. 고개를 숙이고 딴 짓을 하는 내 모습 역시 존재한다. 저절로 어깨가 굳어진다. 한 명씩 발표를 할 땐, 얼굴이 급격하게 경직되는 게 느껴졌다. 주목받는 게, 싫었다. 나는 결국 그 강의를 포기하고 말았다. 나중에 오프라인으로 다시 강의가 열린다면 그때 들어야겠다는 자기 위안만 남긴 채였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결심했을 땐, 부끄러움을 이기고 내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쓰다 보면, 어떤 길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역시 부끄러움이 문제였다. 나 자신이 드러나는 걸 꺼리는 내가, 누구에게나 오픈된 장소에 글을 남기는 일은 벌거벗고 거리에 나서는 기분과 비슷했다. 그래서, 온전히 나에 대해서만 쓰려던 글들이 오히려 어떻게 하면 나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까, 궁리하는 글이 되었다.


이 부끄러움을 극복하게 되면, 나 자신을 더 잘 보일 수 있게 될까.

이건 고작 온라인의 한 페이지일 뿐이라고, 여기서까지 도망치면 어디로 갈 생각이냐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묻는다.

진실을 감추는 게 아닌 진실을 드러내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껍질을 단단히 한 채, 아주 조금씩만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작정하고 거짓임을 밝히고 쓰는, 하지만 어쩌면 가장 진실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럼에도 브런치에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이고, 글쓰기가 내게 주는 편안함과 위로 때문일 것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도 심장이 좀 더 단단해지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건, 그저 나 자신과의 협상이다.

우물에서 나와 넓은 세상으로 나서 보자고, 이제 그 햇살을 느껴 보자고,

내 안의 부끄러움을 달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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