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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Feb 06. 2021

욕망과 소유 사이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면, 행복할까?


예전부터 내겐 작은 소망이 있다.


'잔디가 깔린 2층 집. 정원엔 강아지와 아이들이 뛰놀고, 나는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햇살 속 나무들을 바라본다. 데크 위엔 고양이가 무방비로 잠들어 있고, 저 멀리서 가끔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려온다. 이층 집 위 작은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밤새 키득거리며 별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꿈꾼다...'


여기까지 보면 산속 전원주택의 흔한 모습인 것도 같다. 그러니 죽자고 덤벼들면 이룰 수 없는 소망은 아닐지도 모른다. 요즘 아파트 가격을 보면, 산속 전원주택은 오히려 저렴한 편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와 딸들이 겁이 엄청(정도가 아니라 극도로)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집 주변엔 숲이 우거져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동시에 주변에(무섭지 않을 만큼) 다른 집들도 많아야 하고, 그 엔 모두 좋은 이웃들이 살아야 한다. 좋기만 해선 안된다. 아무 때나 불쑥불쑥 찾아와 하소연을 해서도 안 되고, 우리 집 정원이나 아이들, 애완동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나는 예민한 사람이니까). 물론 흉악범 내지는 그 비슷한 부류들은 근처에 얼씬도 해선 안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다. 바로 내가 벌레를 극도로(죽을 만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숲에 사는 벌레들이 함부로 우리 집에 침입해서는 안된다. 이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해보니, 결국 내가 산속 전원주택에 살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인가 보다.

(무서운) 사람과 (무서운) 벌레.

솔직히 이 둘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함께 해 온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게다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쉽게 없어질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러니 최대한 내가 피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 둘은 세상 어디에나, 그리고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와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산다. 정기적으로 수목 소독을 하고(그래도 벌레가 다 사라지진 않는다. 나비나 잠자리, 개미를 무서워하진 않으니 상관없다. 하지만 딸들은 개미도 너무 싫어한다), CCTV와 순찰을 해주니 무서움도 덜하다. 하지만,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단독주택을 꿈꾸고, 자연과 여행을 좋아하는) 언제든 기회가 되면 아파트를 탈출하리라 생각한다. 생각만 하면 다행인데, 실제 일을 저질렀다가 큰일이 날 수도 있다(실제 일을 저질러 봤고, 뼈저린 교훈을 얻었지만, 그래도 생각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다). 내가 제주로 가지 못하는 진짜 이유 중엔 주택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이유도 존재한다. 나에게 제주는 단독주택의 꿈을 이루어줄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고집이지만 제주까지 가서 아파트에 살 수는 없다.


숲 속 주택을 소유하고 싶은 꿈은 내가 좀 더 나이가 들고, 무서움이 좀 더 완화되면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벌레 따위 아무렇지 않고, 나쁜 사람을 피하는 지혜나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꿈은 머릿속 한 곳에 고이 접어둔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힘들 것 같다. 그러니 이건 갖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나중으로 미루는 거라고 나를 합리화해 본다.






그렇다면 요즘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건 뭘까?

 

생각해보니 이것도 집이다. 그런데 좀 다른 모터홈, 캠핑카다. 누구에겐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누구는 이미 가진 것일 수도, 누군가는 아니 뭐하러 그 돈 들여 그런 헛짓거리를? 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물건에 대한 소유는 그 세 가지 반응이 아닐까.


이미 가진 자와 가지고 싶어 하는 자, 무관심한 자.


코로나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면서, 캠핑카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이 점점 더 강해진다. 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마음에 드는 캠핑카의 가격은 상상을 넘어선다. 게다가 지하주차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캠핑카는 주차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 이거야말로 숲 속 주택의 너른 주차장이 아니면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캠핑카 관련법으로 화물차처럼 차고지 증명(어디에 주차를 할 것인지 증명서를 제출하는 것)까지 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우는 높이 매달린 포도를 먹고 싶었지만 닿을 수 없어 먹지 못한다. 그리곤 결국 생각을 바꿔 저 포도는 먹어봤자 시기만 할거야,라고 생각하며 돌아선다. 먹고 싶은 마음과 먹을 수 없는 상황(행동)에 불일치가 일어나자 저건 시어서 맛이 없을거야,라고 자신을 합리화한 것이다(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부조화라 부른다고 한다).

숲 속 주택과 캠핑카는 나에게 신포도 같은 존재다. 둘 다 원하기는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엔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이라거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라며 내 결정을 합리화하는 중이다.


봄이 오면, 아쉬운 대로 텐트를 들고 숲 속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고민에 빠지겠지.

정말 저 포도는 실까? 나 사실 신 거 좋아하는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쉬워하려나.


여우에게 밟고 올라갈 돌을 찾거나 포도가 달린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따 먹은 포도가 달다면 다행이지만,  포도가 덜 익어 시기만 했다면 어땠을까?

못 먹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먹어 보니 맛이 없었다면, 후회도 미련도 생기지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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