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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Feb 05. 2021

제주에 가면



올 초부터 내내 제주앓이 중이다. 훌쩍 떠나고 싶은데, 코로나가 발목을 잡는다.


제주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 익숙한 제주 냄새부터 푸근하다.

고향이 따로 없는 나에게, 제주는 고향 같은 넉넉함으로 기억된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고향이지만, 상상 속 고향이지만, 제주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힘들거나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공항으로 달려가, 비행기를 타고, 아주 짧은 비행이 끝나면, 내가 만든 고향에 도착한다.

그 기억 때문에 오늘처럼 추운 날이면 제주가 더욱 그립다.


제주에 처음 가본 건 대학 졸업여행이었다.

졸업을 앞둔 같은 과 동기들과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밤 새 배를 타고 제주에 갔다. 그때 왜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그 먼길을 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넓은 바닥에 여려 명이 둘러앉거나 누워 12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멀미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때의 제주는 그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 후 꽤 오래 제주를 잊고 살았다. 결혼 후, 바로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나면서 대신 신혼여행을 제주로 갔다. 3월의 찬바람이 불던 제주에서,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설렘에 들뜬 나는, 제주보다는 곧 만나게 될 호주의 캥거루와 코알라를 더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제주를 즐겼다기보다는 신혼여행에 충실했다는 생각만 든다. 그 후 호주와 미국에 잠깐씩 머물렀고, 기회만 생기면 해외로 여행을 다녔다.




다시 제주를 찾은 건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였다. 짧은 비행과 따뜻한 날씨, 붐비지 않는 바다와 오름이 눈에  들어왔고, 마음을 뺏겼다.

아이들과 한달살기를 2번 하면서, 육아로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었고, 아이들과도 더 깊은 정을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지금도 제주 한달살이를 떠올리며 추억하길 즐긴다. 언젠가는 타지도 못하는 스쿠터를 타고 제주를 한 바퀴 돌겠다며 아이들을 하나씩 뒷자리에 태우고 달리기도 했다. 그 스쿠터 여행은 결국 거센 바람과 운전미숙으로 서귀포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도전한 특별한 모험으로 남아 있다. 그 밖에도 일주일 살기나 차박, 혼자 올레길 걷기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주를 만났다. 그래도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다시 제주에 가고 싶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에 강아지까지 키우게 되면서, 목포까지 차를 몰고 가 배를 타고 제주에 가기도 했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비행기보다 우리 차로만 이동하니 코로나 걱정도 덜 되고 좋았다(물론 목포까지 5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즘 제주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1월에도 여러 차례 항공권만 검색하다 포기했다. 그런데 어제오늘 증세가 심각해졌다. 거의 결제까지 갔다가 멈췄다. 아이들은 방학을 했는데, 코로나로 학교에도 못 가던 때와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 초등 2학년 생활을 모두 잃은 아이들이 가엾다.  

솔직히 코로나로 답답했던 지난 한 해를 생각하며, 올 한 해 아예 일년살기를 해볼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다. 3학년이 되어도 온라인 학습을 해야 할 게 뻔하고, 나 역시 코로나 블루가 심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도 몇 번 제주 이주를 계획했지만 번번이 포기한 경험이 있다. 아마도 겁이 많아서일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고 걱정하는 게 많아 덜컥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도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변화 중 하나이다. 아니, 아프고 나서 증세가 더 심해지기는 했다. 그래서, 젊을 때 많은 것을 해봐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일단 부딪혀보기를,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엄마인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큰일이다.



나는 정말 제주에 갈 수 있을까? 일 년을 살고 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내가 찾으려는 답은 무엇일까?

우물쭈물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훌쩍 제 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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