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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y 09. 2021

부석사에 가면

부석사라는 절이 있다. 아직 가 본 적은 없다. 오래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신경숙 작가의 <부석사>라는 단편소설과 같은 이름지만 소설의 내용은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 매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찾아 읽었다는 것, 내게 부석사는 절 이름보다 소설로 먼저 각인되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 후로 오랫동안 부석사는 잊고 살았다. 소설가가 되겠다던 꿈 역시 함께 돌 무더기 사이에 숨겼다.

요즘, 잘 풀리지 않는 관계들의 문제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사람 사이에서 사는 일이, 사람인 나에겐 왜 이리 어려운 일인지,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어 졌다.


5월이라 어디를 가도 후회는 없을 거였다. 두꺼운 옷도 필요 없으니 가방도 가벼울 것이다. 읽고 싶던 책 한 권과 꼭 필요한 것 몇 개만 챙겨서 기차든 고속버스든 올라타고 싶었다. 아마도 십여 년 전의 나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땐 그러고 다녔었다. 버스를 타고 속초로, 대천으로,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강촌으로 혼자 떠나고는 했었다. 가끔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가 며칠 걷다 오기도 했었다. 그러고 나면 조금 숨을 쉬는 게 나아졌었다.

오래전 일들이다.


며칠 동안 이십 대에 그랬던 것처럼, 어디로 가볼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문득 부석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아무 연고도 없고, 연고는커녕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름만 아는 그 절이 떠오른 거다.

마치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유토피아마냥 한번 뇌리에 떠오른 단어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본다. 우선 청량리역에서 영주행 기차를 탄다. 기차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는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가져온 책을 펴보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에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두 시간쯤 지나 영주역에 내려 부석사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선다. 이십 분쯤 기다려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절 앞에 나를 내려두고 떠나간다. 평일 오후지만 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천천히 넓은 절 내를 돌아본다. 대웅전을 기웃거리고, 소원을 비는 등이나 기와가 있다면 오래된 소원 한 마디쯤 적어볼 수도 있겠다. 스님과 마주친다면 공손히 합장으로 예를 드리고, 부석사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면 한참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람들의 발소리는 분주하겠지만 바람 소리가 모든 소음을 덮을 것이고, 나뭇가지는 파르르 잎을 날릴 것이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쉬다 정류장으로 돌아오겠지.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아무하고도 얽히지 않고, 그래서 인연이란 보이지 않는 줄에 얽혀들 지도 않겠지.

그러려고 떠난 여행이니 그만하면 됐다고, 나는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생각할 것이다.




부석사는 나에게 이제 하나의 이미지와 상징으로만 남는다. 찾아갈 기회가 온다 해도, 부러 피할 것이다. 그곳은 내 머릿속에서만 온전하게 존재하는 곳이자, 내가 한때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부러운 문장이라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바라던 소설가의 소설 제목으로만 존재한다.


어떤 것들은 이렇게, 멀리 있음으로, 그 온전함을 훼손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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