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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ul 05. 2021

캠핑의 이유

첫 캠핑이 마지막 캠핑이 되지 않았던 이유

2013년 여름.

18개월에 접어든 쌍둥이 딸은 무엇이든 만지고 빨고 걷고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좁은 빌라에서의 그 여름은 견디기 힘들었고, 호기심이 폭발하는 시기의 아이 둘을 앞뒤에 매고 어르고 달래느라 지칠 대로 지치는 날들이었다. 돌까지 낮밤이 바뀐 두 아이를 밤새 모유 수유한 탓에 편하게 잠을 자본 게 언제인지 몰랐다. 쌍둥이를 임신하고 30킬로 가까이 늘었던 몸무게는 아이를 낳고 1년 만에 오히려 임신 전보다 마이너스를 기록할 만큼 체력은 바닥 나 있었다.


돌이 지나면서 모유를 끊고 이른 저녁부터 아이들을 업어 재우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힘들었지만 다행히 낮밤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8시쯤 아기띠에서 잠든 아이들을 눕히고 나면 힘든 하루가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물론 일찍 잠든 대신 자주 깨고, 새벽부터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밤에 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여름은 왠지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디든 떠나고 싶었고, 자연이 그리웠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여행을 자주 다녔었다. 호주와 미국에서 잠시 살았을 때도 그 나라들이 가진 대자연이 부러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매주 산에 다니며 자연 근처를 맴돌았다.

어느 날, 아이들을 업고 동화책을 읽는데 동물들이 캠핑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산속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운 모습이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됐다.



딸이 그린 치노와 캠핑


오래전 지리산 종주를 하며 대피소에서 잠을 잔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산에 오를 생각만 했지, 산에서 텐트를 펴고 잠들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자연 속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아이들은 계곡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 떠나자, 캠핑 그게 뭐라고.




우선 기본적으로 필요한 캠핑용품을 검색했다. 무엇보다 텐트가 필요했다. 남편은 싼 텐트를 사서 일단 가보자고 했다. 18개월 쌍둥이와 함께라는 단서를 달자, 첫 캠핑이 마지막 캠핑이 될 확률이 높았다. 설치가 쉽고 가성비가 뛰어나 보이는 텐트와 당장 필요한 몇 가지 물품들을 구매했다(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첫 캠핑 땐 일단 집에 있는 물건들을 이고지고 갔다. 부루스타와 냄비, 양념들, 배게, 이불 등등).

어린아이들 짐도 만만치 않았다. 기저귀와 분유, 젖병에 각종 육아용품들까지. 그때 우리 차가 아반떼였는데 카시트에 두 아이를 앉히고 남는 뒷좌석 바닥까지 짐을 실었다.


남편이 동영상으로 텐트 치는 걸 공부하는 사이, 성격 급한 나는 서둘러 캠핑장을 예약했다. 용화산 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연휴양림에 자주 갔었다. 조용하고 숲이 있고 국립이라 가격도 적당했다. 그런 익숙함 때문에 첫 캠핑지로 자연휴양림을 선택했다.


정신없이 짐을 챙겨 춘천에 있는 용화산으로 떠났다. 서울에서 3시간이나 걸리고 산길을 한참 올라가느라 텐트를 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오토캠핑장은 차를 데크 옆에 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산속에 위치한 데크로 향하던 중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진흙이 되어버린 땅에 차 바퀴가 빠졌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차를 산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차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일단 아이들을 아기띠에 앞뒤로 매고 차에서 내렸다. 배가 고픈지 울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겐  분유를 타서 젖병을 물렸다. 남편은 바퀴 빠진 차에서 짐을 챙겨 와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일단 이너텐트부터 설치했다. 그런데 전체 텐트를 설치하려고 보니 데크 사이즈가 텐트보다 작았다. 그때는 데크 사이즈 같은 건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냥 이너텐트 위에 타프만 치고 자기로 했다. 여름이라 추위 걱정은 없었지만, 여름이라 더 무서운 일이 생길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짐을 옮기고 텐트로 아이들을 데려다 놓으니 그제야 조금 정신이 차려졌다. 남편은 힘들게 차를 구덩이에서 구해냈고,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분유와 함께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아이들을 위해 준비해 간 이유식을 먹이고, 부루스타로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웠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랜턴을 밝히고 아이를 한 명씩 업고 고기를 먹었다. 정말 꿀맛이었다,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무슨 맛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산속 화장실은 깨끗했지만, 여름밤이 되자 불을 보고 찾아온 수많은 벌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온몸이 경직되고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때 본 희한한 벌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 가족 사이에서는 일명 '귀뚤괴물'이라 불리는데, 아주 커다란 귀뚜라미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꼽등이와 귀뚜라미를 반반 섞어 놓은 외양에 크기가 손가락만큼 크고 바닥과 천장을 기어 다니는 수십 마리의 괴생명체라니... 지금 생각해도 호러영화가 따로 없다.


저녁을 먹고 양팔에 아이들을 끼고 텐트 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참 자고 있는 새벽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였다. 일기예보엔 없던 비였고(여름 산이라 그랬겠지만),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 이너텐트는 말 그대로 텐트 안에 치는 텐트라 방수 기능이 없었다. 남편은 서둘러 방수가 되는 전실 텐트를 펴 이너텐트를 덮었다. 나는 빗속에서 아이들을 지키며 이게 무슨 일인가, 비몽사몽 생각했다.


비가 계속 오면 어쩌지, 텐트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집이라면 좋을 텐데, 아, 집에 가고 싶다. 아니 그보다 애들이 깨면 안 되는데, 그게 더 무서운데. 대충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비에 쫄딱 젖은 남편이 들어오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데크 위라 물이 텐트 안으로 범람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 후로 나는 솔직히 우중 캠핑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비를 보거나 빗방울에 대해 쓰는 감성은 쉬울지 모르지만, 텐트를 치거나 걷고, 흙탕물에 모든 집기들이 젖어드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우중 캠핑 따위는 개나 주라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에 젖은 짐들은 최대한 빨리 다시 펴서 말려야 하는데, 엄청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 아닌 한, 며칠 안에 다시 캠핑을 가야 한다. 캠핑이 캠핑을 부르는 것이다.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거죽처럼 덮어 놓은  텐트를 걷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춘다. 그제야 숲 속 캠핑장이 눈에 들어왔다. 잠이 깬 아이들은 뭐가 좋은지 방긋방긋 웃고, 괴물 같던 벌레들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한바탕 폭우가 모든 더러움을 씻어가 나무 끝마다 매달린 물방울마저 영롱하다.

8월 한 여름, 나무는 미칠 듯 푸르렀고, 숲은 자신이 가진 모든 품을 우리에게 내어주는 듯했다.


 



바람이 속삭인다.

이게 삶이란다, 작은 인간아.
밤새 비바람에 모든 걸 잃을까 두려웠지?
지금은 어떠니?
그 밤이 있었기에, 지금 네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었단다.

그 밤과 이 아침을 기억하렴.
폭우는 언제든 다시 너를 찾아오겠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대자연의 관대함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젖은 텐트는 트렁크에 그대로 넣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여전히 푹푹 찌고, 작은 집도 여전히 더위와 습기로 불쾌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캠핑을 떠났다. 중고로 팔 때 팔더라도, 일단은 비에 젖은 텐트를 말려야 했다. 젖은 텐트를 팔 수는 없으니까.


텐트 말리러 한 번 더,

지난번엔 너무 더웠으니까 한 번 더,

불멍을 못했으니까 한 번 더,

아이들이 가자고 하니까 한 번 더...

그렇게 무수한 이유와 함께 다시 캠핑을 떠났다.



월악산의 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는 200번이 넘는 캠핑을 다녔고, 아이들은 열 살 꼬마 숙녀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 1년 넘게 거의 캠핑을 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취향이 변한 탓이었다. 어려서는 아무렇지 않았던 개미를 너무나 무서워하고, 벌도 송충이도 너무 싫어한다. 지저분한 화장실을 질색한다.

아주 짧은 시기를 빼고는 개미가 없는 캠핑장은 없고,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벌레들을 막아낼 방법도 없었고, 화장실을 내가 청소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지난해엔 막내 강아지 치노까지 입양해, 캠핑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언택트 시대에 캠핑은 점점 더 유행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캠핑과 이별을 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 밤이 반복됐다. 폭우는 과연 멈출까, 의심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다시 바람의 속삭임을 기억해냈다.

폭우의 끝에서 기다릴 달콤함을 애써 꺼내보았다.


내 생각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아무 맥락 없이 어떤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끝이자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 바로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캠핑카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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