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la Jul 14. 2021

1달러 캠핑카 여행

2018년 가을, 우리는 호주에 갔다.

그 해, 나와 내 가족은 다시 없을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이겨냈고, 나는 힘들었던 우리를 위로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호주는 오래전 남편과 둘이 어학연수를 갔던 곳이었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자는 약속으로 남겨진 곳이었다.


그런 의미들로 채워진 여행에 무언가 색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1달러 캠핑카 여행이었다.

호주는 땅이 넓어 한 도시에서 캠핑카를 빌린 사람이 다른 도시에 도착하면 그 캠핑카를 다시 원점으로 이동하는데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그래서 캠핑카를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저렴하게 빌려 가져다주는 서비스가 생겼다고 한다. 캠핑카가 필요한 사람이 자신이 방문하려는 도시와 날짜가 맞으면 1~5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캠핑카를 빌려 캠핑카 회사로 옮겨주는 것이다.


첫 도착지인 브리즈번에서 시드니까지 이동하는 비행기표가 비싸 고민이었는데 캠핑카를 타고 이동하면서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안 그래도 캠핑카를 꼭 한번 타보고 싶었던 우리에겐 행운의 순간이었다. 물론 우리의 일정에 맞는 캠핑카를 찾아야 하는데 이는 순전히 운에 길 수밖에 없었다. 출국 이틀 전에야 운 좋게 일정에 딱 맞는 브리즈번 출발 시드니 도착 4인용 캠핑카가 예약 앱에 떠서 바로 예약을 했다.


우리가 빌린 4인용 캠핑카. 도요타 시에라급으로 화장실을 제외한 작은 부엌과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작지만 필요한 건 다 있었던 캠핑카



'크루징 모토 홈'이라는 캠핑카 회사의 브리즈번 지점에서 예약한 캠핑카를 빌렸다. 보험료와 의자, 테이블 렌트비를 지불한 후 설명을 듣고 시드니로 출발했다. 시드니까지는 중간에 오토캠핑장에 들러 2박을 할 예정이었다. 캠핑카 운전은 처음이고 호주는 운전석이 오른쪽이라 처음엔 긴장을 했지만, 사고 없이 무사히 시드니에 도착했다.




1시간쯤 달려 골드코스트에 도착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서퍼들은 보이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한인마트에 들러 저녁에 먹을 음식들을 사서 냉장고를 채웠다.

이날 밤은 유명 캠핑 체인인 '빅 4' 암바 지점에서 묶기로 했다. 하루에 운전은 4시간을 넘지 않기로 하고 서둘러 첫 야영지로 향했다.


호주 캠핑장 체인 빅 4. 첫날 묶은 암바 지점


예약한 사이트에 차를 세우고 전기와 수도를 연결했다.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지만 조금 늦어져도 어떻게든 해결이 됐다. 의자를 설치하고 캠핑장 옆 호수를 구경했다. 캠핑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넓었고, 거대한 나무들 사이에 고요하게 캠핑카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중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는 노부부가 많았는데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서두르는 일 없이, 천천히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친구 같은 배우자와 함께 하는 느긋한 삶을 그려봤다.


테이블과 의자로 세팅한 캠핑사이트
캠핑장 옆 바다 같은 호수
아래위 2명씩 잘 수 있는 구조. 조금 좁기는 했지만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다음날까지 시드니에 도착하려면 오늘은 어제보다 많이 이동해야 했다. 짐들을 정리하고 두 번째 목적지인 빅 4 포스터지점으로 출발했다.


코프스 하버 바닷가에서 만난 노견
비가 그친 후 하늘에 뜬 무지개
휴게소 풀밭에서 찾은 네 잎 클로버



중간에 구경할 곳이 많아 어두워지고 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이트로 이동해 어제처럼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하고 저녁 준비를 했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날이 점점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은 야외에서 밥을 먹기는 쌀쌀해, 좁긴 해도 캠핑카 안에서 저녁을 먹었다.


둘째 날 머문 빅 4 포스터. 저 나무는 도대체 몇 살일까.


캠핑카 안에 전자레인지가 있어 햇반과 소시지를 데우고 김치와 사발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외국에서는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한 끼가 된다.


다음 날 아침 캠핑장
포스터 바닷가에서 만난 펠리컨들, 덩치는 크지만 겁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호주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렇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동물들과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시드니로 들어가는 날. 약속시간에 차를 반납하기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겨 출발했다.

캠핑카 반납 장소인 시드니 지점에 도착해 차에 문제는 없는지 체크한 후 차를 반납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사용한 연료값까지 캠핑카 회사에서 돌려주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이득이 된 여행이었다.


짧지만 너무나 소중했던 2박 3일 캠핑카 여행. 우리는 다음엔 꼭 뉴질랜드나 유럽으로 캠핑카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하며 캠핑카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안녕 캠핑카~




어떤 여행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호주에서 캠핑카와 함께 한 2박 3일은 우리에게 캠핑카에 대한 간절함을 심어 주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캠핑카를 소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마음에 드는 모델을 찾기가 힘들었고, 사악한 가격과 주차문제, 관련법, 마땅한 캠핑장까지 생각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캠핑카에 대한 꿈을 고이 접어 추억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아마 코로나가 없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코로나로 아이들과 집에서 부딪히며,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캠핑을 가려고 했지만, 벌레가 무섭고 화장실이 더럽다고 투덜대는 예민한 여자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었다. 숙소는 코로나와 치노 때문에 선택의 폭이 줄었고, 마침내 오래전 접어 두었던 꿈을 다시 꺼냈다.




캠핑카를 계약하고, 1달 만에 드디어 우리의 캠핑카가 도착한다. 캠핑카 이름은 '라라'로 정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좋아하는 제이슨 뮤라즈의 노래 '라이프 이즈 원더풀'의 후렴구인 '랄라라라 라라라 라이프 이즈 원더풀~'에서 따온 것이다.


인생이 원더풀 한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라라를 타고 떠돌다 보면 원더풀 한 순간들을 많이 찾게 될 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태양을, 둥근달과 손톱 같은 달을, 떨어지는 별과 몰아치는 바람을, 초록빛 나무들 사이의 그림자와 빗방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힘든 일을 겪을 때, 비록 엄마는 곁에 없어도, 그 순간들을 아주 잠시라도 기억해 준면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하게 지구에 머물다 떠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캠핑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