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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전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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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an 01. 2022

쉼,

아이처럼



날이 좋다.


새해 첫날, 하늘이 맑다.

일단 그거면 된다.


대단한 게 없어도,

명소에서 떠 오르는 해를 보지는 못 했어도,

눈 뜨고 일어난 아침에 하늘이 맑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편히 잠든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올해는 시작이 좋다.


물론, 늦잠을 자기는 했다. 새해 첫날인데.

떡국을 너무 많이 먹었다. 맛있는 게 앞에 있으면 다이어트는 머나먼 행성 얘기다.

정리 안하는 딸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기다려주면 알아서 할 아이들인데.

남편에게 지저분하다고 했다. 나도 그리 깔끔한 것도 아니면서.


어젯밤 건조기에 넣어두고 까먹은 빨래를 아침에야 꺼냈다.

21년의 빨래가 내게 왔다. 21년의 옷을 다시 입는다.

어젯밤 송년회를 핑계로 남편과 와인을 마셨다.

21년 마신 와인의 숙취가 22년의 나를 따라왔다.


이게 고작 새해 아침, 3시간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새로울 게 없어서, 스스로 놀랐다.





22년이라고 크게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내 삶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만족하고 머무르는 것.


지금껏 살면서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일 중 하나였다.

늘 바쁘게 움직이고, 일을 벌이고, 불만을 토로하고, 나 자신을 다그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프고 나서야, 

죽음에 한발 가까워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지혜 같은 걸까.


그렇다고 과거의 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뭐든 시작하고 만들어낸다.

목표를 세우고, 실패하면 괴로워한다.

그리고 금새 다음 스텝을 준비한다.


피곤하다면 피곤한 삶이다.


그런 나에게 코로나 시대 2년은 오히려 쉬는 법을 가르쳐준 시간이었다.

강제로 집에 머물고, 내면을 파고들 시간이 많아졌다.




올해는 계획이라는 걸 세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무 계획없이 보내자고(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빼고).


새해 첫날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다.


이런 날, 시간은 제멋대로 흐른다.

아무 때고 배가 고프면 먹고, 씻고 싶으면 씻고, 읽고 싶으면 읽고, 보고 싶으면 본다.

웃고 싶으면 웃고, 눕고 싶으면 눕는다.


마치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된다.

철학가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삶에서 이런 날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러니 아끼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삶은 고행이라는 걸 알고 있다.

피할 수도, 대충 뭉갤 수도, 운만을 바랄 수도 없다.


내가 나에게 오늘을 쉬라고 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내일부터 나는 또 무언가를 향해 달려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22년 내가 그리는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아무리 새해의 첫날이라해도,

아니 그래서 더더욱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며 아이처럼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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