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나처럼 망설이며 들어오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들어선 여성. 눅눅한 안개 속을 뚫고 들어왔음에도, 젖은 기색 하나 없이 시원시원한 인상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큰 키였고, 그에 못지않게 시선을 끈 것은 그녀가 걸친 흰색 옷이었다. 나와 같은 흰색 옷이었지만, 마치 그 아이처럼 그것은 규율에 묶인 제복이 아니라 그녀가 당당하게 선택한 하나의 색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른 저녁 시간에 유일하게 구석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했다. 놀랐다기보다는, ‘웬일이지?’ 하는 듯한 가벼운 의아함이 맑은 눈에 스쳤다.
그녀가 자리를 찾기도 전에, 홀을 정돈하던 그 아이가 먼저 그녀를 발견하고 맑게 웃었다. 그것은 나에게 보여주었던, 비밀을 공유하는 듯한 눈웃음과는 또 다른, 익숙하고 편안한 미소였다.
"어, 오늘은 일찍 왔네요?"
"그냥.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늘 앉던 자리 괜찮아?"
"당연하죠."
그 아이는 익숙하게 고갯짓으로 창가 쪽 다른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쪽은 더 이상 쳐다보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 둘 사이의 당연하다는 듯한 공기가, 나를 이 공간의 이방인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내 앞의 접시로 시선을 내렸다.
붉은 요리. 어지러웠던 마음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때마침, 고소하게 구워진 생선 껍질의 냄새와 새콤한 토마토 향이 다시 한번 내 의식을 붙잡았다.
[붉은 소스를 곁들인 도미 요리]. 나는 묵직한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먼저 나이프 끝으로 노릇하게, 거의 황금빛으로 구워진 껍질을 살짝 눌러보았다. ‘파삭-’ 하는, 귀까지 즐거워지는 맑은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껍질과 그 아래의 눈처럼 새하얀 속살을 한 조각 잘라냈다. 접시 바닥에 흥건한 붉은 소스를 듬뿍 묻혔다. 소스는 도시의 음식처럼 밋밋한 질감이 아니었다. 잘게 으깨진 토마토 과육과 허브 조각들이 엉겨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혀에 닿는 순간, 바삭한 껍질이 경쾌하게 부서졌다. 그리고 곧이어, 마치 잘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부드럽고 촉촉한 속살이 흩어졌다.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붉은 소스였다.
이것은 카레가 주었던 혼돈스럽고 묵직한 폭풍과는 정반대의 감각이었다. 맑고, 선명하며, 경쾌했다. ‘태양의 맛’이라는 설명이 과장이 아니었다. 잘 익은 토마토의 기분 좋은 산미와 진한 감칠맛이 폭발했고, 그 뒤를 이름 모를 허브들의 향긋함이 쫓아왔다. 눅눅한 안개를 단숨에 걷어내는 듯한, 쨍한 맛. 카레가 닫힌 문을 억지로 열어젖힌 거칠고 뜨거운 반란이었다면, 이 요리는 이미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맑고 투명한 햇살 같았다.
그날 내가 본 하늘의 색. 강렬한 주황색과 붉은색이 바로 이 접시 위에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그 맛을 음미했다. 이것은 또 다른 깨달음이었다. 카레가 나를 깨웠다면, 이 요리는 나에게 방향을 속삭이고 있었다. 붉은색. 그것은 혼돈의 파랑을 지나 도달한, 열정의 색이자 노을의 색이었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지 않고, 다시금 한 조각을 잘라 붉은 소스를 흠뻑 묻힌 다음 입에 넣었다.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 쨍한 햇살 같은 소스가 입안에서 다시 한번 어우러지는 그 황홀경에 빠져있을 때였다.
"사장님, 저도 저걸로 주세요. 그 붉은 소스 도미요."
맑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익숙한 메뉴 이름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그 키 큰 여성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나는 포크를 든 채 어색하게 굳어버렸다.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살짝 눈을 찡긋하며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이 도시의 그 누구에게서도 받아본 적 없는, 안개를 꿰뚫는 듯한 맑고 당당한 신호였다.
그녀는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나지막하지만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너무 빤히 쳐다봤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앞의 접시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너무 맛있게 먹길래요. 이른 저녁에 혼자 와서 저렇게 집중해서 먹는 건, 정말 맛있다는 뜻이잖아요. 덕분에 나도 먹고 싶어졌어요."
그녀의 말에 귓불까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도시에서 타인의 시선을, 그것도 이렇게 맑고 직접적인 시선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물며 내가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나는 왠지 모르게 변명처럼 중얼거리며 황급히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 나를 황홀하게 했던 붉은 소스가, 이제는 마치 나를 고발하는 증거처럼 선명하게 빛나는 듯했다. 나는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었지만, 이전의 자유로운 황홀경은 사라져 있었다. 나이프가 접시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까 봐 조심스러워졌다. 생선 살을 잘라내는 손길은 로봇처럼 뻣뻣해졌고, 소스를 묻히는 동작마저 계산적으로 변했다.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입에 넣었지만, 쨍하던 태양의 맛은 나의 어색함에 가려 절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았다. 비웃는 것도, 그렇다고 동정하는 것도 아닌, 그저 맑은 눈으로 나를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저기,"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긴장하며 고개를 들었다.
"거기 앞에 앉아도 될까요?"
그녀는 내 맞은편의 비어있는 나무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 도시에서, 낯선 사람과, 그것도 정해진 규격의 식당이 아닌 이런 공간에서 마주 앉는다는 것. 너무나 낯선 생각치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 입은 뇌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였다.
"…네? 아… 괜찮습니다."
말이 튀어나오고 나서야,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괜찮다니, 뭐가 괜찮다는 거지? 나는 지금 이 낯선 감각만으로도 벅찬데!’
내 안의 모범생이 위험 경보를 울려댔다. 나는 이 혼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도움을 청하듯 그 아이가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좀 더 빨랐다. 그녀는 나의 어설픈 허락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 시선보다 좀 더 빠르게, 마침 다른 테이블을 정리하던 그 아이를 향해 손을 들고 말했다.
"이쪽으로 자리 옮겨도 되지?"
그 아이는 나와 그녀를 한 번씩 힐끗 보더니, 그 특유의 맑은 눈웃음을 지었다.
"마음대로 해요. 내 친구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모범생도 너무 긴장할 필요 없고."
‘친구’,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도시에서 누군가를 저렇게 선명하게 ‘친구’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정말이지 오늘은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벅찬 일들이 계속 다가오는듯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그녀는 그 아이의 허락이 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자신의 물잔과 소지품을 들고 내 테이블로 걸어왔다. 낡은 나무 의자가 기분 좋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가 내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