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바닥을 긁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좁은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낯선 타인과 마주 앉는다는 것. 그것은 철저히 개인의 공간을 중시하는 이 도시에서는 겪어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러한 모습에 내 안의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려댔지만, 그녀는 그런 나의 긴장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 혹은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식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며 나를 바라보았다.
“서채윤(徐彩昀)이야. 채색 채(彩)에, 햇빛 윤(昀). 다채로운 햇빛이라는 뜻. 내 이름이야.”
그녀는 물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대뜸 자기 이름과 그 한자 뜻까지 풀어서 던졌다. 통성명. 그것은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지만, 이 도시에서는 불필요한 리스크를 떠안는 행위였다.
게다가 이름의 뜻이라니. 이 도시에서 이름은 그저 수많은 흰색 입자들을 구별하기 위한 건조한 식별 코드에 불과했다. 누구도 자신의 이름에 담긴 고유한 염원이나 색채 따위를 타인에게, 그것도 초면에 전시하지 않는다. 하물며 ‘다채로운 햇빛’이라니. 이 무채색의 안개 속에서는 지나치게 눈부시고 비효율적인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들고 있던 포크를 허공에 멈췄다. 너무나 선명하고 구체적인 자기소개에, 마치 예고 없이 타인의 벌거벗은 내면을 마주한 것처럼 민망하고 어지러웠다. 내 이름을 말해야 하나? 아니면 적당히 눈인사만 하고 넘겨야 하나? 내가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침묵을 고르고 있는 사이, 그녀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그쪽 이름은 굳이 안 알려줘도 돼. 표정을 보니 엄청 고민하는 것 같아서. 그냥 내가 누군지는 밝혀야 밥 먹는데 체하지 않을 것 같아서 먼저 말한 거야.”
그녀는 경쾌하게 웃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의 침묵을 ‘거절’이나 ‘무시’가 아닌 ‘고민’으로 단번에 읽어내는 직관. 그리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려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먼저 쏟아내는 화법. 그녀의 말에는 필터가 없었다. 생각이라는 거름망을 거쳐 정제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생겨나는 그 즉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나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한 마디를 뱉기 위해 속으로 세 번을 삼키고, 상대의 기분과 상황의 효율성을 따져본 뒤에야 가장 안전한 단어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녀의 언어는 날것 그대로였고, 그 속도감은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부담스러웠다. 그녀의 존재감이 테이블 위로 쏟아지는 붉은 소스처럼 너무나 강렬해서, 내 몫의 공간마저 침범당하는 기분이었다.
“왜… 합석하자고 한 거예요?”
나는 겨우 필터링을 거친, 가장 무난하고 방어적인 질문을 던졌다. 채윤은 턱을 괸 채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대답했다.
“궁금해서.”
“뭐가요? 이 메뉴가요?”
“아니, 그쪽이.”
채윤은 시선을 내 접시가 아닌 내 눈에 고정한 채 또렷하게 말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쪽만 보였어. 구석에 처박혀서 밥을 먹는데, 무슨 종교 의식 치르는 사람처럼 먹더라고. 그냥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음식 하나하나랑 대화하는 것 같달까? 이 도시 사람들, 다들 죽지 못해 먹거나 시간 때우려고 먹잖아. 표정도 없이. 그런데 그쪽은 달랐어. 진짜 ‘식사’를 하고 있더라고. 그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
그녀의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숨고 싶었다. 나의 은밀한 감각의 축제가, 나만의 샛강이라 믿었던 그 시간이, 타인의 눈에는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기묘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나의 그 내밀한 변화를 단번에 알아본 사람. 남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것을 멈춰 서서 관찰하고, 자신의 흥미를 위해 낯선 사람의 테이블에 불쑥 끼어드는 무모함.
그녀는 위험했다. 예측할 수 없었고, 통제되지 않았다. 그녀 옆에 있으면 나까지 이 안개 속에서 눈에 띄는 존재가 될 것만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그 불안은, 케이블카 문을 열기 직전에 느꼈던 감각과 닮아 있었다. 기피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알고 싶은 모순적인 이끌림.
“그래서 앉았어.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라면, 같이 밥 먹어도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아서.”
채윤은 그렇게 말하며 주방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마침 그 아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타이밍 좋네. 내 것도 나왔다.”
그녀는 마치 우리가 십 년지기 친구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웃어 보였다. 나는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경계심을 세우기도 전에 무장해제 시키는 저 뻔뻔함이라니. 나는 그녀가, 그리고 그녀가 몰고 온 이 낯선 파동이, 내 샛강을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오늘의 식사가 결코 조용히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그 아이가 채윤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자, 그녀는 그 아이를 향해 찡긋 윙크를 보냈다. 아이 역시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의 교감마저도, 나에게는 없는 종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채윤은 기다렸다는 듯이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망설임이나 탐색의 시간은 없었다. 내가 껍질의 바삭함을 확인하기 위해 나이프 끝으로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던 것과 달리, 그녀는 거침없이 나이프를 밀어 넣었다. ‘파삭’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림과 동시에, 큼직한 생선 살이 단번에 잘려 나갔다.
그녀는 잘린 조각을 붉은 소스에 굴리듯 듬뿍 찍었다. 흰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붉게 물든 덩어리가 그녀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오물오물.
볼이 기분 좋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각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음-!”
그녀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 도시의 식당에서는, 아니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날것의 소리였다. ‘음식을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불문율 따위는 그녀의 식탁 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 미쳤다, 이거.”
그녀는 꿀꺽 삼키고는, 입가에 묻은 붉은 소스를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았다.
“그쪽이 왜 그런 표정으로 먹었는지 알겠네. 이거 그냥 생선이 아닌데? 입안에서 뭐가 막 터져. 토마토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것 같아.”
그녀의 표현은 투박했지만, 정확했다. 내가 속으로 ‘태양의 맛’이니 ‘노을의 색’이니 하며 문학적인 수사를 붙이고 있을 때, 그녀는 그 감각을 직관적인 언어로 뱉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포크를 움직였다. 이번에는 더 과감했다. 구운 토마토와 허브, 생선 살을 한데 모아 입안 가득 넣었다. 그녀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는 어떤 계산도 없었다. 나는 맛을 ‘분석’하고 ‘음미’하려 애썼다면, 그녀는 맛을 ‘체험’하고 ‘즐기고’ 있었다.
붉은 소스가 그녀의 붉은 입술 위로 번졌다. 흰색 옷에 튈까 봐 조심조심 먹던 나와 달리, 그녀는 붉은색이 자신을 물들이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그녀가 음식을 씹을 때마다 턱 근육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고,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그것은 단순한 섭취 행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력이 또 다른 생명력을 흡수하는 역동적인 과정처럼 보였다.
“와, 이 산미(酸味) 진짜 좋다. 정신이 번쩍 드네.”
채윤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마치 샤워를 막 끝낸 사람처럼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 도시 음식들은 다 밍밍하잖아. 죽은 것처럼. 근데 이건… 막 소리 지르는 맛이야. 나 여기 있어! 하고.”
그녀는 포크로 접시를 가리키며 킬킬거렸다. 소리 지르는 맛. 그 표현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언어는 거름망이 없는 만큼, 본질에 닿아 있었다.
“맞아요. 저도… 깨어나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조심스럽게 맞장구를 치자, 그녀는 씹던 것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묘하게 간지러웠다.
“그치? 깨어나는 기분. 딱이다, 그 표현.”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은 테이블 위의 붉은 요리만큼이나 선명하고 강렬해서, 나는 잠시 눈이 부시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가 다시 식사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내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나의 내밀한 의식이었던 식사가, 그녀와 함께하니 왁자지껄한 축제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포크를 들어 그녀를 따라 조금 더 크게 생선 살을 잘라내 보았다. 그리고 소스를 듬뿍 묻혀 입에 넣었다.
여전히 새콤하고, 여전히 고소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혼자만의 고독한 황홀경이 아니라, 누군가와 ‘맛있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데서 오는, 낯설지만 따뜻한 생동감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나는 그녀의 속도를 쫓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포크를 움직였다. 침묵의 도시는 문밖으로 밀려나고, 오직 접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그녀의 감탄사만이 이 작은 우드톤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접시가 바닥을 드러내 갈 즈음,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내 안의 긴장도 포만감과 함께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다.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공백을 메웠다. 그녀는 정말이지 맛있게, 그리고 깨끗하게 접시를 비워내고 있었다. 나는 물 컵을 만지작거리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자주 오시는 것 같은데… 이 요리는 안 드셔보셨나요?"
말을 뱉고 나서야 나는 흠칫 놀랐다. 내 입에서 나간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질문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굳이 타인의 식사 취향 따위를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궁금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어 불필요한 대화의 물꼬를 트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침묵은 금이고, 타인과의 거리는 안전선이라는 것이 내 오랜 신조였으니까.
하지만 붉은 소스의 강렬한 맛 때문일까, 아니면 앞서 보여준 그녀의 거침없는 태도에 전염된 탓일까. 내 안의 견고한 방어벽에 작은 틈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내 질문이 혹시 무례하게 들리지는 않았을까 싶어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채윤은 마지막 남은 도미 살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꿀꺽 삼킨 뒤, 냅킨으로 입가를 훔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처음이야. 이 가게 메뉴판에 있는 건 거의 다 먹어봤는데, 이건 계속 남겨두고 있었거든."
"남겨… 두었다고요?"
맛이 없을까 봐 걱정했다거나 비싸서 망설였다는 대답을 예상했던 나는 의외의 단어 선택에 되물었다. 채윤은 턱을 괴고 빈 접시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응. 아껴뒀지. 이 요리는 설명부터 너무 강렬하잖아. ‘지친 당신의 바다를 붉게 물들일 태양의 맛’이라니. 이런 건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먹어치우면 안 될 것 같았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맑은 눈으로 나를 직시했다.
"나는 음식도 타이밍과 파트너가 있다고 믿거든. 혼자 우울할 때 먹어야 맛있는 게 있고,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먹어야 하는 게 있고. 그런데 이 요리는… 누군가와 아주 뜨겁게, 에너지를 나누면서 먹어야 할 것 같았어. 혼자서 이 붉은색을 감당하기엔 좀 벅차 보였달까? 그래서 계속 미뤄두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딱 그쪽을 본 거야."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혼자서도 저 붉은색을 씩씩하게, 아주 전투적으로 받아내고 있는 사람을. 그래서 생각했지. 아, 오늘이다. 저 사람이라면 이 요리의 파트너가 될 수 있겠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논리적이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먹고, 맛있어 보이면 주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세상은 그런 단순한 인과관계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축과, 사물에 부여하는 그녀만의 의미가 존재했다. 메뉴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파트너’와 ‘타이밍’, 그리고 ‘색채’를 고려하는 그녀의 사고방식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흰 죽을 넘기던 나의 세계와는 완벽하게 대척점에 있었다.
그녀는 나의 식사 행위를 ‘전투적으로 받아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저 맛을 음미하려 했을 뿐인데, 그녀의 눈에는 내가 온몸으로 붉은색과 싸우거나 혹은 그것을 흡수하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덕분에 진짜 맛있게 먹었어. 혼자 먹었으면 체했을지도 몰라, 너무 강렬해서.”
채윤은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 앞에서 다시금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녀는 나와 너무 달랐다. 나는 세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했다. 안개 밖의 세상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파란 하늘은 어떤 의미인지, 이 붉은 맛은 나의 감각을 어떻게 깨우는지. 모든 것에 주석을 달고 정의를 내려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감각’하고 ‘반응’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분석이 아니라 체험이었고, 의미가 아니라 순간의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가 망설이며 문을 두드릴 때, 이미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 안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파트너로 삼아 메뉴를 결정하는 무모함이나, 타인의 식사 모습에서 자신의 타이밍을 발견하는 그 직관적인 도약들을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곧 거부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이해할 수 없음, 그 완전한 ‘다름’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문득 며칠 전 산 정상에서 보았던 노을이 떠올랐다.
나는 그토록 간절하게 ‘다채로운 세상’을 보고 싶어 했다. 흰색이 아닌 다른 색,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닌 수만 가지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상. 나는 그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안개를 뚫고 올라갔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멀리 있는 풍경이었고, 닿을 수 없는 하늘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웠지만, 여전히 나와는 분리된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다채로움이 내 앞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풍경으로서의 다채로움이 아니라, 살아 숨 쉬고, 말을 걸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실체로서의 다채로움. 그녀는 내가 안전한 거리에서 관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 식탁을 침범하고, 내 침묵을 깨뜨리고, 나의 정해진 궤도를 흩트려놓는 ‘사건’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다채로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색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나와 전혀 다른 색을 가진 존재와 부딪히고, 섞이고, 때로는 그 강렬함에 압도당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꿈꿨던 이상향인 동시에,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혼돈이었다.
“왜 그렇게 빤히 봐? 내 얼굴에 소스라도 묻었어?”
채윤이 내 시선을 느끼고 자신의 볼을 문질렀다.
“아… 아니요. 그냥… 신기해서요.”
“뭐가?”
“그냥… 모든 게요. 메뉴를 고르는 이유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을 거는 용기도… 저랑은 너무 달라서.”
내 솔직한 고백에 채윤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다르면 재미있잖아. 똑같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 이 도시 사람들, 다 똑같은 옷 입고 똑같은 표정 짓고 다니는 거, 난 좀 지루하거든. 그래서 그쪽이 마음에 든 거야. 흰색 옷을 입고 있는데, 속에는 울긋불긋한 게 막 끓고 있는 것 같아서.”
그녀는 테이블 너머에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나지막하게 읇조렸다.
“나랑 다르면,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여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그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그녀를 보며 느꼈던 그 이질감과 호기심을, 그녀 또한 나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배우고, 따르고, 모방하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나는, 붉은 소스를 입가에 묻힌 채 당황해하는, 서툴지만 분명한 색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었다. 흰색 안개 속의 부품이 아니라, 고유한 맛과 향을 가진 요리처럼.
나는 물 컵을 들어 마른 입을 축였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뜨거워진 속을 식혔다. 불안과 설렘, 거부감과 이끌림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이 식사가 끝나고 문을 나서면, 나는 다시 안개 자욱한 거리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 테이블 위에서 나눈 대화와 맛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말한 ‘다른 세상’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찾던 샛강은 혼자서 조용히 흐르는 물줄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때로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지류를 만나 흙탕물이 되기도 하고, 물살이 빨라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바다로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빈 접시를 내려다보며,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