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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트 Nov 13. 2021

유기체로서의 나

타인과 세상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느냐를 말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상호작용의 주체인 '나'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나'는 인간일 것이다. 척추동물이고, 포유강이며, 영장목의 사람과의 호모사피엔스가 '나'라는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틀일 것이다. '당연한 건데 이게 왜?'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나를 말하기 위한 가장 첫걸음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 '나'를 말하기 위한 첫 번째 파트는 가장 당연하지만 가장 쉽게 간과하는 사실인 '유기체로서의 나'이다.

 
나는 명백한 생물학적 기능과 한계를 가진 유기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견지할 때 나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다. 뇌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편향과 착각들이 있음을 염두할 수 있고, 나의 반응성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임을 견지하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것과 인지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부분들부터 하나씩 돌아보자. 나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생리적인 편함과 불편함을 느끼는가?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한다고 하니, 불편한 것들부터 생각해보자. 배고플 때, 다치거나 질병 등으로 통증을 느낄 때, 수면부족이나 과로로 피곤할 때, 화장실이 급할 때, 바퀴벌레를 봤을 때... 그 외에도 몇몇이 더 떠오르지만 대략 이러한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럼 이것들이 왜 나에게 불편할까? 이러한 것들은 생존에 악영향을 끼치는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나 질병, 에너지의 부족과 과소비 등 우리가 흔히 건강이라 부르는 것을 위협하거나 위협할 가능성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뇌는 생존을 위해 예측을 하기에 당장의 문제는 물론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부정적으로 느낀다. 이러한 것은 좋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쁘다'의 가치판단이 들어갈 것은 아니다. 그저 스스로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가치의 판단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인지된 불편함에 대한 대응이다. 불편함에 대해 우리는 피하거나 제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무수히 많다. 선택하고 통제해야 할 부분은 불편함의 범위가 아닌 대응에 대한 부분이다.  다만 이를 좀 더 잘해내기 위해 스스로가 불편함을 언제 느끼는지 인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편함을 느낄때 바로 감정을 그대로 분출하기 보다는 '지금 내가 에너지가 부족하구나'라고 인지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하는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스스로 불편한 점을 돌아보며 생각해볼만한 부분이 있는데, 사실 나의 둔감은 타인과 사회와 같은 외부에 대한 둔감함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나 스스로에 대한 부분은 민감하다(바퀴벌레를 보면 소리부터 지른다). 그렇다. 둔감함이라는 특성은 모든 부분에 일반화되어 적용되지는 않는다. 바퀴벌레를 무서워하고, 신체의 고통에는 주변에서 엄살이라고 할 만큼 예민하고 민감하면서도 나를 향한 타인의 미묘한 감정이나 분위기, 압력 등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둔감하여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다가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저 사람 왜 너한테 저러냐고 말하면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며 속으로 당황하며 뭔지도 모르면서 겉으론 그냥 괜찮다고 말한 적도 심심치 않게 있다.


나는 스스로의 신체 감각에는 민감하면서도 타인을 읽는 감각은 둔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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