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요트

by 루트

기석 아저씨의 조언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나에게 등대와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꽉 쥐고 다시 식당으로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다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장님과 그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기석 아저씨에게 들었던 '윕 홀(Weep Hole)' 이야기를 쏟아냈다.

정도원이라는 사람이 가진 강박의 정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더러움'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압력'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안전한 배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점까지.
내 말을 끝까지 들은 아이는 잠시 침묵했다. 녀석은 펜을 돌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노트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안전한 배출구."

아이가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겉보기엔 완벽하게 통제되고 밀폐된 것처럼 보여야 해. 그가 안심하고 다가올 수 있도록.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가진 색깔과 압력이 그대로 살아있어야 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는 펜을 딱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이 확신으로 반짝였다.

"그 '구멍'을 여는 행위가, 바로 그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해."

"그 사람의 손으로?"

"응. 우리가 억지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그가 스스로 안전장치를 해제한다고 느끼게 해야 해. 그래야 거부감이 없을 테니까."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생각난 게 있어. 당장 테스트해보자."

우리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냉장고에서 흰 살 생선—아마도 광어인 듯했다—과 각종 허브, 레몬, 그리고 하얀 유산지를 꺼냈다.

"정도원이 원했던 건 '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지 않는 흰색 요리'였지. 그리고 '소란스러운 냄새'를 싫어했고."

아이는 생선 살 위에 소금과 후추, 그리고 향이 강하지 않은 딜과 타임 같은 허브를 아주 조금만 올렸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살짝 뿌린 뒤, 이 모든 것을 하얀 유산지 위에 올렸다.

녀석의 손길은 섬세했다. 유산지의 가장자리를 접고 또 접었다. 마치 소중한 편지를 봉투에 넣듯, 혹은 비밀스러운 문서를 밀봉하듯.
이윽고 접시 위에는 하얗고 불룩한 종이 주머니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내용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냄새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완벽한 밀실. 완벽한 흰색.

"이거야."

아이가 말했다.

"프랑스식 생선 요리, '파피요트(Papillote)'. 종이로 감싸서 오븐에 굽는 방식이지."

"이게… 통할까?"

"지금은 그냥 종이 덩어리 같지? 하지만 오븐에 들어갔다 나오면 달라질 거야."
아이는 밀봉된 종이 꾸러미를 오븐에 넣었다.
잠시 후, 오븐 안에서 열기가 가해지자 납작했던 종이 주머니가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재료에서 나온 수분과 와인의 증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종이 안에서 맴돌았다.
종이 주머니는 가운데가 봉긋하게 솟아오르며 팽팽해졌다.
마치 깊은 숨을 들이마신 채 꾹 참고 있는 사람의 가슴팍처럼, 혹은 무언가 할 말이 가득 차오른 입술처럼, 위태로운 긴장감을 머금은 흰색 돔이 되었다.
​"다 됐어."
​아이가 오븐에서 요리를 꺼내 내 앞에 놓았다.
여전히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저 안으로 뜨거운 열기를 품은 채, 고요하게 부풀어 있는 하얀 언덕일 뿐이었다.
​"이제 네가 정도원이 되어서, 이걸 열어봐. 칼로 가운데를 가르면 돼."
​나는 나이프를 들었다.
팽팽하게 긴장된 종이의 표면에 칼끝을 댔다.
툭, 하고 건드리자 바스락거리는 맑은 소리와 함께 종이가 찢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슈우우-'
​가느다란 김이 찢어진 틈으로 안도의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동시에, 종이 안에 갇혀 응축되어 있던 향기가 틈새를 타고 피어올랐다.
상큼한 레몬 향, 은은한 허브 향, 고소한 생선의 풍미, 그리고 알코올이 날아간 와인의 달콤한 향기까지.
그것은 폭발적인 소란함이 아니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방문 틈으로 스며나오는 빛줄기처럼, 은근하지만 확실하게 코끝을 파고드는 밀도 높은 향기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와…."
​아이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그 사람의 '숨구멍'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었다.
겉은 규율과 통제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뜨거운 생명력이 고요하게 요동치고 있는 요리.
그리고 그 생명력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그 막을 찢어야만 하는 요리.
이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이것은 정도원이라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가장 우아한 형태의 제안이었다.
​"완벽해. 이걸로 가자."
​다음 날, 나는 공강 시간을 이용해 시청 감사국을 찾았다.
정도원의 사무실은 예상대로였다. 모든 것이 직각으로 정렬된 책상, 먼지 한 톨 없는 흰색 바닥, 그리고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한 공기.
그는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 마치 기계 부품처럼 일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그 건조한 목소리에 예전 같았으면 위축되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책상 위에 정갈하게 타이핑된 흰색 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다.
​"지난번 감사관님이 지적하신 사항들을 반영하여, 새로운 표준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그제야 정도원이 고개를 들었다. 안경 너머의 회색 눈동자가 나를 훑었다.
"학생이 직접 온 겁니까? 사장이 아니라?"
​"저희 식당의 메뉴 기획을 돕고 있습니다. 감사관님의 말씀대로 '효율성'과 '위생', 그리고 '자극의 최소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색소와 강한 향신료는 모두 배제했고, 재료 본연의 맛만을 살린 조리법입니다."
​나는 그가 좋아할 만한 단어들만을 골라, 감정을 섞지 않고 보고하듯 말했다.
그의 눈에 흥미라기보다는 의외라는 빛이 스쳤다. 그는 아마 내가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따지러 왔을 거라 예상했을 것이다.
​"벌써 포기하고 시스템에 순응하기로 한 겁니까? 생각보다 싱겁군요."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순응이 아니라, 증명하려는 겁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가 추구하는 맛이 시스템을 해치는 '오염'이 아니라,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능'이라는 것을요. 오늘 저녁,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방문해 주십시오. 준비한 메뉴가 감사관님의 기준에 미달된다면, 깨끗이 영업을 접겠습니다."
​'영업을 접겠다'. 배수진을 친 나의 제안에 정도원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자신의 논리와 기준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이 틀릴 리 없다는 오만함, 그리고 자신의 지적으로 인해 무질서한 공간이 교정되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통제 욕구.
나는 바로 그 점을 자극했다.
​그는 잠시 봉투를 만지작거리더니, 짧게 말했다.
"좋습니다. 7시. 1분이라도 늦거나 준비가 미흡하다면, 그 즉시 폐쇄 조치 들어갑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정중히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초대장은 발송되었다. 이제 무대는 준비됐다.
​저녁 7시.
안개가 유독 짙은 밤이었다.
식당 안은 평소와 달랐다. 왁자지껄한 손님들은 없었다.
우리는 오늘 저녁, 오직 정도원 한 사람만을 위한 예약을 받기로 했다.
다른 손님들의 소음이나 냄새가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하기 위한, 그리고 온전히 그와의 승부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사장님은 주방 안쪽에서 묵묵히 칼을 갈고 있었고, 그 아이는 오븐 앞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홀의 가장 중앙 테이블을 닦고 또 닦았다.
​7시 정각.
정확히 초침이 12를 가리키는 순간, '딸랑-' 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둔탁한 소리가 아니었다. 오늘은 왠지 그 소리마저 비장하게 들렸다.
​정도원이 들어왔다.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흰색 정장 차림. 그는 텅 빈 식당을 둘러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혹은 의아한 듯 미간을 좁혔다.
​"약속대로 다른 변수들은 차단했군요."
"오직 감사관님의 평가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앉으시죠."
​내가 의자를 빼내 주자, 그는 먼지를 확인하듯 의자를 한 번 훑어보고는 앉았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방 커튼 뒤에서 그 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준비한 메뉴는 뭡니까."
"바로 내오겠습니다."
​나는 주방으로 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그 아이가 쟁반을 들고 나왔다. 쟁반 위에는 하얀 접시가, 그리고 그 접시 위에는 하얀 유산지로 감싸진 요리가 놓여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곁들임 반찬도 없었다. 오직 하얀 접시와, 그 위에 놓인 봉긋한 하얀 종이 언덕뿐.
그 모습은 음식이 아니라, 마치 멸균실에서 막 꺼내온 의료 도구처럼 보이기도 했고, 밀봉된 기밀문서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도원의 눈이 커졌다.
"이게… 뭡니까?"
​"감사관님이 원하시던 '완벽하게 통제된 요리'입니다. 외부의 어떤 먼지도, 세균도 들어갈 수 없도록 밀봉 조리했습니다. 색소도, 자극적인 향신료도 겉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나이프와 포크를 그의 앞에 놓았다.
"내용물을 확인하시려면, 직접 여셔야 합니다."
​정도원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종이 꾸러미를 응시했다.
매끈하고 결점 없는 표면. 그가 그토록 집착하던 '순결한 흰색'의 결정체.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지만, 동시에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망설이는 듯했다.
그의 손이 나이프를 잡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단순히 음식을 앞에 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쌓아 올린 견고한 벽, 그 벽에 스스로 구멍을 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 것이다.
​"어서, 열어보십시오."
​나의 재촉에, 그가 마침내 결심한 듯 나이프 끝을 종이의 한가운데로 가져갔다.
고요한 식당 안, 우리 모두의 숨이 멈췄다.
​'폭-'
​나이프가 종이를 뚫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칼날을 그어 내리는 순간,
​'슈우우-'
​하얀 안개 속에 갇혀 있던 뜨거운 숨결이, 가느다란 틈새를 비집고 세상 밖으로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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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늦어버렸네요....

소설을 그리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고 쓰느것도 처음이다 보니 갈등상황의 전개가 이리 어려울지는 몰랐네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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