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았다. 밤새 창문을 때리던 안개의 습기는 아침이 되어서도 가시지 않았다.
나는 밤새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마침내 작성한 '졸업 후 진로 희망 조사서'를 가방에 넣었다.
학교 행정실에 서류를 제출하는 순간, 종이가 손끝을 떠나는 감각은 허무할 정도로 가벼웠다.
세상이 뒤집어지지도, 안개가 걷히지도 않았다. 그저 묵직한 돌덩이 하나를 삼킨 듯, 기묘한 포만감과 울렁거림이 공존할 뿐이었다. 나는 내가 적어 낸 그 선택이 과연 옳은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확인받고 싶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 안개 속에서 내가 찾은 나침반이 고장 나지 않았다는 것을.
오후의 강의가 모두 끝난 뒤, 나는 곧장 도시 설계국 근처로 향했다.
기석 아저씨가 퇴근길에 종종 머무른다는, 오래된 옹벽 앞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 속에서 중절모를 쓴 익숙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는 언제나처럼 꼿꼿하고 단정한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기석 아저씨."
나의 부름에 그가 걸음을 멈췄다. 안경 너머의 지적인 눈빛이 나를 향했다.
"어, 학생이군. 오늘은 식당이 아니라 이런 곳에서 다 보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기다렸습니다."
아저씨는 나의 굳은 표정을 보더니, 근처의 조용한 벤치로 나를 안내했다.
"무슨 고민이 있길래 여기까지 찾아왔나."
"오늘… 진로 희망 조사서를 냈습니다."
나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말을 꺼냈다.
"어제 하림이를 만났어요. 그 애는 남들이 비웃고 추위에 떨어야 해도, 자신만의 선을 긋겠다고 했어요."
하림은 자유로운 선을 말했다.
"그리고 밤에는 정도원 감사관을 만났고요."
"그는 무질서가 거리를 덮치지 않도록, 누군가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통제해야 한다고 했어요."
정도원은 안전한 질서를 말했다.
"그게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거라고요."
나는 답답한 마음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림이는 자유를 말하고, 정도원은 질서를 말하더군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대가를 치르며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있었어요."
"저는… 두 사람의 말이 다 맞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쪽도 온전한 정답은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러웠어요. 저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제가 적어 낸 선택이 과연 맞는 것인지… 아저씨라면 답을 아실 것 같아서요."
기석 아저씨는 벤치 등받이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 안개에 흐려진 가로등 불빛이 그의 중절모 위로 희미하게 내려앉았다.
"학생, 건축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나?"
그가 부드럽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외부의 충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진짜 무서운 건 내부의 '균형'이 깨지는 거라네."
그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가상의 건물을 그리듯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정도원 감사관이 말하는 철근과 콘크리트, 즉 규칙과 질서가 없다면 건물은 세워지지도 못하고 무너져 내리겠지. 하지만 하림 양이 말하는 여백과 틈, 아름다움을 향한 자유가 없다면 그건 숨 막히는 감옥이 될 뿐이야."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유와 질서는 적이 아니야. 건물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지. 뼈대만 있는 건물은 앙상하고, 창이 없는 건물은 그저 감옥일 뿐이지."
"그렇다면… 저는 그 조화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나는 절박하게 물었다.
"자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안개를 완전히 걷어내고 무정부 상태의 들판을 달리고 싶은 건가, 아니면 안전한 콘크리트 벽 안에 숨어 평생을 연기하고 싶은 건가?"
"둘 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저만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 도시에서 살아남고 싶어요. 도망치지 않고요."
"그게 바로 자네가 찾아야 할 융화의 지점이야."
기석 아저씨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만의 붉은색, 혹은 파란색을 도시의 흰색 도화지 위에 어떻게 칠할 것인가. 도시는 거대한 시스템이지만, 결국 그걸 굴러가게 하는 건 사람들이야.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고도, 그 안에 자네만의 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자리가 분명히 있을 거네. 우리의 식당이 도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숨구멍이 되어주었듯이 말이야."
"제가 제출한 진로 조사서의 내용이… 맞는지 두려웠습니다. 너무 무모한 건 아닐까, 혹은 여전히 타협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나의 고백에 기석 아저씨는 내 어깨를 투박한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종이 쪼가리 한 장에 적힌 글씨가 자네의 인생을 완성해주진 않아. 선택이 옳았는지를 증명하는 건, 종이를 제출하기 전의 고민이 아니라 제출하고 난 후의 자네 행동일세. 자네가 그 자리에서 어떤 색깔을 내고, 어떻게 사람들과 공명하느냐가 그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 줄 거야."
그의 말은 짙은 안개를 가르고 들어오는 묵직한 종소리 같았다.
하림의 흔들리는 불안함도, 정도원의 차가운 강박도 아니었다.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다듬어낼 수 있는, 단단하고 깊은 나무의 결 같은 조언이었다.
빈칸에 적어 넣었던 나의 선택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이 무모한 도전이든, 아슬아슬한 타협이든, 이제는 내 손으로 증명해 내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