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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n 24. 2024

향기

비누, 샤워젤 그리고 핸드크림으로 떠나는 짧은 여행

매일 아침 눈뜨면 화장실에 가고 손을 닦는다. 물기 묻은 손은 톡톡한 수건에 한두 번 두드리고 핸드크림을 바른다. 매일 저녁 시간도 비슷하다. 퇴근 후 샤워젤을 샤워볼에 쭉 짜서 뭉실뭉실 거품을 만들어 온몸을 부드럽게 닦고 따뜻한 물로 거품을 씻어 내리면 오늘 집 밖에서 묻어온 불편한 감정들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내가 좋아하는 향과 함께 하니 한결 가볍다. 비누와 샤워젤 그리고 핸드크림. 여기저기서 선물로 받은 것들도 좋지만 내 일상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비누, 샤워젤, 핸드크림은 내가 좋아하는 향으로 내 돈 주고 사서 쓴다. 한번 사면 여러 날을 쓰기 때문에 그다지 큰돈이 들진 않는다.


일상이 늘 향기롭길 바라며 작은 것부터 바꾼다


시작은 미역 비누였다. 이름하여 seaweed soap. 꽤 오래전 책을 사러 갔다가 핫트랙스에서 예쁜 포장 케이스에 반해 비누를 하나 담아왔다. 예쁜 마카롱을 사듯 나에게 주는 달달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샀는데 시원한 향에 반해 버렸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작은 욕실이 제주 함덕 해수욕장이 된 것 같았다. 하얀 비누에 알알이 박힌 해초들이 하얀 모래에 흩어져 있는 미역줄기 같았다. 바다를 가지 않아도 바다에 있는 기분. 그 맛에 한동안 그 비누만 썼다.


비누는 제주 함덕 해수욕장이고 샤워젤은 방콕이다


다음은 샤워젤. 샤워젤은 상큼한 레몬그라스 향을 좋아한다. 방콕 여행에서 호텔 어메너티로 처음 만났는데 습도 높고 푹푹 찌는 날씨를 위로하는 녀석이었다. 요즘은 일회용 어메너티가 많이 없어졌는데 당시 4인 가족이 여러 날을 투숙하면 어메너티가 한가득이었다. 그걸 한동안 쓰다 결국 구매하기 시작했다. 비누는 고체라 더디 닳아지는데 샤워젤은 거품을 많이 내려고 쭉 짜서 쓰다 보면 어느새 새로 갈아줘야 한다. 하얗게 일어났다 이내 사라질 거품인데 누군가는 비싼 돈 주고 사서 쓴다고 한다. 명절이면 여기저기서 받는 비누고 샤워젤인데 뭐 하러 돈 쓰냐고. "저기요~ 그런데 저는 샤워젤이 몸을 청결하게 하는 기능으로만 쓰지 않는 답니다. 레몬그라스 샤워젤은 저에게 방콕이에요. 곧 물로 씻겨져 내려갈 작은 비누 방울이지만 매일 짧게나마 방콕 여행을 보내주는 캡슐이랍니다. 매일 밤 떠나는 방콕 여행.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나요?!" 사실 비누와 샤워젤의 하루 사용량과 구매 가격을 계산기로 두드려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하루 천원도 안 되는 돈으로 짧은 해외여행을 다녀오는데 거저 주는 행복을 왜 마다 하겠습니까?! 티끌 모아 태산이고 부자들은 작은 돈도 아낀다는데 부자 되긴 글렀나 보다. 그런데 내가 비누값 아낀다고 강남에 몇십억 하는 집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하리라. 오히려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루 마무리는 로즈향 핸드크림


하루 마무리는 역시 핸드크림이다. 긴 잠을 위해 마지막 화장실을 다녀오고 내가 좋아하는 비누로 손을 닦고 찐득한 로즈향 핸드크림을 바른다. 처음 발림성은 크림이 그대로 머무는 것처럼 하얀데 몇 번 손을 문질문질 하면 사라지고 이내 로즈향을 머금은 보송보송한 손만 남는다. 그래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회사 시절에는 하루에 3라운드를 치른다. 출근 전 아이들의 등교, 회사 출근, 퇴근 후 저녁준비. 숨만 쉬어도 돌아가야 하는 일상 루틴. 그 속에서 틈틈이 내 기분을 전환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눈뜨자마자 맞는 비누 향기였고 퇴근 후 샤워젤 거품으로 떠나는 잠깐의 방콕 여행이며, 잠자리 들기 전 바르는 장미향 핸드크림이었다. 


이런 작은 조각들이 바쁜 일상에 잠시 잠깐 찍는 쉼표 같은 존재였다. 향은 이네 사라지지만 매일매일 나를 귀하게 보듬어주는 순간이다. 크고 멀리 있는 행복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기보단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으로 나는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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