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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발의 신세계

자신만만 어깨뽕 달고 월요일마다 신나게 고고!

by 사이

초급과 중급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오리발을 하냐 안 하냐 다. 샤워실에 오리발을 가지고 들어오면 ‘중급이상은 됩니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디까지나 우리 수영장에서는 그렇다. 다른 곳은 어떨지 잘은 모르겠으나 우리 수영장에서는 오리발이 기준점이다. 그리고 초급반 풀장에서 나와 25m 풀장으로 이동한다. 즉 중급반 이상은 초급반과 같은 물에 몸을 담그지 않는다. 뭐랄까 어깨에 뽕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생각하겠지만 좀 할만하면 끝나버리는 짧은 풀장에서 저 너머 오리발을 끼고 접영을 날아갈 듯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심 부러웠다. 어쩜 저리도 쑥쑥 잘 나갈까. 나도 해보고 싶다. 오리발을 장착하고 물질 한번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오리발의 첫맛은 달달했다. 중독되는 맛!


어느덧 나도 중급반이 되었고 월요일마다 오리발을 끼고 연습한다. 첫 물질은 잊을 수가 없다. 한번 발을 찼을 뿐인데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앞으로 스르륵 나간다. ‘이런 맛이었구나!’ 운동할 때 왜 장비빨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발차기가 힘들지 않으니 숨도 덜 차고 긴 호흡으로 4~6번의 스트록을 할 수 있다. 무호흡으로 앞으로 쭉 나가니 호흡 한 번에 나아가는 거리가 길어진다. 발차기 몇 번으로 25m를 단숨에 가고 쉬지 않고 턴까지 해서 50m 즉 수영장 1바퀴를 손쉽게 돌 수 있다. 첫날 너무 신나서 참방참방거리다 오리발끼리 부딪쳐 한쪽이 반쯤 벗겨진 상태로 힘주며 가다 쥐가 단단히 나서 며칠을 고생했다. 오리발은 천천히 꾹꾹 물을 눌러주며 길게 차 줘야 제 맛인 걸 모르고 첫날 쭉쭉 나아가는 그 맛에 신이 나 종종걸음 걷듯 참방 거려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쥐가 난 꼴이다. 나름 신고식을 치르고 오리발에 서서히 중독되어 간다.



오리발은 자신만만 어깨뽕!
뽕을 단단히 넣고 헤엄치는 기분은 째진다.


매주 월요일 오리발을 끼는 날과 그 외 아닌 날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오리발을 끼는 날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마냥 자신감이 넘친다. 부담 없이 콧노래를 부르며 수영장으로 향한다. 쓱- 쓱- 웜업으로 초반 자유형을 3~4바퀴를 단숨에 돌고 배영은 물론 접영까지 가뿐하게 섭렵한다. 물론 오리발만 신었을 뿐 자세가 바르다고 자부할 순 없다. 어프-어프- 철퍼덕하는 모습일지언정 자신감만은 충만하다는 뜻이다.


특히나 접영은 오리발을 끼고 하면 면적이 넓어서 그런지 발끝을 아래로 힘차게 꾹 눌러주고 엉덩이가 물 위로 뽈록 올라와 쉽게 웨이브가 되어 출발이 매끄럽다. 부담 없는 출발은 웨이브에서 웨이브로 넘어가는 선순환으로 25m 끝까지 나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갈 수 있다. 초급반 시절 저 멀리서 바라봤던 멋진 모습을 내가 해내고 있다. 감개무량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오리발이 했을 때의 이야기다.



오리발은 마법 같은 신데렐라 유리구두!


오리발 없는 접영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 신데렐라 유리구두 마냥 오리발 없는 나의 접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50m를 끊어서 다녀와도 숨이 가빠 2바퀴를 제대로 돌지 못한다. 누가 봐도 어푸어푸 힘들어 보인다. 그래, 그래도 25m는 올 수 있으니 발전했다. 1년 넘도록 접영에 대해 감도 못 잡고 헤매었는데 그나마 25m까지 가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오리발은 내게 신기루다. 오리발만 있으면 접배평자를 3번 해도 호흡이 잔잔하니 고르다. 자유형을 할 때는 축지법을 쓰는 것 마냥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게 하고 배영을 할 때는 엉덩이가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위로 올려주고 접영을 할 때는 힘차게 웨이브를 말아준다. IM(Individual Medly 개인혼영, 접영-배영-평영-자유형)를 3회 차 해도 호흡이 잔잔하니 고르다. 50분 수업을 다 채우면 대략 1km 이상은 고래 마냥 수영을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오리발을 신었을 때 말이다. 벗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진다. 나의 고른 호흡도, 그나마 조금 흉내 내는 접영도 사라지고 없다.


오리발은 마법이다. 신세계를 맛볼 수 있는 마법.

매주 월요일마다 걸리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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