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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의 단맛과 쓴맛

지속가능한 나만의 수영을 위해 오늘도 단맛을 늘린다

by 사이

3번 도전 끝에 마흔 중반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영. 운동신경이 타고난 것도 아니고 체력이 월등히 좋은 것도 아니라 내 수영 실력은 손톱만큼 자라나고 있다. 햇수로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중급이다. 접영은 최근에서야 “이런 건가”라고 확실치도 않은 감을 잡고 ‘접영을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혼잣말하지만 수영복을 탐 하는 마음만은 확실하게 감 잡았다.


수영 가기 싫을 때마다 수영복 쇼핑하며 달래보라는 팁은 내게 적합한 조언이다. 이 단맛을 맛보고는 미적거렸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후딱 수영가방 챙겨 오늘도 수영장으로 향한다. 수영복 쇼핑 말고 지속적인 수영 생활을 가능케 하는 수영복 쇼핑 외 여러 단맛들을 적어본다.


수영의 단맛

* 레인 한 단계 업그레이드, 상급반 끝 레인까지 가보자!

* 오리발 한 첫날과 새 수영복 입은 첫날의 짜릿한 맛!

* 남들 숨 가쁜데 나만 고를 때 “난 수영 천재?” 즐거운 착각

* 숨차게 내달리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집에 갈 때,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이것으로 하루 마침표를 찍는다.

* 스트록 2번에 호흡 한번 하다 4번에 호흡 한번 할 때

* 최강 추위에도 결석하지 않고 수영장 물에 몸을 담글 때, 나의 수영에 대한 성실함에 감탄한다.

* 자유형 글라이딩이 되고 있다고 나 스스로 느낄 때 '물을 타는 맛이 이런 거구나!' 신기하게 느껴진다.

* 평영 물속 출발 후 사이드턴으로 한 바퀴 돌고 올 때 어엿한 수영인 이라는 자긍심이 든다.

* 접영 팔동작이 선생님 말 한마디에 한결 가벼워졌을 때, 일 년을 헤매었는데 단 한마디로 해결! 감사합니다.

* 뺑뺑이 선생님 만나 50분 수업에 1천 칼로리 태우던 날은 다이어트 성공!

* 수영장 오가는 길, 짧은 시간이지만 혼자 드라이브하고 주차장에서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 만지작거릴 때


단맛들을 적다 보니 쓴맛도 함께 기억된다.


수영의 쓴맛

* 긴 휴가 끝에 온 첫날. 호흡과 발차기가 잘 안 될 때, 몸이 기억한다는데 내 몸은 기억력이 좋지 않다.

*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연습이 필요해, 주말 자유수영을 나올까?!

* 잘하려고 욕심 내다 다리에 쥐 났을 때, 마그네슘 섭취 2배로 늘리자.

* 승업은 대개 마지막 주에 이루어지는데 그 주차에 결석하는 바람에 승업이 안 되었을 때,

흠... 승진도 운 빨리 없더니만 수영까지 운이 없나 보다.

* 선생님이 “회원님과 회원님만 남고 다른 분들은 옆 레인이에요” 하며 다들 승업되는 데

남는 두 회원 중에 내가 있을 때, 표정관리 안 됨. 정말 안 됨. 썩소


몸이 의지대로 되지 않아 자세가 엉망진창이고 결정적으로 승업이 안 되면 대개 실망하고 때론 패배감마저 든다. 그런데 수영장 연차가 조금씩 쌓이다 보니 이젠 대수롭지 않다. 운동신경과 체력이 제각각이니 제 몸에 맞게 하다 보면 언젠가 저 끝 라인까지 가겠지 하고 마음먹으니 편안하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내 꿈인 ‘접영 잘하는 할머니’가 되어있을 거야 하고 위안한다. 어차피 대회 출전할 것도 아니고 생활 체육으로 하는 수영인데 조금 천천히 가면 어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다잡는 건 쓴맛보다는 단맛을 하나씩 더 만들어 나가는 거다. 사소한 몸짓이라도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어느새 수영 실력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 오늘도 영하 0도에 나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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