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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안위

심장도, 다리도, 눈도 온전치 않은 엄마

by 사이

엄마가 수술하시고 퇴원하던 날 떡갈비를 먹었다. 어떤 연유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진 않지만 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하혈을 하셨고 그날 수술을 하셨다. 40년 된 기억인데 아직도 생생하다. 하혈과 떡갈비는 강렬했다. 근데 왜 떡갈비가 기억에 남았을까.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 생경해서 그랬던 건지 맛이 있어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40년이란 세월 동안 엄마는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별히 아프신 분이 아니셨다. 40년 평생 아이들과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지낸 평범한 아줌마의 삶. 아버지 사업자금 때문에 매번 마음 졸이는 일은 있으셔도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진 않으셨다.



40 중반 너머 시작한
돼지 키우는 일을 축복이라 말씀하시는 엄마


그러던 엄마가 아버지 사업이 안 좋아지시며 난생처럼 동물 농장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젊은 남자들도 힘들고 더러워 기피하는 일을 40 중반에 시작하셨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몸이 노화되면서 몸의 기능들이 조금씩 신호를 보낼 때 육체노동을 시작하신 거다. 그래도 엄마는 자식을 붙들고 본인 인생을 단 한 번도 한탄하신 적이 없다. 자식들도 자식들 나름의 삶이 있으니 스스로 열심히 살라는 응원이었으리라. 엄마는 힘든 일이지만 몸을 움직여 돈을 벌고 빚을 탕감할 수 있다는 거에 늘 감사해 하셨다. 이것 역시 큰 축복이라고 하셨다.



발목 수술에 이어 심장 수술까지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엄마


엄마 말대로 다행스러운 일이나 농장 일이라는 게 참 고단하고 위험한 일이다. 아버지는 긴 시간 몸 쓰는 일을 하셔서 양쪽 무릎 관절이 닳아 없어져 인공 관절 수술을 하게 되셨고 아버지 없는 빈자리를 엄마가 메우시다 다리를 크게 다치셨다.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발목이 사다리 사이에 끼어 부러지셨고 발목 수술을 위해 조형술을 받다 심장 이상 소견이 나와 갑작스레 심장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발목이 부러져, 위험할 수 있었던 심장을 미리 발견하고 수술하게 되어 전화위복이라고 하지만 온몸으로 아픔을 견뎌내야 했던 엄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어하셨다. 나로서는 감히 짐작도 못 한다. 멀쩡한 갈비뼈 3대를 자르고 생살과 심장을 후비 파는 수술. 다시 갈비뼈를 붙이고 살도 꿰맨다지만 통증이 심해 말도 못 하시고 끙끙대시며 젖은 눈만 껌뻑거리셨다. 가슴팍에는 굵은 호수 2개가 꽂혀 있고 그 당시 엄마는 말이 없었다.



죽음을 염두에 둔
엄마만의 시간이 무겁게 흐른다


수술실로 들어가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수술실 문은 자동문인데 왜 저렇게 육중하고 무겁게만 느껴질까. 엄마는 그 문으로 들어가면 다신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나 보다. 엄마의 눈물을 처음 봤다. 엄마에겐 죽음을 염두에 둔 엄마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엄마, 이따 다시 만나자’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일밖에 없다. 10시간의 수술이었고 난 2000년 마지막 밤과 2001년 첫날을 병원 대기실에서 보냈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픔을 나눌 수도 없다. 다만 여건이 되는 시간에 잠깐 함께 할 뿐이고 말로써 위로할 뿐이다. 말 뿐이라는 게 허망할 따름이다. 엄마는 엄마만의 시간을 힘겹게 견뎌냈고 나 역시 회사 일과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오히려 시간이 바삐 돌아가는 게 나았다.



힘든 엄마지만 힘든 딸을 위해
언제나 내게로 달려오신다


엄마는 발목 수술과 연이어 받으신 심장수술 말고도 돼지에게 주사를 놓다 그 주사기가 돼지의 두꺼운 살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와 엄마의 눈을 뚫는 사고도 당하셨다. 말 그대로 눈알이 터지신 거다. 다행히 홍채를 비껴가 실명은 안 되셨지만 그 눈으로, 그 다리로, 그 심장으로 여전히 돼지 농장 일을 하신다. 그리고 틈틈이 일을 하는 딸을 위해 손수 반찬을 만들어 자유로를 1시간 달려 딸에게 오신다. 아무리 내리사랑이지만 온 우주의 내리사랑이 나에게 오는 것 같다. 난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내일모레가 칠순인데 이제 농장 일을 그만둬야 할 때라 말씀드려도 함께 일하는 아들이 좀 더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조금만 더 몸이 버텨줬으면 좋겠다 하신다. 몸으로 버티는 칠순 노모의 시간은 그렇게 자식들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나의 시간은 얼마나 엄마에게로 가고 있는 걸까. 고작해야 가끔 만나 밥 한 끼 먹는 게 전부다. 엄마가 두 손으로 밥숟가락을 뜨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하고 표현하실 수 있고 두 발로 걸어가 두 눈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아름답다" 하실 수 있을 때 어디든 많이 모시고 다녀야겠다. 내 시간 속에 엄마를 조금 더 담아야겠다. 시골집 앞에서 나는 나물 반찬과 집밥 말고 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낯선 곳에서 새로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들을 선보여주고 싶다. 내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떡갈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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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_두발로_두눈으로_어디든_가시고_보실때_많이_모시고_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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