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이지 Oct 14. 2020

동물을 무서워하는 여자와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남자

이번 생은 망했어요 (?)




인생은 둘로 나뉜다고 했다. 고양이가 귀여워 보이기 전과,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 후로. 고양이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미 이번 생은 망한 것이다. 고양이님들께 지갑을 바치며 그저 충성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분명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던 사람이었다. 아주 작은 개미 등의 벌레는 물론이고, 강아지나 고양이까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를 무서워했다. 첫 곤충에 대한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아주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내 손가락 위에 연두색의 무언가가 떨어졌다. 살짝 놀랐지만, 강아지풀인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검은 두 개의 점이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눈이었다! 강아지풀에 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의 정체는 강아지풀이 아닌 송충이였던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손을 탈탈 털었지만, 송충이는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내 손가락에 단단히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 번 힘을 주어 털고 나서야 겨우 송충이를 떨어뜨릴 수 있었고 놀란 나는 엉엉 울며 집으로 달려갔다. 그 후로 한 동안 그 놀이터에는 갈 수 없었다. ‘그까짓 송충이쯤이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린 내게 그 송충이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손가락 위에 기어 다녔던 송충이의 느낌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동물에 대한 첫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골목길에서 친구와 친구의 강아지를 마주쳤던 일이 있다. 동물이 너무 무서웠던 나는 나를 향해 오는 강아지에게 놀라 도망가기 시작했다. 내가 뛰자 그 강아지는 신이 나서 나를 따라 전속력으로 달렸다. 나는 내게 달려드는 강아지가 너무 무서워서 울면서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내가 빨리 뛰면 뛸수록 강아지는 더 흥분했다. 다행히 내가 멈추니 강아지도 멈추었지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직까지도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런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장소는 바로 갯벌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던 이웃 친구 가족들이 있었다. 우리들은 다 함께 많이들 놀러 다녔는데, 한 번은 갯벌에 간 적이 있다. 모든 아이들이 신나서 신발을 집어던지고 갯벌로 뛰어 들어갔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갯벌 안에 널려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들어가 보려 했지만 작은 내 두 발도 갯지렁이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미끄러운 감촉이 느껴졌고 너무나도 징그러워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망설임 없이 갯벌에 신나게 뛰어드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쟤네들은 왜 아무렇지 않은 걸까’ 생각했다. 혼자 있어도 갯벌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갯벌에 들어가는 건 나에게는 돌다리가 없는 용암에 뛰어드는 일과 같아 보였다. 피할 수 없는 징그러운 생물체들이 그득그득한 곳! 그 괴물들은 내가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이렇게 나는 유난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나도 어릴 적 동물을 반려한 경험이 있다. 엄마의 지인이 잠시 강아지 한 마리를 맡겨 ‘초롱이’라는 이름의 시츄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온 것이다. 처음에는 역시 무서웠지만, 초롱이는 나를 좋아했다. 내가 자신을 조심스럽게 대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가족 중 나를 제일 따랐다고 한다. 내가 자러 가면 내 방 앞까지 쪼르르 따라와 문턱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나도 나를 잘 따르는 초롱이가 귀여웠다. 너무 어릴 적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동물과 교감한 경험이었다. 한 달 후 초롱이는 다시 원래 집으로 되돌아 갔다. 이제는 강아지 별에 가 있을 초롱이.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초롱이 생각을 했다.


나의 두 번째 반려동물은 햄스터였다. 엄마가 아는 사람에게 햄스터를 두 마리 얻어왔는데, 그때까지도 반려동물에 대한 환상이 있던 나는 엄청나게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에게 빨리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역시나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작은 동물이라 그런지 귀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햄스터는 만만한 동물이 아니었다. 햄스터들은 밤새 케이지에서 탈출하기 일쑤였고 아침에 일어나면 비어있는 케이지를 보고 가족 모두가 숨어버린 햄스터를 찾아 집 전체를 뒤져야 했다. 두 마리 햄스터가 암컷과 수컷이었는지 어느 날은 햄스터가 출산을 했는데, 충격적 이게도 아기 햄스터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햄스터는 아기를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어린 나에게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바로 엄마와 남은 햄스터들을 데리고 동네에 있던 햄스터 가게에 갔다. 초등학생 때긴 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절대 동물은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의 경험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 성인이 되고도 나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었다. 여전히 무섭다고 느끼기도 했고, 내게 동물이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그중에서 고양이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어릴 적 이사를 많이 다녔던 우리는 주택에도 잠시 살았는데, 길고양이들이 많아 집 주변이 엄청나게 시끄러웠던 것이다. 그때는 TNR 사업 같은 것도 없었으니 길고양이들의 수가 정말 많았는데, 고양이의 특성상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경계심이 많고 사납기 때문에 특히나 더 무서웠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길고양이들을 만나도 더 이상 별로 무섭지 않았고, 아기 고양이 몇 마리들이 모여 있으면 귀엽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람들도 과거에는 고양이를 시끄럽고 해로운 존재로만 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양이의 귀여운 매력에 빠져가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시작했고 나 또한 점점 고양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찍은 길냥이들 사진. 너무 사랑스럽다


내가 본격적으로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결혼 초, 신혼집 근처에 우리가 좋아하던 와인바가 있었다. 남편과 오랜만에 분위기에 취해 와인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물체가 나타나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고양이였다! 놀란 내게 사장님은 길고양이 몇 마리를 구조해 돌봐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눈인사, 코인사도 안 한 상태였는데 처음 보는 사람 무릎에 올라오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고양이가 올라오자마자 눈이 하트가 되어 마음껏 예뻐해 주고 만져줄 텐데! 아니, 고양이가 나에게 오기도 전에 이미 고양이에 모든 신경을 다 쏟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고양이가 내게 올라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고양이와의 교감이 거의 처음이었기에 얼떨떨한 상태였다. 남편도 놀라 고양이에게 “안돼! 고양이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지 마!”라고 장난스럽게 외쳤다. 내가 어찌할 줄 모른 채로 있자 고양이는 잠시 후 내 무릎에서 내려갔다. 잠시뿐이었지만 고양이의 귀여운 도발에 나는 너무나 즐거웠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진심으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아주 어릴 때부터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남편 집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남편의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그중 동물에 대한 일기가 있었다. ‘나는 동물들이 너무 좋다. 동물들은 너무 귀엽다. 동물들이 아프면 너무 슬프다. 나중에 커서 수의사가 되어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 줄 것이다.’ 내용이 너무나 귀여워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남편은 현재 수의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누구보다 동물을 좋아하고, 거의 모든 동물들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연애 초 에버랜드에 간 적이 있는데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동물원을 더 가고 싶어 했던 남편이었다. 판다 앞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 남편의 몸에는 몇 개의 타투가 있는데 그중에는 그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새긴 작은 하마 타투도 있다. 물론 나는 반대했지만 말이다.


그냥 귀엽다는 이유로 한 남편의 하마 타투


이렇게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이지만 실제로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것은 달랐다. 가끔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고양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생각 없이 고양이를 데려 오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장난으로라도 “키울까?”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 따른 책임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고양이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씩 커져 갔지만, 자신도 없는데 나 혼자 밀어붙일 용기도 없었다. 실제로 아직 고양이가 조금 무섭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또 내겐 같이 사는 남편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내게 고양이는 평생 좋아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로부터 몇 개월 동안은.

이전 03화 진짜 안 맞는데 진짜 잘 맞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