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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13. 2020

진짜 안 맞는데 진짜 잘 맞는 사람

진짜 별로...





친하게 지내는 동네 친구 부부가 있다. 남편의 회사 후배가 결혼 후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 신혼집을 얻은 것이다. 어느 날 다 함께 차를 타고 놀러 가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의 후배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짜 안 맞는 것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보면 결혼한 이유가 있어.”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해보니, 방금 남편과 내가 같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좀 이상해서였다. 뭐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둘이 동시에 카드캡터 체리의 오프닝 곡 첫 소절을 부른 것이다. 그런데 그냥 부른게 아니라 원곡의 느낌을 충만하게 살려서 불렀다.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 걸…’ 약간 아련하면서도 청순한 느낌이랄까? 이 오프닝을 본 사람은 알 텐데 아무튼 그런 게 있다. 


 그런 게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남편은 평소에는 정말 실없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노래를 이상하게 부른다거나 엉뚱한 소리를 내는 등의 짓을 하곤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상 생활 가능?’ 이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올 수 있을 정도다. 나도 처음에는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 같이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남편과 달리 나의 경우 생김새가 약간 시크하고 인상이 센 편이라,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 성격까지도 그런 줄 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별난 모습(?) 때문에 남편과 내가 동급으로 취급받은 것 같아 조금 뻘쭘해졌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진짜 안 맞는데 진짜 잘 맞는 사람.




남편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회사에서 팀 회식 자리가 있었다. 남편과 나는 다른 팀이었기에 그 자리에 남편은 없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진짜 이성으로 안 보이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팀원들이 남편을 일 등으로 꼽았다. (남편은 아직 이 일을 모른다) 그 때 나는 남편과 만나고 있어 정곡이 찔렸지만 당시에는 비밀로 하고 있던 터라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남편을 남자로 보지 않을 만큼 그는 장난꾸러기에 이상한 사람 타입(?)이었던 거다. 사내연애가 알려지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회사에서는 우리가 만나 결혼했다는 것을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남편은 일만큼은 똑부러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반 년동안 인턴으로 일한 후, 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하고 그 다음 해에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그런데 내가 입사하기 전 어떤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원래 책임급 사람이 하던 일을 계약직으로 들어온 어떤 사람이 혼자 다 해치웠다는 소문이었다. 그 엄청난 사람은 역시나 공채 과정에서도 에이스로 입사했고, 나의 1년 선배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지금 내 남편이었다. 물론 소문으로만 들었던 사람과 실제로 이 사람을 매치하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지만 말이다.


남편이 그저 장난치기만 좋아하는 실없는 사람이었다면 나 또한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거다.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끌리는 나는 남편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남편은 말도 잘 하는 편이라 회사에서 사회자가 필요할 때면 늘 그를 찾았다. 또 내가 꼼꼼하고 세심하게 일 처리를 하는 타입이라면, 남편은 굵직굵직한 부분들을 위주로 실행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같은 회사에 다녔지만 나는 기획 쪽과 디지털 쪽을, 남편은 (지금은 부서가 바뀌었지만) 영업 쪽과 오프라인 행사 등을 위주로 일을 했다. 이렇게 반대지만, 또 둘 다 성격이 급해 한번 마음을 정하면 마구잡이로 돌진하는 경향이 있어 큰 결정을 할 때는 또 잘 맞는 편이다. 우리가 초스피드로 결혼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다.


사실 사소한 부분들만 비교하면 우리는 정말 정 반대이다. 남편은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지 바로 잠에 빠지고 나는 30분 이내로 잠들면 다행일 정도로 잠을 못 자는 편이다. 잠 귀도 밝아 중간 중간 잘 깨고 꿈도 매일 꾼다. 또 남편은 사실 내가 보기에 평소에는 조금 답답할 정도로 아예 뇌를 꺼 놓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똑똑할 때는 엄청나게 똑똑한데, 그런 상황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신을 놓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남편이 놓치는 부분을 챙기곤 한다.




남편은 결혼하면서부터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종종 운전할 일이 있는데, 나의 경우 운전면허가 아예 없고 남편은 면허가 있었기에 남편이 운전을 연습하는게 훨씬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평생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만 탔던 나는 항상 보조석이나 뒷자리에 편히 앉아 운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살아왔다.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 또한 엄청나게 운전을 잘 하는데, 심지어 젊었을 때 엄마가 아빠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차를 타며 나는 처음으로 ‘차를 타는 건 무서운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아슬아슬했던 경험이 많다. 운전이 익숙해진 지금까지도 하루에 몇 번이고 길을 잘못 드는 경우가 일쑤다. 그렇기에 보조석의 나는 늘 긴장한 상태로 내비게이션을 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직접 운전을 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절대 자신이 없다. 겁이 많은 편이라 일단 운전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돌발상황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편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침착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내비게이션을 잘 보는 나와 못 보는 남편, 당황을 잘 하는 나와 침착한 편인 남편은 진짜 안 맞는데 진짜 잘 맞는 한 쌍인 것이다.



진짜 안 맞는데 진짜 잘 맞는 우리





앞서 이야기했지만 여행에서도 우리의 ‘진짜 안 맞는데 진짜 잘 맞는’ 궁합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좋아하는 나는 그 여행지에는 뭐가 유명한지, 필수 관광지와 버킷리스트까지 모든 것을 알아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다 따라야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계획은 세우되,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여행을 하면 돌발상황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쩔 줄 모른 채 당황하는 게 싫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다. 정보들을 미리 알아 두면 돌발상황에서 바로 바로 대처하기도 편하고, 갑자기 시간이 뜰 때도 바로 바로 다음 일정을 정할 수 있기에 훨씬 더 효율적이다.


남편의 경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계획 세우는 것에는 1도 관심이 없다. 한 달 간의 유럽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유럽이 두 번째였고 남편은 첫 번째였음에도 남편은 딱히 선호하는 도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자신이 유럽에 간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계획을 짤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나 혼자 예약해야 했기에 번거롭고 귀찮긴 했지만 말이다. 대신에 남편은 내가 짜 둔 계획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척척 실행을 했다. 계획형의 나와 실행형의 남편은 정말 안 맞는 데 정말 잘 맞는 한 쌍이었다.




몇 년 전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친구와 함께 유명하다는 어떤 도사에게 사주를 보러 갔다. 원래 사주를 맹신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퇴사라는 큰 결정을 하다 보니 재미삼아 한 번 보고 싶었다. 내 미래와 관련된 것을 묻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남편과의 궁합도 간단히 보게 되었다. 도사는 우리 두 명의 생년월일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갸우뚱 했다. 그는 우리 둘의 궁합이 엄청 좋은 편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최악은 아니라고, 맞추면 또 잘 맞을 수 있다는 애매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는 그런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보다 더 정확할 수 없었다. 용한 도사였네 그 분….


결혼 4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남편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아주 많다. 이상한 노래를 부를 때, 웃긴 표정을 지을 때, 혼자 바보처럼 깔깔대고 웃을 때, 간혹 너무 당연한 걸 알려줘야 할 때. “정말 왜 저래?” 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핀트가 맞으면 나는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그와 똑같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 진짜 별론데, 진짜 싫은데, 인정하기 싫지만, 좀 재미있다…. 참, 진짜 안 맞는데, 진짜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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