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이지 Oct 14. 2020

아이 말고 고양이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넌 나중에 아기 몇 명 낳을 거야?”



몇 살 때부터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친구들과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들이 좋은지 딸이 좋은지, 몇 명을 낳고 싶은지. 나는 생각 없이 이야기했다. “혼자는 외로우니까 둘이 좋을 것 같아.” 아이를 왜 낳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아이는 당연히 낳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옵션에 ‘아이 낳지 않기’가 있다는 걸, 나는 결혼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남편과 결혼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다. 갑자기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이 갖기 싫어!” 무슨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둘이 한가로이 휴일을 보내고 있던 와중이었다. 장난스러운 말투긴 했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묻고 싶었다.


결혼 전부터 우리는 아이에 대해 종종 이야기해왔다. ‘당연히’ 아기는 낳을 거긴 한데, 나 스물일곱, 남편은 서른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한 결혼이었기에 결혼 후 최소 3년 정도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었다. 나 또한 막연하게 ‘언젠가 낳게 되면 낳겠지’ 하는 생각이었지 막상 결혼을 하니 아이를 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아예 갖기 싫다고? 갑작스러운 남편의 말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남편도 나도 본인의 주관이 뚜렷한 편이지만 늘 결국에는 사회가 정답이라고 여기는 길로 걸어왔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굉장히 비슷했는데, 학창 시절 전교 임원을 하기도 했고 크게 부모님의 속을 썩인 일도 없었다. 둘 다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늘 성실하게 일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고 그 후 나름 빨리 조건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결혼까지 했다. 그렇게 살려고 의도한 적은 없지만 살다 보니 사회와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아이를 둘 정도 낳아 잘 키우는 게 우리 앞에 놓인 다음 스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그 길로 가기 싫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여보랑 둘이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데
왜 굳이 아이를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



처음에는 남편이 나와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 자체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또한 사회가 정답이라고 하는 길을 그냥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다른 길로 가려고 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 뿐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생기면 포기해야 하는 모든 것들과 달라져야 하는 우리의 일상.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정말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실 난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왜 지금까지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남편의 여동생, 그러니까 나에게는 시누이가 되는 그녀는 우리보다 8개월쯤 빨리 결혼했는데, 아이가 생겨 급하게 결혼한 케이스였다. 우리가 결혼하기 몇 개월 전 시조카가 태어났고 시누이를 닮아 똘망똘망하고 큰 눈이 정말 귀여웠다. 하지만 귀엽고 예쁜 건 표면적인 것일 뿐이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지 나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직접 나서서 아기와 놀아주곤 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멀뚱멀뚱 혼자 앉아있는 것 말고는 따로 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점점 커가면서 말을 하기 시작하고, 애교 부리는 것은 정말 귀여웠지만 한두 시간만 같이 있어도 나는 진이 빠졌다. 도대체 다들 이걸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외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길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내 또래 혹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엄마, 아빠들을 볼 때면 사실 한 번도 부럽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물론 정말 예쁘게 생긴 아기들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잠깐 옆에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어졌다. 꽥꽥 떼를 쓰는 아이들이 있을 때면 ‘내가 저 상황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간혹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성은 꼭 아이를 낳고 싶어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청개구리 심보가 있는 나는 오히려 그런 말을 들으면 더 반감이 들었다.


특히나 예민한 나는 똑같은 일을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정신적으로 몇 배의 에너지가 든다. 내가 나조차도 가끔은 감당이 안 되는데, 이런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아니, 육아는 둘째치고 임신부터가 걱정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생리 하는 것도 생리 전 증후군부터 생리 그 자체까지 모두 너무나도 괴로워서 못 견딜 것 같은데, 임신이라니. 출산이라니!




그렇게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서부터 그렇게 우리는 비출산, 비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더 깊어졌다. 비출산에 대해 점점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실제로 내 주위에도 자발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낡은 사회가 그동안 정답으로 여겼던 길을 걸어가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남편과 비출산에 관련된 글이나 책을 찾아보며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결혼 생활 4년 차가 된 지금, 이제 아이를 갖지 않을 거라는 우리의 결심에 100퍼센트 확신이 생겼다.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정답이라는 게 아니라, 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듯 아이를 가지는 것도 선택 사항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것.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우리의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아기를 가지고 싶어 질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냥 더 어렸을 때 빨리 낳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후회 때문에 지금 확신도 없는 모험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 부모님과 남편 부모님 모두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결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신다. 특히나 남편은 장손이기에 자식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삶은 그들에게는 의미 없는 삶이었기에, 우리의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다. 자식에게 집중하는 것 외에도 인생에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물론, 자식을 키우는 것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나와 남편은 각자의 개인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하루 중 여가 시간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 둘 다 스트레스에도 취약한 편이다. 이런 우리가 아이를 가진다면 희생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결혼한 지 꽤 되었다 보니 간혹 아이 계획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의견을 듣고 존중해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문제가 아닌데도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부부가 아이 낳을 준비도, 키울 준비도 안 된 것 같다고 말하면, “평생 완벽하게 준비될 타이밍이 오지는 않아! 그냥 낳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


- 아니, 내가 준비가 안 됐다는데 뭘 알고 말하는 건가요? 당신이 내 사정을 다 압니까? 그리고, 진짜 아이 낳을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서 아이들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있잖아요! 아동 학대는 물론이고, 방치되고 상처 받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나요?


“너희는 안 그럴 거야.”,“너랑 네 남편 아이인데 그러겠어?”

- 저기요, 어떤 부모가 아기를 낳기 전부터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겠어요. 또, 세상 흉악한 범죄자들의 부모들도 본인이 그런 자식을 낳을지 알았겠습니까? 다 자기 자식은 착하다고 말한다고요.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든 다 키워.”

- 혹시 키워주실 건가요? ‘어떻게든’이라는 무책임한 단어에 얼마나 힘든 희생과 노력이 숨어 있는데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일인데 왜 너희만 못 하겠다고 하는 거야?”

-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그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대부분 우리에게 별로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므로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성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도 나의 부모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완벽한 부모가 되지는 않는다. 낳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무책임한 말에 앞으로의 인생을 걸 수는 없었다. 


가끔 나에게 그렇게 묻는 친구들이 있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거면 결혼은 왜 했어?” 그럼 나는 대답한다. “왜 결혼과 출산, 육아가 한 세트라고 생각해? 결혼만 하고 아이는 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아이를 낳는 것이 디폴트가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디폴트인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지, 나는 되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럼 넌 왜 아이를 낳고 싶은데?”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세상을 다 몰랐다고. 아이를 낳은 후로 인생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왜 아이를 가짐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고, 아이를 가지면 알 수 있는 세상을 모르는 채로,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다.


“그래, 우리 그럼 아이는 갖지 말자.
대신 언젠가 정말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살면 어때?” 


남편이 좋다고 말했다. 언젠가, 그러니까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아이는 나중에 (=한 3년 혹은 그 이상 있다가) 낳지 뭐~’라는 말의 ‘나중에’와 같은 의미였다. 그냥 막연한 먼 미래의 이야기.


그러나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 언젠가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이전 04화 동물을 무서워하는 여자와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