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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16. 2020

"우리 진짜 고양이 키워볼래?"

끝까지 책임질 용기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티봉이를 탁묘하고 난 후로, 우리는 본격적으로 고양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저 막연한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반려묘에 대한 장단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고양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아졌고, 너나 할 것 없이 고양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며 유튜브 영상이나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고양이의 최고의 장점은 ‘귀엽다’는 것이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지구를 정복할 정도로 그들의 귀여움은 엄청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막상 티봉이를 탁묘해 보니 아이를 키우는 것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고양이와 함께하는 것 역시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나의 예민함은 별 것도 아닌 일들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니 옆에 있는 남편까지 정신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사실 누구보다도 더 개인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를 가지지 말자고 한 것도 그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안다. 본인의 시간이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에 그게 적정 선 이상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 견디지 못한다. 아무리 고양이가 강아지보다 손이 훨씬 덜 가는 편이라고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신경 쓸 부분이 늘어난다는 부분에서 조금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뿐만 아니라 탁묘는 그저 아이의 밥과 물을 챙겨주고, 놀아주고, 화장실을 치워주면 될 뿐 그 이상 해야 하는 건 딱히 없었다. 단순히 아이를 몇 주간 봐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고양이를 들인다는 건 그보다 몇 배 이상의 의무가 생기는 일이었다. 한 생명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시간을 들여 아이를 케어해주어야 하고 또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감정적인 의무까지 생긴다. 혹시 아프기라도 하거나 나중에 세상을 떠난다면 그에 따른 슬픔까지도 전부 감당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우리가 동의했던 부분은 반려묘와 함께 할 때의 어려움도 크지만, 그만큼 우리가 얻어가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남편이야 어렸을 때부터 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사람이고, 늘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내게도 티봉이는 많은 정서적 위로가 되어 주었다. 솔직히 보고만 있어도 너무나 귀여워 미쳐버릴 것 같았다. 동물과 교감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티봉이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특히 예민한 나에게는 힘든 것들도 더 크게 느껴졌지만, 긍정적인 감정까지도 훨씬 크게 다가왔다. 티봉이는 사람을 피할 정도로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가끔 나에게 먼저 다가와줄 때면 너무나도 감동적인 마음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고양이를 케어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포기할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던 우리에게 반려묘는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막상 진짜 우리 고양이를 데려온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고, 남편의 안식월에 한 달간 유럽여행을 떠나기로 했기에 당장은 데려올 수 없었다. 아이를 가지는 것과 같이 동물을 반려한다는 것을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좀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몇 년 후에 들여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득 찼다.




몇 개월 후 우리는 한 달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대학교 때 혼자 다녀온 유럽여행도 즐거웠지만 결혼 후 남편과 둘이 떠난 유럽여행도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준비로 지난 1년을 보낸 후 여행에서 돌아오자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일상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결혼 3년 차였던 우리는 여전히 가끔 부딪히긴 했지만 점점 더 서로에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것, 하기 전에는 정말 엄청난 결정이고 인생의 큰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결혼은 별 게 아니었다. 많은 것이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그냥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같이 살며 맞춰가는 게 결혼이었다. 특히 우리는 아이를 가지지 않았기에 연애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서로 각자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각자의 삶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함께하는 삶이 추가되는 거였다. 결혼을 했다고 서로가 서로의 소유물이 되는 게 아닌, 각자의 삶은 그대로 유지하며 또 함께하는 삶까지 즐길 수 있는 거였다. 알고 보니 결혼은 정말 좋은 것이었다. 왜 이전까지는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그러나 무언가 모르게 허전함은 계속되었다. 당시 나는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퇴사를 한 후 나의 스트레스와 불안 증세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예민하다는 것에는 변화가 없었다. 특히 한 달에 한 번 생리 때만 되면 우울감은 하늘을 치솟았다. 생리 전 일주일부터 생리 기간까지 나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괴로웠다. 생리 주기는 또 왠지 짧은 편이라 한 달에 거의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가볼까 생각했지만 생리가 끝나면 또 증상은 사라지니 귀찮은 마음에 미루고 미루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더 평온해진 환경에서 오는 안정감은 분명 있었다. 안정감이 생기니 나를 늘 괴롭혀 왔던 불안이 점점 사그라드는 듯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는 느낌이 생기면 나는 다시 예민하고 불안정한 나로 돌아왔다.


내가 주기적으로 힘들어하던 걸 보던 남편도 고민이 많은 듯했다. 이런 나를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티봉이를 탁묘하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끝내 남편은 굳게 결심한 듯 나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 진짜 고양이 키워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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