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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19. 2020

첫눈처럼 찾아와 준 고양이

그렇게 우리가 만났다




분명 1년 이상 고민했던 고양이 입양이었다. 하지만 고민한 시간에 비해 실제 입양 자체는 조금 급하게 진행되는 듯싶었다. 고양이를 들이자고 결정을 내린 뒤 거의 일주일 만에 입양이 확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너무나 기쁘고 설레는 일이었지만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고양이가 오기도 전부터 할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일단 하나부터 열까지 인간 친화적인 우리 집을 고양이가 살 수 있는 집으로 바꿔야 했다. 티봉이는 특이한 케이스였고, 대부분의 고양이는 환경이 바뀌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특히 여름이의 경우 사람에 대한 경계심까지 심하다고 하기에 적응하는 데에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조금이나마 적응이 쉽도록 웬만하면 아이가 원래 쓰던 물품과 같은 제품들을 구입하기로 했다.


고양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와 화장실 모래다. 예민한 아이들은 먹던 사료가 아니면 가리는 경우가 많고, 화장실 모래 또한 마음에 안 들면 실수를 하거나, 심하면 방광염까지 걸릴 수 있다. 아무래도 보호소에서는 사료와 모래를 기부받다 보니 다소 가격대가 있는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격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의 적응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야 했다.


다른 물품들을 구매하는 데에도 고려할 상황이 꽤 많았다. 다행히 화장실은 우리가 눈 여겨보고 있던 가성비 좋은 제품을 기존에 쓰고 있었다고 하기에 고민 없이 구매했다. 밥그릇과 물그릇의 경우 시중에는 세트로 된 2구짜리 제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료와 물을 함께 둘 경우 물이 사료에 튀어 사료가 금방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는 고양이 집사들의 후기가 있었다. 재질은 사기 그릇이 좋다고 하고, 또 아이가 앉아서 먹을 때 그릇의 높이가 너무 낮으면 불편할 수 있다고 하기에 결국 2단으로 된 높은 사기 그릇을 각각 따로 구매했다. 고양이가 발톱을 긁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스크래쳐도 구매해야 했는데, 테이블 다리에 묶을 수 있는 세로형 스크래쳐와 바닥에 두고 쓰는 골판지형 스크래쳐 등 여러 종류를 구입했다.


이케아에서 숨숨집과 쿠션, 방석들도 몇 개 구매해 집 여기저기에 두기로 했다. 장난감의 경우 고양이마다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기에 일단 ‘고양이 장난감’이라고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뜨는 세 개짜리 세트로 선택했다. 여기까지가 필수 물품들이었지만, 우리는 이 외에도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곧 사용하게 될 물건들까지 모두 다 미리 준비해두기로 했다. 고양이 칫솔 및 치약, 샴푸, 빗, 발톱깎이 등 기본적인 케어를 위한 제품들부터, 고양이 화장실 사막화 방지 매트와 미끄러짐 방지를 위한 각종 러그까지. 20개가 넘는 택배 상자들이 좁은 우리 집 거실에 쌓여갔다.




마지막으로 가장 크고 가장 비싼 물건인 캣타워가 남았다. 사실 우리가 전부터 봐 둔 캣타워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캣타워는 저렴한 제품일 경우 10만 원 대부터 시작하기도 하는데, 이것 저것 옵션을 추가해 좀 쓸만하게 만들면 30만 원은 기본으로 넘어갔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대부분의 캣타워 디자인은 너무나도 조잡한 느낌이 들었다. 직접 조립해야 한다는 부분도 걸렸다. 고양이가 뛰어다닐 텐데, 안전하게 잘 버텨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알아보니 대부분의 조립식 캣타워는 사람이 살짝만 흔들어도 쉽게 흔들렸다. 또 캣타워를 구매한다고 해서 고양이가 사용해 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간혹 비싼 캣타워를 사 줬는데 고양이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이다.


캣타워 자체가 원래부터 비싼 품목인데,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고양이가 사용할지 안 할지도 모를 제품을 30만 원이나 주고 구매할 수는 없었다. 이왕이면 더 비싸더라도 튼튼하고, 우리 눈에도 예쁜 제품을 구매하고 싶었다. 혹시 고양이가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고,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도 있는 그런 캣타워.


그런 우리가 눈여겨보던 제품은 한 가구 브랜드에서 유명 고양이 집사 유튜버와 협업해서 출시한 책장형 캣타워였다. 사람은 책장으로, 고양이는 캣타워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기에 혹시 고양이가 사용하지 않더라도 아쉬움이 덜할 것 같았다. 다른 캣타워에 비해 훨씬 깔끔한 디자인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옅은 그레이 컬러와 원목이 베이스라 대리석 타일로 되어 있는 우리 집 거실에 딱 어울릴 것 같았다. 또, 후기를 찾아보니 다른 제품들에 비해 거의 흔들리지 않아 훨씬 안전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선택한 캣타워


맞춤 쿠션까지 풀 옵션으로 구매하면 50만 원에서 딱 천원이 빠진 49만 9천 원이라는 가격이었다. 솔직히 우리 부부는 씀씀이가 헤픈 편은 아니라, 우리 물건을 살 때는 10만 원도 덜덜 떨면서 쓰곤 한다. 하지만 쓸 땐 쓸 줄 아는 우리 부부. 캣타워에는 통 크게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양이가 오기도 전에 벌써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출하고야 말았다. 마침 남편이 연말정산으로 환급된 금액이 컸기에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물품들을 구매하고 정리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입양 조건 중 하나였던 방묘문, 방묘창 설치가 남아 있었다. 방묘문, 방묘창을 설치하는 이유는 고양이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다.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심지어 빠르고 유연해 잡기도 쉽지 않다. 또 영역 동물이기에 낯선 곳에서는 겁을 먹고 숨어버리기 일쑤고, 놀라면 집사고 뭐고 알아보지 못해 한 번 잃어버리면 찾기가 쉽지 않다. 고양이 탐정이라는 직업이 생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인 방충망은 날카로운 고양이 발톱으로 쉽게 찢어지기 때문에, 고양이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가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심지어 ‘포 시즌즈’ 들은 보호소에서도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찢어 탈출까지 한 경험이 있는 엄청난 고양이들이었다! 물론 창문을 연 건 아기 고양이들이 아닌 엄마 포였다. 다행히도 며칠 후 다시 포획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보호소 관계자분들도 정말 당황하셔서 바로 방묘창을 설치하셨다고 했다. 그 누구도 고양이가 닫힌 창문을 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포는 정말 보호소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단한 능력의 야생묘였다.


닫힌 창문을 열어 탈출하기도 했다는 엄마 고양이 '포'


우리 집은 중문이 있기 때문에 방묘문은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었고, 방묘창은 설치를 해야 했다. 방묘창을 설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방충망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일반 방충망을 떼어내고, 훨씬 튼튼하고 촘촘한 ‘방묘창’용 방충망으로 교체하는 방법이다. 내구성이 좋아 고양이 발톱으로도 전혀 찢기지 않지만, 전체 창문을 다 교체하려면 웬만한 캣타워 하나만큼의 가격이 들어간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네트망을 이용하는 것인데, 창문에 딱 맞는 네트망을 제작하거나 구입해서 고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창문 크기가 제각각이다 보니 딱 맞는 제품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은 바로 다이소에서 몇 천 원이면 구할 수 있는 네트망과 케이블 타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이즈의 네트망이 있기 때문에, 창문 크기에 맞춰 여러 개의 네트망을 연결해서 케이블 타이로 고정시키면 되는 것이다. 물론 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내 시간과 노력에는 따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남편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굳이 부탁하기보다는 내가 내 마음에 들게끔 스스로 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아 직접 해보기로 했다. 이틀 동안 다이소를 다섯 번쯤 다녀오고 난 후에야 거실과 안방 창문에 방묘창을 완벽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거실에 직접 설치한 방묘창



거실과 안방 외에도 우리 집에는 작은 방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옷 방으로 아예 고양이를 출입금지시킬 예정이었다. 또 다른 방은 내가 작업실로 사용하는 방인데 베란다가 중문 역할을 해 주었기에 따로 방묘창을 설치하지 않았다. 창문을 자주 열어두는 거실은 방묘창을 창문에 아예 고정해 두었고, 안방의 경우 사용하지 않을 때는 분리해서 접어둘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고양이가 집에 오기 전 전체적으로 집을 체크해야 했다. 고양이에게 위험할 수 있는 물건들은 다 치우고, 혹시 고양이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는지 확인했다. 티봉이에게 호되게 당했던 경험이 있어 특별히 신경을 썼다.


티봉이 탁묘 이후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기에, 부엌 바닥에 있던 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침대는 같았기 때문에 벽과 침대 사이에 있던 틈은 여전히 있었다. 우리는 안 보는 책들을 그 틈 사이 딱 맞게 끼워 넣어 틈의 존재를 아예 없애 버렸다. 추가로, 여름이가 아직 어렸기에 주방의 냉장고와 벽 사이 틈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쓰는 액자를 사이에 살짝 세워두어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모든 틈을 다 막아두어야 한다


그렇게 며칠을 너무나 바쁜 일정으로 보냈다. 남편은 내가 고양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가 오기도 전인데 며칠간 무리해서인지 벌써 나는 심적으로 조금 지쳐 있었다. 그래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여름이, 아니 이제부터 ‘카레’라는 이름으로 불릴 우리 고양이가 정말로 온다.


정말 감사하게도 보호소에서 이동 봉사로 카레를 우리 집까지 직접 데려다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 보호소는 우리 집까지 차로 짧게는 1시간 반에서 길게는 2시간가량 걸리는 다소 먼 거리였다. 가뜩이나 겁을 잔뜩 먹을 텐데,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서툰 몸짓으로 데려오는 것보다는 아이를 지금까지 잘 돌봐 주셨던 분들이 데려와주시는 게 조금이나마 나을 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2월의 어느 일요일, 카레가 우리 집으로 오는 날이었다. 이 날은 신기하게도 올 겨울 처음 보는 것 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약속된 시간이 되고 봉사자분들께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동장 안에서 처음 본 카레는 며칠 전 본 사진에서보다도 좀 더 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사진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훨씬 귀여운 모습이었다. 첫눈처럼 우리에게 찾아와 준 고양이 카레. 아이가 워낙 경계심이 많아 보호소에서 이동장에 옮기는 것부터가 오래 걸렸다고 봉사자분께서는 말씀하셨다. 겁을 잔뜩 먹은 카레는 눈 한번 깜빡이지 못하고 동공이 엄청나게 커진 채로 이동장 안에서 덜덜 떨고만 있었다.



이동 봉사자분께서 찍어주신 카레의 모습.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다


안녕, 카레야! 만나서 반가워.
이제부터 여기가 너의 집이란다. 앞으로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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