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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16. 2020

사지 말고 입양할까요

우리의 고양이를 찾아서




반려묘를 들이기로 결정한 후에 처음으로 할 일은 어디에서 어떻게 데려올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전부터 남편은 만약 고양이를 데려온다면 보호소에서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반려묘에 대한 결심이 완전히 서 있지 않았을 때부터 우리는 틈 날 때마다 포인핸드 어플에 들어가 유기되거나 구조된 고양이들을 살폈다. 당장 데려오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이들도 많았지만, 보기 힘들 정도로 안쓰러운 모습의 고양이들도 있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고양이 별로 돌아간 아이들과, 기간 내에 입양이 되지 않아 안락사된 아이들까지.


이런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너무나 안타까웠고 마음이 아팠다. 당장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슬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진짜로 고양이를 들인다고 결심하고 보니 무조건 쉽게만은 생각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보호소에 있는 고양이들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거나, 다치거나 아픈 아이들. 혹은 홀로 길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아 구조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아이들은 아무래도 집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 좀 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분명 입양은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인의 고양이를 3주 동안 탁묘해본 것이 전부인 우리로서는 그런 아픔이나 상처, 혹은 우리가 모르는 사연을 가지고 있을 아이를 잘 케어해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열정은 가득했지만, 열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면 경험이 부족한 우리 부부가 과연 현명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펫샵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고양이에 대해 알아보며 펫샵의 아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오는 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정분양을 통해 사람 손도 좀 타고 어린 아이를 입양해서 우리도 어느 정도 고양이에 대해 알아간 후에 나중에 둘째로 유기묘를 입양하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보호소 입양의 어려움과 혹시 모를 일들에 대한 걱정거리를 표현했지만 역시 남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 또한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걱정이었을 뿐, 보호소 입양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남편과의 긴 상의 끝에 결국 우리는 보호소 입양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편이 고양이를 데려오자는 부분에서 먼저 결단력 있게 이야기해주었기에, 나도 지나친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 가까이 인스타그램과 포인핸드, 각종 커뮤니티를 돌아보며 고양이 입양 글을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눈에 띄었다. 천안의 한 보호소에서 아기 고양이들의 가족을 찾는다는 글이었다.


천안의 보호소 근처에 살던 봄이와 겨울이


치즈 색의 봄이와, 고등어 무늬의 겨울이. 길에서 지내다 구조된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다행히 아픈 곳도 없어 보였다. 수많은 입양 글을 봐왔지만 딱 마음에 와 닿는 글은 잘 없었는데, 이 글을 보니 이 아이들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상의 후 바로 입양 문의를 넣었지만 아쉽게도 봄이와 겨울이는 벌써 입양이 확정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이 아이들의 형제묘들이 있었는데, 귀여운 외모에 걸맞게 귀여운 사연도 가지고 있었다. 예전부터 보호소 마당에 손님처럼 드나들던 고양이 ‘포’가 출산을 했는지 어느 날 아기 고양이들을 데리고 나타났다고 한다. 산과 길을 넘나들며 살던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엄마 포. 당시 12월이었기에, 추운 겨울을 산에서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상의 끝에 포와 새끼들을 다 함께 구조하셨다고. 엄마 포는 워낙에 야생성이 강해 중성화 후 다시 방사를 해주었고 (고양이는 원래 3개월 정도가 되면 어미에게서 독립한다) 포의 다섯 마리 새끼들은 입양을 보내려고 준비 중이라고 하셨다. 포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포 시즌즈’로, 봄이, 또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너무너무 귀여워!



엄마 포와 시즌이들


포의 아이들 '포 시즌즈'


입양 공고가 올라온 지 1개월이 넘어, 입양 공고 글의 사진보다 아이들은 좀 더 자라 있었다. 5-6개월 정도 추정되어 우리가 원했던 것만큼 아주 어린 고양이들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묘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봄이와 겨울이의 형제묘인 여자 아이 또봄이와 가을이, 남자아이인 여름이는 모두 고등어 아이들로 얼굴과 몸의 무늬가 조금씩 다르게 생긴 친구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은 세 아이들은 봄이와 겨울이보다 훨씬 경계심이 심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다섯 마리 중 그나마 가장 순한 봄이와 겨울이를 먼저 입양 보내려고 하신 게 아닐까 싶다. 남은 형제묘들이 경계심이 많긴 하지만 한 가족에게 계속 사랑을 받으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입양 담당자분은 말씀하셨다.


경계심이 많다는 부분에서 우리가 조금 망설이자, 입양 담당자분께서는 만약 개냥이를 원한다면 성묘인 4살 고양이도 있다고 하셨다. 사람만 보면 자동으로 골골송을 부르며 무릎에 올라타 폭풍 애교를 부린다는 고양이 ‘심경이’였다. 우리는 고민이 되었다. 개냥이라는 부분은 정말 좋았지만 그 아이의 경우 마당냥이로 몇 년간 살았던 아이라고 했기에, 입양되어 집에 갇혀 산다면 갑갑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또 성묘이기에 그만큼 우리와 앞으로 함께할 날들이 짧을 것이라는 부분도 조금 걸렸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보호소의 아이들도 이런 식으로 조건이 따져지며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씁쓸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결국 ‘포 시즌즈’에서 남은 아이들 중 유일하게 남자아이였던 여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심경이도 보호소의 한 봉사자분께 입양되었고, 포 시즌즈 모두가 각자의 가족을 찾아갔다) 여름이는 코와 입에 걸쳐 진한 카레가 묻은 것 같은 무늬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정말 우리 고양이가 된다면 이름을 ‘카레’라고 지어야지, 생각했다. 형제묘들 사이에서 특히나 뚱한 표정으로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엄마와 형제 고양이들과 유년기를 보냈기에 건강도 좋을 것 같았고, 사회화도 잘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마음이 놓였다. 물론 경계심이 심하다는 부분이 조금 걸렸지만,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간다면 아이도 언젠가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맨 왼쪽 고양이가 우리의 고양이가 될 '여름이'


사실 입양하기 전에 직접 보호소에 방문해서 아이를 보고 결정하는 게 정석이긴 하지만, 가뜩이나 경계심이 많은 아이들인데 낯선 사람이 방문하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같았다. (보호소마다 다르지만, 고양이의 스트레스를 이유로 입양 확정 전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 보호소도 간혹 있다) 이렇던 저렇던 우리는 입양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기에, 아이를 보지 않고 데려오기로 했다.




우리가 그렇게 여름이의 입양 의사를 밝히자 그때부터 엄청난 입양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사실 보호소에서 고양이를 입양한다는 것은 굉장한 수고로움이 드는 일이다. 일단 여러 플랫폼에서 직접 입양 공고들을 찾아보는 것부터가 꽤 시간이 걸린다. 입양자가 원하는 아이의 특성도 당연히 고려해야겠지만, 거리가 너무 멀면 아이가 이동하는 데 힘들 수도 있으니 보호소의 위치도 중요하다.


만약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은 아이를 찾았다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입양 기관마다 다르지만 일단 해당 기관이 정해둔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입양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조건이 맞는지 확인한 후에는 입양 신청서나 계약서 등을 작성하고, 인터뷰를 보기도 한다. 펫샵에서 분양받는 경우 이런 과정들은 전혀 거치지 않기에, 처음 보호소 입양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이 굉장히 번거롭고 귀찮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을 학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막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책임질 가족을 찾기 위해 이 과정들은 꼭 필요하다. 나도 그 사실을 알기에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모든 절차에 진지하게 임하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고양이를 입양한 보호소의 입양 조건]

1. 고양이 알레르기가 없는 분

2. 방묘창/방묘문 설치 필수

3. 가족 구성원 모두의 동의를 받은 분

4. 입양 후 아이 소식 전달

5. 마당냥이, 산책냥이, 외출냥이 안돼요

6. 아이를 평생 사랑해주실 분

(입양 조건은 보호소마다 다르다)



입양 신청서는 10가지의 기본 문항과 16가지의 주의 사항 및 동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부분 입양자의 생각이나 성향을 알기 위한 항목들이었다. 아이를 진심으로 책임지고 사랑해 줄 수 있는지, 고양이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였을 때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나는 모든 질문에 최대한 성실하고 솔직하게 답변하려고 노력했다. 추가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신분증 사본을 제출하기도 했다.


꽤 긴 분량의 입양신청서를 제출한 뒤 다음 날에는 입양 담당자분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입양신청서에 작성한 내용에 대한 꼬리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후에는 아이가 지낼 곳인 거주 장소, 즉 우리 집에 대한 사진을 요청받아 집 사진을 몇 장 찍어 보냈다.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아이가 지낼 환경을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다.


간혹 어떤 보호소들은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입양 문의와 심사 과정에서 불필요할 정도로 방어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보호소의 경우 입양 담당자분께서 전 과정 동안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절차가 꽤나 복잡하긴 했지만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 보호소 스태프들의 상의 후 입양이 결정되기까지 하루가 걸렸다. 사실 입양이 거절될 이유가 딱히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연락을 기다리는 하루 동안 떨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름이 입양 확정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다음 날 오후 입양 확정 연락을 받았다. 정말 기뻤지만 어쩐지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약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책임져야 할 생명체가 하나 더 생긴 것이었다. 나, 정말 고양이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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