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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0. 2020

우리 정말 고양이 입양한 것 맞니?

너도 예민한 고양이었다니




며칠이 흘렀다. 카레는 여전히 낮에는 구석에 틀어 박혀 조그만 소리만 들려도 움찔거렸고, 밤에는 문을 쳐다보며 서럽게 울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레는 밥을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배변 활동에도 문제가 없었다. 혹시라도 카레가 아플까 봐 걱정이었던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카레에게 고마웠다.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나는 집에서 휴대폰을 컴퓨터 옆에 두고 카레의 모습을 보면서 일했다. 카레가 구석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자는 동안 자세를 바꾸면 귀엽다고 깔깔댔다. 카메라 화질이 좋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데도 ‘지금은 엎드려 있는 것 같아’, ‘방금 다리를 움직였어!’ 라면서 제멋대로 이야기 해댔다. 가끔 카레가 구석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밥이나 물을 먹거나 화장실을 사용하면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설치해 둔 카메라로만 볼 수 있는 카레의 모습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6개월 정도로 추정되어 아주 어린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아직까지는 살짝 아기 고양이 같은 티가 났다. 직접 보지 못하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이렇게라도 카레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카메라로 훔쳐보는 카레의 모습. 이렇게 나와 있는 경우가 드물기에 순간 포착을 잘해야 한다




카레가 온 지 4일쯤 된 날 아침이었다. 일어나 거실로 나오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거실 바닥에 군데군데 카레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빛에 비춰 보니 발자국은 더 선명했다. 밤새 거실에 나와 봤구나! 정말 기뻤다. 거실부터 주방까지, 우리가 자던 안방을 제외한 온 집 안을 밤새 탐험한 카레는 다시 방 안 구석에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어제까지는 새 거나 다름없었던 스크래쳐에도 사용한 흔적이 있었고, 장식장 위에 올려둔 물건들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몰래 이렇게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아 놓고 지금은 모른 척 숨어있는 카레의 모습이 정말 웃기면서도 귀여웠다. 느리지만 천천히 적응하고 있는 카레가 대견했다.



처음 썼는데 하루 만에 아작이 나 버린 스크래쳐

 

장식장 위에 있던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대체 뭘 어떻게 놀았길래?

 

거실 여기저기에 찍혀있는 발자국. 겁쟁이인 척하더니 엄청 돌아다녔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와의 관계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카레가 있던 방에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베란다가 딸려 있었기에 빨래와 쓰레기 정리 때문에 자주 들어가야 했다. 간혹 카레가 구석에서 조심스레 나와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모르고 방에 들어가면 카레는 놀라 우리에게 하악질을 했다. 하악질을 하는 카레의 모습은 야생의 고양이나 다름없었다. 카메라로 본 카레는 정말 귀여웠지만 실제로 마주한 카레는 너무나 사나운 고양이였다. 카레도 우리를 무서워했지만, 우리도 카레가 무서웠다. 몇 번의 하악질을 당하자 무안해져 그 방 안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여기저기 캣닢도 뿌려 보았지만 카레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는 듯했다. 우리의 냄새를 친숙하게 하기 위해 집에서 입던 옷들을 방에 넣어 주고, 외로운 카레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부드러운 털 목도리도 함께 넣어 주었다. 새벽 내내 울다 지친 카레는 털 목도리가 자신의 형제들인 양 그것을 핥고 있었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우면 저럴까? 카레는 털 목도리를 자기가 늘 있는 구석 자리까지 물고 와 앞에 둥그렇게 빙 둘러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런 카레가 귀엽기도 했지만 불쌍하기도 했다. 우리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카레가 온 지 5일째쯤 되던 어느 날, 저녁 즈음 안방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카레가 없다고 했다. 방으로 가 보니 원래 카레가 늘 있던 작은 방 어디에도 카레의 흔적이 없었다. 우리는 너무나 놀라 호들갑을 떨면서 집 전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너무 좁아 들어갈 수 없어 보이는 구석까지 한참을 찾아도 카레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문도 다 닫혀 있고 방묘창까지 있어 절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데도 혹시 집 밖으로 나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혹시 우리가 찾지 못하는 곳에 숨었나 싶어 우리는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있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찾지도 못 하는 거, 거실에 계속 있는다고 해서 카레가 절대 먼저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거실로 나가 망연자실한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워낙 경계심이 많고 사람을 무서워했기에 카레는 우리가 집에 있을 때면 매번 구석에 숨어 절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우리는 어쩔 줄 모른 채 허탈하게 서로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망연자실한 우리의 눈에 무언가가 띄었다. 거실 바닥에 띄엄띄엄 묻어있는 물이었다. 자세히 보니 희미하지만 카레의 발자국이었다! 물이 묻은 발자국들은 카레의 방을 향해 찍혀 있었다. 다시 방으로 가 확인해 보니, 아무 일도 없던 듯 카레는 원래 늘 있던 그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카레는 조용해진 틈을 타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와봤고, 갑자기 방에서 나온 남편 때문에 놀라서 아주 가까운 곳으로 숨어버린 거였다. 우리가 잠깐 안방에 들어간 틈을 타 조심스럽게 나와 다시 방으로 돌아간 카레는 발자국에 물이 묻은 걸로 보아 화장실의 변기 뒷 쪽에 숨어 있었던 것 같다. 분명 아까 화장실까지 확인했지만, 우리가 변기 뒤까지는 보지 못했나 보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을 떨다니, 카레가 돌아와 있는 것을 확인하자 긴장이 풀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우리가 있는 시간에 카레가 거실에 나와봤다는 사실은 다행이었지만, 거의 일주일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 우리는 한 번도 카레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경계심이 많은 고양이에겐 무조건 무시가 답이라길래 우리는 밥과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청소해주기만 할 뿐 카레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레는 여전히 작은 소리에도 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고 어쩌다 우리를 마주치면 공포에 질려 사납게 하악질만 할 뿐이었다.
 

개냥이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같이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생각하면서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우리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는커녕 얼굴조차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살고 있었다.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카레를 위해 나는 집에서 최대한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며칠간은 요리도 최대한 하지 않았고, TV도 보지 않거나 아주 작은 소리로 틀었다. 카레의 화장실 모래가 바닥에 놔뒹굴어도 청소기도 마음대로 돌리지 못했다. 요란한 청소기 소리를 고양이들이 엄청나게 무서워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이소에서 쓰레받기와 빗자루 세트를 사 와 그것으로 청소를 했다. 남편은 군대 이후로 빗자루질을 처음 해 본다고 말했다. 그나마 나는 괜찮았지만 매일 저녁 큰 소리로 영상을 본다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니 불만이 쌓여가는 듯했다.
 

오랜 기간 고민했던 일이기에 고양이를 들였다는 걸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이 아이도 서로를 무서워하고 눈치만 보는데 이게 뭐하는 짓일까? 우리는 맥이 빠졌다. 고양이와 친해지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친해지기는 커녕 아예 얼굴을 보는 게 불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작은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카레. 우리가 고양이를 입양한 게 맞나? 투명 인간, 아니 투명 고양이를 입양한 건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벌써 지쳐 있었다.


보호소 입양에 대해 미리 걱정했던 것들이 우기가 아니었음을, 남편도 이제야 나의 우려들에 공감해주었다. 이렇게나 예민하고 경계심 많은 고양이를 만나게 되다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다. 우리, 정말 괜찮을까?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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