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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2. 2020

예민한 고양이의 속사정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행복한 삶을 위해 고양이를 입양한 우리였는데, 행복하기는 커녕 고양이를 입양한 후로 평온했던 우리 집에 사건 사고들이 계속 펼쳐졌다. 특히나 예민한 나인데 고양이까지 이렇게 예민한 아이를 만나게 되다니. 예민한 여자와 예민한 고양이의 만남은 엄청난 시너지를 낳았고 카레 입양 후 2주 간 우리 집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우리의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카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카레와 더 많은 시간을 지내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카레가 이렇게 경계심이 많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카레는 길에서 태어났다. 몇 년 전부터 보호소를 가끔 드나들며 생활했던 카레의 엄마 고양이 ‘포’는 워낙에 야생성이 강했던 아이라 보호소에서도 그냥 옆집 고양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고양이의 성격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고 하는데, 엄마 포가 그렇게 경계심이 많은 아이이다 보니 카레도 어느 정도는 물려받은 게 아닐까? 포 시즌즈 중 봄이와 겨울이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그나마 경계심이 적다고 하긴 했지만, 다섯 아이들 모두 입양 전까지는 사람을 따르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모두 사람이라는 존재에 두려움과 경계심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포 시즌즈 아이들은 첫 3-4개월 정도는 그렇게 길과 산을 넘나들며 살았다. 길에서 살던 시절이 어땠을지는 잘 모르지만, 쉽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아이들의 경계심으로 보아 길에서 살던 때에도 사람과의 좋은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보호소 근처에 사는 주민들 중에서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간혹 길에서 그들을 마주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중간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포'의 새끼들 중 하나인데, 무늬로 보아 카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마 포가 아기 고양이들을 데리고 나타난 후, 보호소에서는 아이들이 자주 오는 곳에 밥을 챙겨주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아이들이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아, 고민 끝에 고양이들을 구조하기로 결정하신 후 포획틀로 아이들을 며칠에 걸쳐 포획하였다. 아마도 그게 카레가 사람을 가까이에서 본 첫 경험이었을 거다. 아주 크고 무서운 생명체들이 자신들을 잡아다 낯선 곳에 가둬둔 경험. 분명 보호소의 방은 바깥보다 훨씬 따뜻하고 밥과 물, 화장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운 변화를 고양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도 카레를 입양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카레가 있던 쉼터 ‘포해피니스’ 는 조금 특별한 보호소였다. ‘포해피니스’ 이전에 두 명의 주인이 있었는데, 처음 개 농장이었던 곳을 두 번째 주인이 인수하고 나서 강아지들을 잘 돌보는 곳이라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쉼터를 운영하며 배려심이 넘쳤던 것으로 알려졌던 전 소장.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후원금을 노리고 보호소를 운영하던, 동물들에게는 관심도 없던 돈만 밝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아이들은 너무나도 위험하고 열악한 상태였고, 보호소의 실체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며 후원금은 점점 줄어 들어갔다. 그리고 퍼지는 소문에 더 이상 돈이 되지 않자 당시 소장이 봉사자들에게 먼저 보호소 인수를 제안했다고 한다.


2019년 4월, 봉사자 및 일부 회원의 사비로 결국 보호소가 봉사자들에게 인수될 수 있었고, 그러면서 ‘포해피니스’라는 예쁜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인수 당시 보호소의 상태는 정말 처참했다고 하는데, 영상으로 남겨진 그때의 상황을 보면 정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배설물과 쓰레기들로 넘쳐 악취로 가득했다던 대형 견사. 예민해진 다른 아이들에게 물려 숨진 듯한 아이, 위험한 상황에 병원에 가는 도중 차에서 숨진 아이, 가는 날까지 이름 하나 없던 아이까지. 카레를 입양한 후에야 조금씩 알게 된 ‘포해피니스’의 시작은 너무나 가슴 시리는 과거였다. 하지만 작은 규모로 얼떨결에 시작되다 보니 상주인 없이 봉사자들과 스태프들로만 운영되고 있었다. 스태프들 또한 각자 본업이 있기에 매일 다른 사람들이 올 수밖에 없고, 대부분이 일일 봉사자들로 구성되었다.


포 시즌즈가 생활하던 고양이방에는 CCTV가 있어 24시간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봉사자들이 들어가 밥과 물을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주고 나와야 했는데, 이런 보호소 특성상 매일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들은 봉사자들이 방에 들어가면 구석으로 숨어 덜덜 떨고 있다가, 봉사자들이 사진을 찍거나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하악질을 해댔다고 한다. 경계심 많은 고양이들 때문에 봉사자들도 아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빨리 일을 끝내고 방에서 나가기 바빴다고 한다. 만약 매일 같은 사람이 들어가 아이들과 조금씩 가까워졌다면 아이들도 사람과의 교감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매일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니 고양이들도 사람들과의 경계심이 허물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잡아서 이동장에 옮기는 것부터 힘들었고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보호소에 있는 동안 카레는 총 2번의 병원 방문을 했는데, 1차 접종 그리고 2차 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사람과 직접 터치한 기억이 카레에게는 아픈 주사와 수술이었던 것이다. 사람이라는 생명체는 카레에게 그런 의미일 수밖에 없었다. 낯설고 두려운,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존재.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포해피니스’의 전신은 개 농장이었기에 초기 보호소에는 강아지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전에도 보호소를 드나들던 고양이들은 꽤 있었지만, 포 시즌즈는 포해피니스가 처음으로 제대로 구조한 고양이들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캣타워나 숨숨집이 있는 방에서 안전하게 지냈지만, 밖에는 늘 개 짖는 소리가 가득했을 것이다. 낯선 개들의 울음소리와, 매일 한 번씩 들어오는 무서운 사람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카레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그 표정을 나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눈을 똥그랗게 뜨고 털을 세우고 있던 모습. 보호소에서 그나마 적응해서 엄마와 형제 고양이들과 잘 지내고 있었는데, 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에 의해 혼자 낯선 환경에 놓인 상황이었다. 카레는 밤이 되면 엄마를 찾는 것 마냥 창문을 쳐다보며 늑대처럼 울어댔다. 왜 자신이 이 곳에 홀로 남겨졌는지, 이 곳은 대체 어디인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인지 카레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첫 날 우리 집으로 이동 중인 카레.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다.

 

이렇게 카레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게 다 이해가 갔다. 카레가 왜 그렇게 경계심이 많은지, 왜 그렇게 사람을 무서워하는지.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는지.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는 이유는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너무 두렵고 겁을 먹어서, 일부러 몸을 부풀리고 큰 소리를 내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서워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다. 카레는 우리랑 싸우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자신이 두렵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레를 좀 더 빨리 이해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예민한 게 내 잘못이 아니듯, 카레가 예민한 건 카레의 잘못이 아니었다. 타고난 성향과 과거의 경험들이 그 예민함을 만든 것이다. 가끔 남편과 싸울 때 내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남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였다. 남편도 평소에는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한 번 욱하면 내게 대체 왜 그러냐고 말하며 나를 탓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예민하게 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불안하고 싶어서 불안한 게 아닌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보고 어쩌라고? 그런데 남편이 나에게 했던 행동을 내가 똑같이 카레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레가 왜 그렇게 예민한지, 카레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카레 탓만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짧을까?




카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을 무서워한다.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바로 뛰어가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남편과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털을 잔뜩 세워 경계하고, 낯선 사람이 집을 떠날 때까지 절대 방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다른 냄새가 나면 바로 알아채고 뒷걸음질을 친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카레를 이해한다. 이제는 카레가 예민해질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거나, 그럴 상황이 있더라도 미리 그것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우리와 지내면서 카레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우리와 친해진 후로는 절대 하악질을 하지도 않고, 발톱을 깎거나 이빨을 닦이는 등 싫어하는 행동을 해도 세게 물지 않는다. 이렇게나 착한 아이인데, 대체 얼마나 무서웠으면 남편을 피가 줄줄 흐를 정도로 세게 물었을까?


아무리 이렇게 카레를 이해하려고 해도, 카레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다시 한 번 슬퍼진다. 모두들 각자의 사정이 있다. 나도, 카레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각자의 사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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