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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2. 2020

드디어 자가격리를 끝내다

고양이의 셀프 자가격리가 해제되다

 

 


2020년 가장 많이 쓰인 말 중 분명 ‘자가격리’가 있지 않을까? 신조어는 아니지만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쓰기 시작한 단어일 테다. 의심 증상이 있다면 무조건 자가격리, 확진자와 접촉했다면 자가격리, 해외 방문 후 2주간은 자가격리! 그렇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 우리 집에도 자가격리 대상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나도 남편도 아닌, 고양이 카레였다.


분명 우리는 카레가 우리 집에 오고 며칠 후부터는 늘 카레가 있는 방 문을 살짝 열어둔 상태로 생활했다. 하지만 카레는 자가격리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잠든 밤에는 조심스레 나오곤 했지만 주된 생활공간은 여전히 작은 방이었다. 누구도 그를 격리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로 자가격리를 계속 이어갔다.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이 2주 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것처럼, 카레도 우리 집에 온 지 정확히 2주 후 자가격리를 해제했다.




카레가 밤새 종종 거실에 나와 노는 것 같긴 했지만 아직까지 캣타워에는 올라간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캣타워는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벽 쪽 구석에 있었기에 그동안은 우리를 경계하고 있던 카레에게 별로 안전하지 않은 위치이기도 했다. 분명 좋아할 게 분명한데, 아직까지 용기를 내지 못하는 카레를 도와주고 싶었다. 우리는 이케아에서 구매한 펠트 재질의 고양이 숨숨집을 캣타워 맨 꼭대기에 올려주었다. 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공간에 아늑한 숨숨집까지, 내가 고양이라도 저기 안 들어가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역시나 숨숨집을 올려두자 카레는 하루 만에 그 안에 들어갔다. 음하하!


드디어 캣타워에 올라간 카레


자가격리를 끝낸 카레는 이제 주된 생활공간을 거실로 삼았다. 이제 우리와는 경계심이 많이 허물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완전히 믿지는 않는 눈치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보다는 숨숨집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20시간 정도는 그 안에 있는 듯했고, 이제는 화장실에 갈 때 빼고는 작은 방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내 사무실이었던 작은 방을 2주 만에 되찾았다. 컴퓨터를 다시 방으로 옮기고, 이제 더 이상 카레의 눈치를 보지 않고 평화롭게 일할 수 있었다.


카레가 숨숨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카레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기 위해 설치해 두었던 작은 방의 카메라 세 대도 2주 만에 철수를 했다. 이제는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거실에 나가 숨숨집 앞에서 카레의 얼굴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카레는 여전히 우리를 불편해했다. 우리가 뚫어지게 쳐다보면 눈을 피하고 귀찮아했다. 하지만 너무 귀여운 걸 어떡해? 카레는 작은 방에 자가격리했던 2주 동안 훌쩍 큰 듯했다. 6-7개월 정도로 추정되는 카레에게서는 어느새 아기 고양이 티를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카레의 어릴 적 모습을 보지 못했던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매일 이렇게 눈 앞에서 카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우리가 부담스러운 카레. 귀여운 걸 어떡하라구...!


카레의 귀는 일반적인 코숏보다 훨씬 컸고 얼굴은 조막만 했다. 눈은 또 어찌나 큰지, 그 쪼꼬만 얼굴에 눈코입이 어떻게 다 들어가 있나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카레의 얼굴은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그런데 카레를 보고 있으면 거슬리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카레의 두 눈 앞 쪽에 두껍게 끼어 있는 눈곱이었다. 눈곱은 고양이가 스스로 떼기 어려워 대신 떼 주어야 하는데 2주 간 형제들도, 엄마도 없이 혼자 지냈으니 그동안 계속 쌓여온 게 분명했다. 떼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 카레는 우리의 터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 역시나 카레의 형제묘처럼 카레에게도 기생충이 있었다. 스태프분들과 함께 병원에 다녀온 후 카레의 화장실 모래 안에서 기생충이 발견되었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검사를 위해 배변과 기생충을 가지고 와야 한다고 했다. 징그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으으으!” 소리를 내며 배변과 죽은 기생충을 봉지에 겨우겨우 담아 병원으로 가져갔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니 역시나 기생충이 맞다며, 배변에서 알까지 발견되었다고 했다. 직접 진료를 보는 게 좋지만 카레를 또다시 병원에 데려가기는 힘들 것 같아 약을 받아와 며칠간 먹이기로 했다. 가루약을 먹여보려 했지만 카레는 이제 귀신같이 알고 가루약이 섞인 음식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방문해 이번에는 알약으로 다시 처방을 받고, 추가로 ‘필건’도 함께 구매했다. 필건이란, 주사기처럼 생긴 도구로 입구에 알약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그 구멍에 알약을 끼운 상태로 주사기를 쏘면, ‘팡’하고 (실제 이런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그냥 날아가는 소리를 표현해보았다) 알약이 앞쪽으로 쏴지는 원리인 것이다. 약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쉽게 약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이다. 아직 카레가 우리를 경계하긴 했지만, 약을 끼운 필건 앞쪽에 츄르를 잔뜩 묻혀 겨우겨우 약을 먹일 수 있었다. 며칠간 약을 먹이니 더 이상 기생충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의 사진첩에는 숨숨집에 있는 카레의 사진이 쌓여갔다. 숨숨집에서 자는 카레, 숨숨집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카레, 숨숨집에서 장난감을 보고 있는 카레, 숨숨집에서 멍 때리는 카레. 그중에서도 가장 귀여운 건 자기도 모르게 무장해제될 때였다. 자다가 긴장이 풀릴 때면 카레는 두 뒷다리를 숨숨집 밖으로 쭉 빼고 자곤 했는데, 그럴 때면 카레의 귀여운 발바닥이 보였다. 처음 본 카레의 발바닥 젤리는 사랑스럽게도 핑크색과 갈색이 섞여 있었다. 유일하게 카레의 몸에서 핑크색이 있는 부분이었다. 퐁당퐁당 번갈아 핑크색과 갈색 젤리가 랜덤으로 섞인 발바닥의 젤리는 마치 초코 젤리와 딸기 젤리 같았다. 아직 젤리를 절대 만질 수는 없었지만 실컷 볼 수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무장해제 되는 카레. 정말 미치도록 귀엽다


남편 또한 카레를 정말 귀여워하고 예뻐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하루 종일 카레와 함께 있으면서 카레에게 맞추어 행동하다 보니 카레는 나와 훨씬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양이가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행동보다는 싫어하는 행동들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기에 나는 최대한 조용하게 행동했다. 카레가 원하지 않는 것 같다면 절대 만지려고 하지 않았고, 숨숨집에서 나오게 하려 하지도 않았다. 카레는 밤늦게까지 숨숨집 안에서 자거나 멍을 때리다가 늦은 밤이 되면 나와 화장실에 간 다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은 후부터는 놀이 시간이었다. 전에는 우리와 조금이라도 닿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카레였지만, 사냥 놀이를 하며 살짝씩 우리 몸에 닿아도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너무나 기뻐 최선을 다해 몇 시간이고 장난감을 흔들었다.


자가격리 해제 전의 카레 모습.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며칠 사이에 편해진 카레. 정말 사랑스럽다

 

나는 하루 종일 틈날 때마다 카레 숨숨집 앞으로 가 카레와 눈을 마주치며 “카레~! 카레~!” 하고 카레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 카레 구래쪄? 구래쪄요?” 뭘 그랬다는 건지는 나도 모르지만 심심할 때마다 그렇게 카레에게 말을 걸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는 듯했다. 카레는 별 반응도 안 하는 데 혼자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카레!” 하고 부르면 카레가 “앙!” 하고 조심스레 대답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후 남편 또한 카레 앞에서 높은 목소리로 “카레~! 카레~!” 하며 내 말투와 목소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남편의 목소리는 내 것보다 훨씬 더 괴상했다. 결국 이럴 거면서 나를 이상하게 보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카레에게 예쁨 받고 싶으면 그럴까 노력이 가상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남편이 먼저 자러 들어간 밤, 나는 카레와 한참을 놀아준 뒤 바닥에 앉아 쉬고 있었다. 카레도 과격한 놀이 후 지쳐 바닥에 턱을 대고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아주 희미한 진동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시간이 지나도 소리는 끊임없이 계속 이어졌다. 설마 하는 생각에 카레를 향해 살짝 몸을 기울여 보았다. 놀랍게도 그 소리는 카레에게서 나고 있었다! 골골송이었다. 말도 안 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나랑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골골송을 부르다니! 평생 골골 소리를 안 내는 고양이도 있다고 들어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편안한 상태로 눈을 깜박이며 계속 골골 소리를 내는 카레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손을 뻗어 카레를 만지고 싶었지만 혹시 놀라 골골송을 멈출까 나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참 동안 카레와 눈 인사를 하며 카레의 골골송을 들었다. 카레는 그때 어떤 생각이었을까? 


이제 거실이 주 생활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카레의 의지로 자가격리를 해제하며 우리 집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우리가 꿈꿔 왔던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이제 정말 가족이 되어 간다.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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