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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3. 2020

내가 고양이 알레르기라니

음... 망했구나...

 

 


분명 고양이 알레르기가 없었다. 티봉이를 3주 간 탁묘했을 때에도 아무 증상이 없었다. 티봉이를 아무리 만져도, 신나게 사냥 놀이를 하며 티봉이가 털을 팡팡 뿜어내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카레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후로 자꾸만 재채기가 나오고 눈이 간지러웠다. 심할 때는 눈이 빨갛게 충혈될 때도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밤만 되면 같은 증상이 반복되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다른 원인이 없었다. 고양이 알레르기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알레르기는 갑각류 알레르기 밖에는 없었다. 20대 초반에 얻게 된 알레르기였다. 어느 날 집에서 엄마가 사다 두신 간장게장을 반찬으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뭔가 입술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얼얼하고 마비된 느낌이랄까? 벌떡 일어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 내 입술의 세 배는 될 정도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이런 게 바로 알레르기 증상인 건가? 심각해질 수도 있던 상황이었지만 나는 솔직히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혼자 간장게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입술이 엄청나게 커졌으니 말이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붓기는 가라앉았다. 딱히 다른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알레르기가 심한 경우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라고 하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날 먹은 몇 조각의 간장게장이 내겐 마지막이었다. 모듬 초밥에 나오는 간장 새우 초밥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갑각류 알레르기라는 것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가진 알레르기의 전부였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증상이 있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우리 동네의 한 카페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커피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 보니 고양이 몇 마리가 있는 게 아닌가. 고양이 카페인 줄도 모르고 간 곳이 고양이 카페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카페 이름에는 ‘고양이’가 적혀 있지 않았지만 간판 구석에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당시에는 여전히 동물을 무서워했고, 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반려동물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을 때였다. 역시나 고양이를 한 번도 가까이서 보거나 만져본 적도 없었다. 2층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고양이들은 귀엽긴 했지만 나도 고양이에게, 고양이들도 내게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그냥 일반 카페에 온 것처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실 때부터 눈이 간질간질하더니 금세 빨갛게 충혈되고 눈곱이 끼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원래부터 내 눈은 조금 예민한 편이고 (맞다. 눈까지 예민하다) 평상시에 렌즈를 주로 착용하기 때문에 자주 충혈되곤 했지만 그때 그것은 분명 평소와는 달랐다. 게다가 재채기까지 멈추지 않았다. 상태가 심했기에 오래 있지 못하고 금방 카페에서 나와야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구나.’


하지만 그로부터 2년 정도가 지난 후 와인바에서 고양이가 내 무릎에 올라왔을 때는 그 사실을 잊어버린 상태였다.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티봉이를 탁묘할 때도 괜찮았다. 무려 3주 동안이나 함께 있었는데도 어떠한 이상 증상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때 카페에서의 일은 나의 착각이었거나, 혹은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없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카레를 입양할 당시 입양 조건 첫 번째에 ‘고양이 알레르기가 없는 분’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당연히 아주 자신 있게 체크했다. ‘고양이 알레르기 없음.’


아니 그런데 다시 고양이 알레르기라니! 탁묘도 아니고, 이번에는 정말 우리의 평생 가족이 될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말이다. 하필이면 왜 지금인 걸까?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 있었다. 그때 카페에서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는 당장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면 지금은 낮에는 괜찮았고 밤이 되면 조금 심해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간혹 정말 괴로울 때도 있었다. 눈을 비비고 재채기를 하며 잠이 드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고양이 알레르기는 냥바냥이구나.
나는 티봉이에겐 괜찮지만 카레에겐 알레르기가 있구나…. 
음.. 망했구나….




많은 이들이 고양이 알레르기는 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털이 아닌 고양이 침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한다. 침에 들어 있는 특정 단백질 성분 때문이라나? 고양이는 목욕을 안 해도 되는 동물이라고 하는데, 직접 자신의 몸을 핥으며 늘 깨끗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온몸에 침을 묻히며 그루밍을 하는 게 일상이기에 털에 침이 잔뜩 묻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털에 노출되면 알레르기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카레와 함께 살게 된 이상,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카레가 골아 떨어질 때까지 놀아주다 보면 재채기가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 밤을 알레르기 증상으로 보내고 나서야 나는 결국 약국에 방문했다. 고양이 알레르기 약을 달라고 하자 약사는 내게 작은 약 한 박스를 건넸다. 열 개 정도의 캡슐이 들어 있는 알레르기 전용 약으로, 하루에 한 알씩 먹으면 되는 약이었다. 매일 먹지는 않았고, 특히 증상이 심하다고 느껴질 때만 먹었다. 그런데 한 달 정도가 지나고 약 한 박스를 비울 무렵, 신기하게도 알레르기 증상이 사라졌다. 아주 깨끗하게 말이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실제로 있다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인지, 혹은 내성이 생겨 적응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때부터 카레와 함께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는 괜찮다. ‘카레 알레르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카레가 아무리 털을 팡팡 뿜어대도, 하루 종일 나와 붙어 있어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심지어 카레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몸 여기저기를 핥아주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평생 약을 먹는 한이 있어도 감당할 각오를 했던 것이다. 변덕스러운 알레르기 증상이 또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지만, 고작 알레르기 따위가 카레와 나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 카레 넌 이제 평생 내 거니까!


이렇게 귀여운데, 알레르기가 대수인가?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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