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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3. 2020

늘 처음 보는 것처럼

최고야, 늘 새로워, 짜릿해!

 


 

고양이는 누군가를 기억할 때 시각적인 것보다는 청각과 후각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를 알아볼 때 생김새보다는 냄새나 목소리로 기억한다. 고양이와 첫인사를 할 때 코에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대라고 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고양이가 우리의 냄새를 맡고, 냄새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카레는 우리와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편해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안심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동안은 카레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무리해서 만지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우리가 살짝이라도 손을 위로 올리려 하면 카레가 움찔거리며 피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가까워졌기에 조금씩 만져도 멀리 도망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을 뻗어 조심스레 이마 쪽을 만지려 하니 역시나 카레는 고개를 뒤로 뺐다.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하게 이마를 터치하니 카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뭐지?’ 인간의 따뜻한 손길을 느낀 것이 생전 처음이니 낯선 게 당연했다. 조심스레 몇 번을 반복하자, 만져주는 게 나쁜 게 아니라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카레는 더 이상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그때부터는 내가 미간과 이마를 쓰다듬어 주면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뭐야... 너무 사랑스럽잖아...!



카레가 온 지 18일째 되던 날이었다. 왠지 카레가 하루 종일 나를 의식하며 따라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한참을 망설이는 듯하더니, 갑자기 내게 다가와 다리에 자신의 몸을 부비고 달아나는 게 아닌가! 고양이가 다리에 몸을 부비는 것은 자신의 냄새를 묻히는 것으로, 내 것이라는 영역표시와 같았다.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티봉이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1분 만에 한 것인데, 카레는 무려 18일이 걸렸다. 하하하! 참 힘든 여정이었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에는 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자고 있는데 새벽 즈음 뭔가 옆구리를 툭툭툭 치는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확인해보니 내 옆구리를 치고 있던 주인공은 바로 카레였다. 그때는 자다 깨서 이게 뭔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놀아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그 날부터 카레는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하루 종일 내게 자신의 몸을 부비기 시작했다. 멀리서 “카레~! 카레~!” 부르면 “앙!” 하고 대답을 했고, 내가 손을 뻗으면 다가와 손에 이마 박치기를 했다. 하루하루 카레와 조금씩 친해지는 일은 정말 재미있고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카레는 아직까지 남편에게는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카레가 나만 따라다니자 남편은 질투심에 불탔다. 나는 매일 남편에게 오늘은 카레가 나에게 뭘 어떻게 했는지 자랑하기 바빴다. 카레가 남편에게 먼저 다가가 부비기까지는 그로부터 2주 정도는 더 걸렸다.




그런데 정말 웃긴 부분이 있었다. 우리와의 경계심이 다 풀어지고 난 뒤에도 카레는 종종 우리는 처음 보는 것처럼 대했던 것이다. 우리와 계속 같이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우리가 외출을 하고 돌아오거나 방에 있다가 나오는 등 우리를 몇 시간 만에 보면 카레는 약간 고장이 났다. 버퍼링 걸린 컴퓨터 같다고나 할까? 일단은 무조건 우리를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보호소에서는 방에 매번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었기에, 카레는 당연히 여기에도 낯선 이들이 계속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방금 들어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나와 남편이 맞는지 카레는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몇 초간 버퍼링이 끝나면, 카레는 그제야 우리를 알아보고 다가와 자신의 체취를 묻혔다.


그래서인지 카레는 일단 현관 번호키가 눌리는 소리만 들려도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몸을 숨겼다. 번호키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면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것은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오는 사람은 나와 남편뿐이라는 것까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런 카레는 TV에서 나오는 번호키 소리에도 마찬가지로 깜짝 놀라 몸을 숨기기 바빴다. 우리는 그런 카레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고 웃겼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심지어 우리가 옷만 갈아입어도 카레는 도망을 갔다. 집에서 입는 옷들과 외출복이 다르기에, 낯선 냄새가 나니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더 웃긴 건 롱패딩을 입었을 때다. 카레가 우리 집에 온 건 2월이었고, 우리는 3월까지는 종종 롱패딩을 입곤 했는데 엄청나게 덩치가 큰 사람이 나타나니 카레는 경기를 하고 줄행랑을 쳤다. 우리는 외출 준비를 위해 옷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숨어있는 카레에게 허공에 대고 “잘 다녀올게~”라고 인사를 해야 했다. 또 집에 돌아왔을 때는 경계하는 카레를 뒤로 하고 빨리 옷방으로 들어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에야 카레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우리가 옷을 갈아입어 쫄아버린 카레. 쭈굴쭈굴한 모습이 너무 귀엽다.


신기하게도 카레는 아주 작은 변화도 귀신같이 알아챈다. 평소 우리 부부는 저녁이 되면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며 소파에서 쉬다가, 그 이후에는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 모습에 익숙해진 카레는 우리가 그것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으면 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부부는 성격이 급한 편인데, 그래서 집안일도 한 번에 빨리빨리 처리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대청소를 한다거나 혹은 카레의 화장실 전체 갈이를 위해 청소를 할 때면 바빠진 우리 행동이 낯선 카레는 눈치를 보며 도망을 간다. 특히 우리가 무언가 큰 물건을 옮길 때는 자신에게 무언가 해를 가할 것만 같은지(?) 백이면 백 줄행랑을 친다.


이렇게나 가까워졌지만, 늘 처음 보는 것처럼 우리를 대하는 카레 고양이. 역시나 예민한 고양이와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카레 넌 정말 최고야, 늘 새로워! 짜릿해!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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