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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4. 2020

예민한 사람에게 반려동물이란

배로 힘들지만, 배로 행복한

  



예민한 내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티봉이를 처음 탁묘했을 때, 고양이의 특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고양이가 들어갈만한 구석 공간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지 않았다. 또 낯선 공간에서 고양이가 얼마나 우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티봉이가 먼지 가득한 침대 옆 구석에 들어가거나, 밤새 울어대면 당황해 안절부절못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정도가 전부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고양이를 케어하는 일은 그래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밥과 물을 챙겨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놀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짜 우리 고양이를 입양한다는 건 아예 다른 문제였다. 그 아이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카레는 티봉이와 180도 달랐다. 적응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숨어만 있는 카레 때문에 우리 또한 많이 괴로웠다. 특히 첫 2주 간은 카레와 대치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 카레가 적응하고 우리와 가까워진 후에는 그런 걱정은 줄어들었지만, 몇 달간은 카레의 행동 하나하나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썼다. 혹시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적응은 잘하고 있는 것인지. 특히나 고양이는 아픈 것을 잘 숨기는 특성이 있다고 하기에 카레가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행동하다 싶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아 네이버 검색창을 찾았다. 카레가 혹시라도 아프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모두 우리에게 있었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이 아니라, 혹시 내가 카레의 상태를 캐치하지 못하고 제 때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카레가 더 아플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레가 아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괴로웠다.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짧게 사는 고양이가, 짧은 묘생 아프지 않고 행복하고 즐겁게만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귀여운 카레, 아프면 안 돼!

 



지난번에 보호소 스태프분들께서 카레를 병원에 데려다주신 후 한 달이 지난 날이었다. 항체가 잘 생성되었는지 검사를 하러 다시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 1,2차 접종과 3차 접종 사이 기간이 길었기에 항체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다시 접종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카레를 병원에 데려가려다 남편이 심하게 물렸던 일이 계속해서 떠올라 우리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카레와 우리 사이는 많이 가까워졌지만, 병원에 데려간다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그동안 우리는 카레가 이동장을 익숙하게 느끼도록 거실 한 구석에 이동장을 두고 그 안에서 장난감으로 놀아주거나 간식을 주곤 했다. 하지만 카레는 그때마다 이동장에 살짝 몸을 기울이기만 할 뿐 절대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동장이 어떤 의미인 것인지 아는 것일까.


처음 카레가 집에 왔을 때, 무서워서 숨어만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캣닢을 사용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캣닢에 반응하지 않는 고양이들도 있다고 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따따비 스프레이를 구매했는데, 다행히도 마따따비에는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이 스프레이를 사용해 카레를 이동장으로 유인해 볼 생각이었다.


일단 카레가 가장 좋아하는 숨숨집에 있던 방석을 이동장 안으로 넣어주었다. 그 후, 이동장 안에 마따따비 스프레이를 뿌려보았다. 만약 스프레이가 소용이 없다면 간식으로 다시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레가 마따따비 향에 취해(?) 바로 이동장에 들어가려 하는 게 아닌가! 카레의 몸이 반쯤 들어갔을 때, 나는 카레의 뒷다리를 잡아 마저 이동장 안에 넣고 문을 잠가 버렸다. 순식간에 갇혀버린 카레는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으로 이동장 문을 마구 잡아당겼다. 철컹철컹 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조바심이 들었다. 카레에게 미안했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카레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카레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이동장에 담요를 덮어준 후, 차를 타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우리가 방문한 병원은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지난번 보호소 스태프분들이 카레를 데려다주셨던 병원이었다. 친절하고 고양이를 잘 보신다는 말에 다시 이 곳을 찾았다. 차에 탄 카레는 내가 아무리 목소리로 달래주어도 겁에 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덜덜 떨고만 있었다. 얼마나 무서울까. 병원에 도착해 카레의 피를 뽑고 항체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카레는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다행히 항체가 모두 잘 생성되어 1년 후에 접종하면 된다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추가로 이빨과 눈, 귀 속 등 전반적인 체크까지 받은 후에야 우리는 안도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 이동장 문을 열어주자, 카레는 조심스레 나와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집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안심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린 채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아무리 불러도 카레는 우리 집에 온 첫날처럼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츄르를 꺼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한참 만에 겨우겨우 츄르를 조금씩 먹기 시작한 카레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카레야 미안해. 다 너의 건강을 위한 거란다. 하루 동안 기운이 없어 보였던 카레는 다행히도 다음 날부터는 다시 경계를 풀고 우리에게 먼저 다가왔다.




카레가 어느 정도 경계를 풀었으니 이제 조금씩 관리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카레가 잘 적응하고 우리와 친해지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제 하나씩 시도해볼 때가 된 것이다. 우선은 카레의 발톱을 깎아야 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깎지 않은 카레의 발톱은 날카로운 흉기와도 같았다. 카레와 놀아주다 가끔 카레의 발톱이 살짝이라도 스치면 내 피부는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남편이 카레를 뒤에서 붙잡고 미리 사 두었던 발톱 깎기를 이용해 카레의 발톱을 깎았다. 완전히 붙잡힌 게 처음인 카레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모든 발톱을 성공적으로 깎을 수 있었다.


남편과 카레. 카레는 잔뜩 성이 나있다

 

다음으로 시도해 볼 것은 양치였다. 이갈이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카레는 입냄새가 지독했다. 초반에 카레와 놀아주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 카레의 몸에서 나는 것으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카레의 침이 묻은 장난감에서 나는 냄새였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카레에게 구내염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매일매일 양치를 시켜야 하고, 만약 염증이 심해진다면 나중에는 전발치까지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함께였다. 심해지면 아예 밥을 못 먹게 될 수도 있고, 이빨의 염증들이 몸속까지 영향을 미쳐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카레뿐만 아니라 카레의 형제묘 모두가 구내염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유전적으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우리는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매일매일 카레를 붙잡고 양치를 시켰다. 카레는 잡히는 것도, 양치하는 것도 싫어 발버둥을 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카레를 더 꽉 붙잡고 이를 닦였다. 그뿐 아니라 이빨에 발라주는 젤과 물에 타 주는 케어 제품까지 구매해, 틈날 때마다 카레를 케어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빗질이 남았다. 평생 빗질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카레에게서는 털이 엄청나게 빠졌다. 특히 카레가 주 생활공간을 거실로 삼은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 카레를 붙잡고 빗질을 하자 빗에 털이 뭉탱이로 묻어 나왔다. 대체 이 많은 털이 어디에서 샘솟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빗으로 털들을 한참 모은 후에 돌돌이로 털들을 제거하는 일은 나름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미처 돌돌이가 모으지 못한 털들은 사방에 굴러다녔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 청소기를 돌려도 그때뿐이었다.


그러나 날아다니는 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 모래였다. 티봉이의 경우 입자가 큰 두부모래를 썼기에 바닥에 모래가 튈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카레는 입자가 작은 벤토나이트 모래를 사용하고 있었다. 카레가 우리 집에 오기 전 어떤 모래를 사용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었다. 일단 카레의 적응을 위해 원래 보호소에서 사용하던 모래와 같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또한, 두부모래나 펠렛 모래의 경우 우리가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고양이에게는 여러모로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 모래에 가까운 벤토나이트 모래가 훨씬 기호성이 좋고, 화장실 실수도 적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양이가 잘 걸리는 방광염 염려가 가장 적다고 하기에 우리의 편의보다는 카레의 건강과 적응을 위해 벤토나이트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카레는 좋은 모래를 사용하게 되었고 우리에겐 골칫거리가 늘어났다. 카레가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튄 모래 알갱이들은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사막화 방지 매트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침대 위에서까지 모래 알갱이들이 발견되곤 한다. 방법은 없다. 그저 매일매일 열심히 청소하는 것뿐. 카레 덕분에 우리 집이 점점 더 지저분해지지만, 그만큼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기에 점점 더 깨끗해지고 있다.




카레가 우리 집에 오고 첫 2주 간은 정말 답답했다. 카레의 눈치를 보느라 우리 집에서 마음대로 생활하지도 못했다. 상황이 언젠가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더 막연하고 또 막막했다. 하지만 카레는 카레의 속도대로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예민한 내가 반려묘와 함께하는 것은 힘든 점이 많았지만, 반대로 좋은 점들은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람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이제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준다는 것은 정말 큰 감동이었다. 내가 “카레!” 하고 부르면 멀리서 “앙!” 대답하며 내게 달려오는 카레. 어떤 상황에서든 조건 없이 똑같이 나를 사랑해주는 카레의 모습을 보면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큰 눈망울로 나에게 눈을 깜박거리며 골골송을 불러줄 때면 내가 가진 모든 아픔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카레를 만나고 난 후, 내 세상은 카레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예민한 사람에게 반려동물이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다 훨씬 더 힘들지만, 또 훨씬 더 행복한 일이다.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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