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이지 Oct 26. 2020

강아지보다 먼, 고양이보다 가까운

두 번째 반전

 


 

우리가 카레를 처음 만났을 때, 엄청난 반전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분명 입양 전에 탁묘를 해보기도 했고, 1년 간은 고양이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었는데 카레처럼 예민하고 겁 많은 고양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상상한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 우리는 많이 당황했었다.


사실 우리가 탁묘했던 티봉이는 우리 집에 온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의 체취를 묻힐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고양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딱히 경계하지 않는다 뿐이지 그렇게 좋아하는 고양이도 아니었다.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오랫동안 외출하고 돌아오면 먼저 다가와 휘리릭 부비며 “잘 다녀왔냐옹!” 인사를 해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잠시 손길을 허락해줄 뿐이었다. 자고 있을 때나 자신이 귀찮을 때 건드리면 절대 받아주지 않았다. 실제로 물지는 않았지만 물려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장난치는 게 아니라, 정말 “가만히 있는 날 왜 건드리냐옹!”라는 느낌이었다. 무릎에 올라오거나 안기는 일도 절대 없었다.


가깝고도 멀었던 티봉


그렇다 하더라도 티봉이 정도면 무척이나 양호한 케이스였다. ‘집사’라는 말이 생긴 이유도 고양이들이 강아지와는 다르게 마치 상전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도도한 성격이라고 들었기에, 우리는 카레를 입양하기 전 아이가 티봉이 정도의 성격만 되어도 아주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온 고양이 카레는 티봉이와는 아예 정반대였다. 처음에는 우리가 마치 자신을 해하려고 하는 존재인 양 굴며 심하게 경계했다. 우리는 그제야 우리의 바람이 너무나도 큰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는 머지않아 두 번째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카레와 친해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우리는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점점 고양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첫 번째 반전은 카레가 무척이나 예민했다는 것이었는데, 두 번째 반전은 그 반대였다. 알고 보니 카레는 엄청난 개냥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나기 힘들다는 상위 1% 개냥이가 바로 우리 집에 입양 온 카레였다!


이전 글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카레에게는 사람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지내며 우리가 자신을 해하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어서일까. 카레는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고, 어느샌가 마음을 활짝 열어 우리를 무한 신뢰하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그렇게 숨어 지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카레는 우리를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자신의 체취를 묻히기 시작했다. 특히 남편보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카레는 나를 훨씬 더 따랐다. 내가 어디를 가던 따라오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당연히 화장실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내가 거실에 있으면 거실에, 안방에 있으면 안방에, 작은 방에 있으면 작은 방에. 각각의 방마다 자신이 편하게 나를 보며 쉴 수 있는 공간이 지정되어 있다. 티봉이를 탁묘했을 때도 종종 티봉이가 내 근처에 오긴 했지만 내가 귀찮게 하면 티봉이는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카레는 오히려 내가 말을 걸거나 만져주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졸졸 따라다니는 것뿐이랴? 어느샌가부터 “앙!”하며 작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우리를 따라다니며 울어대고, 우리가 이름을 부르거나 이야기를 하면 대답을 한다. 고양이는 사실 성묘가 되면 울음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고 한다. 발정이 났을 때나 무서울 때, 외로울 때, 낯선 상황을 제외하고 평소에 고양이들끼리는 울음소리로 소통하지 않는 것이다. 아기 때 어미 고양이를 향해 우는 게 전부인데, 카레는 나를 진짜 엄마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게 앙앙 대곤 한다. 처음에는 카레의 목소리가 마냥 귀엽기만 했지만, 이제는 “제발 좀 그만 울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울어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카레와 친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카레 무릎냥이 만들기 대작전을 시작했다. 보들보들하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고양이가 무릎 위에 앉아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다. 카레가 우리가 직접 손으로 주는 츄르를 먹기 시작한 후, 나는 츄르를 줄 때마다 조금씩 더 내 몸 가까이에 붙여 주도록 했다. 카레가 츄르에 정신이 팔려 나를 터치하거나, 내 위에 살짝씩 올라오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카레는 츄르를 먹을 때 내 무릎 위에서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다음부터는, 뜬금없이 카레를 안아 들어 내 무릎 위에 앉히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며 바로 일어나버리곤 했지만, 몇 번을 반복하니 카레는 내가 앉힌 그대로 내 무릎 위에 앉아 쉬기 시작했고 또 몇 주가 지나자 스스로 내 무릎 위에 올라왔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내가 실제로 아는 모든 고양이 집사들 중에서 무릎냥이 고양이를 가진 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카레는 엄청난 포텐을 가진 아이였다...!


처음 스스로 내 무릎 위에 올라온 날. 정말 감격스러웠던 순간이다


지금은 내 무릎에는 물론, 내가 누워 있으면 무조건 내 배 위로 올라와 나를 핥아주고, 내 품 안에서 곤히 자기도 한다. 내게 안겨 골골대는 카레를 보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다.


요즘은 간혹 정말 카레가 고양이 몸에 갇힌 강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내가 작은 방에서 안방까지 전력 질주를 해 침대로 점프한 적이 있는데, 카레가 나를 똑같이 따라 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항상 카레가 심심해 보일 때면 함께 달리기 놀이를 하는데, 내가 “하나, 둘, 셋!” 하면서 셋에 뛰면 카레도 같이 전력 질주를 한다. 또는 예고 없이 먼저 뛰어도 뒤를 쫓아온다. 


심지어는 믿기지 않겠지만 장난감을 던져주면 물고 오는 엄청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내가 “하나, 둘, 셋!” 하고 장난감을 던지면, 장난감의 움직임을 주목하다가 달려가 장난감을 물어 온다! 처음에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장난감을 물어오는 고양이가 있다고?’ 물론,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내킬 때만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재주였다. 카레는 내가 던진 장난감을 물고 와서는 꼭 칭찬해 달라고 하는 것처럼 내 옆에 장난감을 두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가끔 카레와 놀아 주어야 하는데 힘이 없을 때, 큰 힘 들이지 않고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는 방법이라 가끔 이용하고 있다. 후후….


카레 침대는 엄마 집사 품




간혹 집에 손님들이 오면, 카레는 강아지에서 다시 완벽한 고양이로 변신해 구석으로 숨어 들어간다. 이 세상에 오직 단 두 명, 남편과 나만이 카레의 이런 귀여운 애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상위 1% 개냥이가, 남편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우리와의 처음처럼 상위 1% 예민하고 까칠한 고양이가 되는 카레. 철벽을 칠대로 치지만, 가까워지면 무한대로 사랑을 주는 이 고양이가 나는 오늘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내 옆에 딱 붙어 손을 올리고 나를 향해 눈 인사를 해 주는 카레. 너와 함께여서 행복해 카레!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이전 20화 고양이 친화적 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