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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7. 2020

고양이 홀로 집에

첫 1박 2일 외박

 


 

카레가 우리 집에 온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서른 살 내 생일을 맞이해 특별한 걸 하고 싶었다. 이 시국에 어디 멀리 가지는 못하고, 오랜만에 1박 2일로 호캉스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 때나 결혼 초에는 종종 이렇게 둘이 호캉스를 즐겼기에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남편과 기분을 내보고 싶었다.


하지만 딱 하나, 카레가 걸렸다. 카레를 입양한 이후 한 번도 8시간 이상 집을 비운 적이 없었다. 괜찮을까 싶었지만 고양이도 하루 정도는 혼자 둬도 괜찮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평생을 여행도 못 가고 살 수는 없으니, 카레도 하루쯤은 혼자 있는 연습을 해야 했다. 마침 티봉이 집사인 동네 친구 커플이 그 날 잠깐 우리 집에 들러 카레에게 밥과 물을 챙겨주고 놀아줄 수 있다고 해주었다.


사실 걱정이 되긴 했다. 카레가 하루 동안 혼자 있는 것보다, 우리가 없는 사이 낯선 사람이 방문한다는 게 더. 나와 남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무서워하는 카레는 분명 심하게 경계하고 긴장할 게 뻔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하루 꼬박 혼자 두는 건 여전히 걱정되기도 했고, 하루에 6회 이상으로 나누어 제한 급식을 하던 카레였기에 이틀 동안 먹을 밥을 한 번에 주면 양 조절을 못할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먼저 펫시팅을 자처했는데 그것을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카레를 집에 홀로 두고 1박 2일 외출을 하기로 했다. 혹시 몰라 아이패드와 공기계 휴대폰을 이용해 캣타워와 거실 전체를 비추는 실시간 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 저녁에 친구들이 와주기로 했기에 그전까지 먹을 사료를 넉넉히 주고 우리는 집을 떠났다. 앞으로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레는 떠나는 우리를 신경도 쓰지 않고 밥그릇에 코를 박고 밥을 먹고 있었다.

 

카레, 엄마 아빠 하룻밤만 자고 올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홍대에 있는 한 호텔로 향했다. 오랜만에 호캉스를 하다니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점심도 먹고, 생일 선물로 쇼핑도 했다. 오랜만에 홍대를 쏘다니며 연애 시절 추억도 떠올렸다. 카메라로 살펴본 카레는 낮에는 늘 그랬듯이 캣타워 위 숨숨집 안에서 평화로이 자고 있었다. 


저녁이 되었고 우리는 호텔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족발과 보쌈, 막국수 세트를 먹는데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해 주었고, 엄청나게 경계하는 카레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내주었다.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나는 저녁 식사와 호캉스에 집중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카레는 숨숨집에 숨어 있다가 얼마 후 조심스럽게 화장실이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한 시간 가량 친구들이 장난감을 흔들어 주었지만 역시나 카레와 가까워지는 데에는 실패.


친구들은 카레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물그릇의 물을 갈아 주고 밥을 채워 주었다. 사료는 내일 오후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양을 주라고 미리 부탁해두었다. 아이를 혼자 둘 경우 평소보다 사료를 더 넉넉히 주는 게 좋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한 거였다. 아까 우리가 아침에 주고 간 밥에, 저녁에 친구들이 준 양까지 더하면 평소보다 훨씬 많으니 알아서 조절해 먹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친구들이 카레를 챙겨주고 간 후 우리는 CCTV를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닫혀 있어야 할 옷방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바닥에 널려 있던 카레의 화장실 모래를 발견한 친구들이 고맙게도 옷방에 있던 청소기를 사용해 청소까지 해 준 거였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우리 집 옷방 문은 ‘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당겨야만 제대로 닫힌다는 것을. 그렇지 않을 경우 아주 작은 힘으로 밀어도 바로 열린다는 것을.

 

사실 우리 집에서 카레가 절대 출입하지 못하는 공간이 있는데, 옷방과 베란다다. 다른 곳들은 모두 방묘창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 두 곳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는 옷방은 환기를 위해 늘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또한 옷방은 말이 옷방이지 사실 따로 창고가 없는 우리 집에서 창고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카레를 입양하기 전, 카레에게 위험한 물건들을 다 그 안에 쳐박아 둔 상태였다.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으로 보아 카레가 그 방 안으로 들어간 게 분명했다. 하도 물건들이 많아 그 안에 카레가 작정하고 숨기라도 한다면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옷은 하나도 걱정이 안 되었다. 혹시라도 방묘창이 없는 창문으로 카레가 밖으로 떨어질까, 위험한 물건에 혹시라도 다치지는 않을까 나는 불안해졌다. 가뜩이나 소화도 되지 않는데 걱정거리까지 더해지니 나는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꾸만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다. 혹시 몰라 CCTV를 통해 카레의 이름을 불러봤다. 내 목소리는 알아들을 것 같아서. 하지만 “카레~, 카레~” 하고 몇 번을 불러도 화면 속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내 불안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한참 동안을 진정하지 못하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거면 집에 가자고. 호텔과 집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카레의 안전을 확인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굳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이상했다. 고맙게도 남편은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재미있게 보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집에서 자는 게 훨씬 더 편하니 그렇게 하자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10시가 넘은 그 야밤에 짐을 다 싸들고 체크아웃을 했다. 그 시간에 체크아웃한다는 우리를 호텔 직원은 조금 이상하게 보는 듯했다. 싸우고 각자 집에 가는 줄 알았으려나?


집에 도착하자 역시나 보이는 곳에 카레는 없었다. 옷방에 있는 게 분명했다. “카레~, 카레~” 방문 앞에서 몇 번을 반복해서 부르자 카레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옷방에서 나와 재빨리 도망가던 카레는 잠시 멈칫하더니 우리를 보고 달려왔다. 아까 왔던 낯선 사람이 돌아온 줄 알았나 보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카레는 다시 집사들을 얻었다.


하지만 그 날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밥그릇을 살펴보니 내일 오후까지 나눠 먹어야 했던 많은 양의 사료가 다 없어져 있었다. 그걸 다 먹었다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카레의 화장실 앞에는 처음 보는 갈색 흔적이 두 군데나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혹시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카레가 대변 실수를 한 건가? 가까이 가서야 깨달았다. 카레가 토한 흔적이었던 거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때까지 한 번도 카레가 토한 것을 본 적 없던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병원에 전화를 했고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카레가 그냥 과식으로 인해 사료를 토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카레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낯선 사람이 와서 그렇게 무서운 와중에도 밥을 있는 대로 꾸역꾸역 다 먹고 토를 하다니. 식탐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많이, 평소보다 아주 많이 주면 다른 고양이들처럼 알아서 나눠 먹을 줄 알았지... 집사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카레 엄마가 미안해..

 



그 후 우리는 자동급식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카레와 나의 평안을 위해.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 집을 비울 때 CCTV는 설치하지 말자고. 분명 별 일 없이 잘 있을 텐데, 괜히 카메라를 설치해서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으니 걱정할 거리가 덜어져 외출을 해도 마음이 훨씬 편했다. 


초보 집사들은 이렇게 또 한 뼘 성장해 간다. 아, 도와준 친구들에게는 우리가 그날 밤 호캉스를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말하지 않았다. 덕분에 즐겁게 놀고 왔다고, 정말 고맙다고만 전했다. 이건 우리끼리만의 비밀이다.

 

초보 고양이 엄마는 이렇게 또 배웁니다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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