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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8. 2020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에게

행복하자, 아이들아




처음 고양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틈날 때마다 여러 고양이 품종들을 검색하며 아이들의 사진을 찾아보곤 했다. 그 중에서 나는 얼굴이 갸름한 아이들보다는 조금 통통하고 코가 납작하게 생긴 아이들이 가장 내 취향이었다.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온 눈이 똘망똘망한 고양이! 나중에 혹시 고양이를 들이게 된다면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특히 귀엽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스코티쉬 폴드와 스트레이트, 아메리칸 숏헤어, 브리티쉬 숏헤어 같은 아이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품종들은 모두 펫샵에서 가장 인기있는 품종들이었다.


티봉이를 탁묘하고 나서 고양이에 대해 더 진지하게 알아가기 시작하며, 나는 이런 ‘인기 품종’이라는 이름 아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펫샵의 아이들은 대부분 강아지, 고양이 농장에서 오는데, 좋지 않은 환경에서 무분별한 번식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인기 있는 품종의 고양이들은 수요가 많다는 이유로 더 많이 ‘생산’되고 그 와중에 혹시라도 아픈 아이들이 생긴다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펫샵으로 간 후에는, 작고 귀여워야 잘 팔린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일부러 밥을 조금씩만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펫샵에서 2-3개월 정도 된 아기 고양이라고 분양을 받았는데, 너무 빨리 발정이 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아기 고양이들이 수요가 많기 때문에 아이의 생일을 속이면서까지 장사를 하는 것이다. 쇼윈도우 상품들로 진열되다, ‘팔리지’ 않아 그 사이 자란 아이들은 더 이상 상품성이 없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작은 새끼들을 낳는 역할이 된다는 이야기들. 게다가, 전문 캐터리나 브리더가 아닌 이상, 펫샵에서 인기 품종으로 팔리고 있는 아이들은 사실은 실제 그 품종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비슷한 모습을 가진 아이들끼리 교배를 시켜 인기 품종과 비슷한 외형으로 태어나면 그 품종으로 둔갑해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직접 그 현장을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펫샵에 대해 조금만 검색해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라는 말을 예전부터 많이 듣긴 했지만, 실제로 그 말이 와닿지는 않았는데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도저히 펫샵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품종묘에 대해 로망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렇게 품종묘와 멀어져 갔다.




그 후 나는 카레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카레의 사진을 봤을 때, 정말 귀엽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레와 함께하면서, 진심으로 카레가 정말 미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카레를 만나기 전, 코리안 숏헤어, 일명 ‘코숏’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코숏’이라는 건 사실 실제 품종이 아니라, 길에서 살면서 여러 품종이 섞인 믹스묘를 뜻하는 것이다. 당연히 다 다르게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왜 똑같다고 생각했을까?


길냥이들, 일명 ‘코숏’은 정말 컬러부터 생김새까지 정말 천차만별인데, 우리 카레는 진심으로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카레의 가장 큰 특징은 콧대에서부터 입까지 이어지는 진한 카레 무늬이다. 꼭 몰래 카레 먹다 묻은 것처럼 생겼는데, 강아지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해서 정말 귀엽다. 그리고 얼굴은 정말 조막만한데, 눈이 엄청나게 커서 그 큰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일반적인 코숏에 비해 귀가 굉장히 큰 편이다. 카레를 실제로 본 지인들은 꼭 아비시니안 품종이 섞인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길냥이었기에 그럴 가능성은 아주 적지만 실제로 닮아 보이는 부분도 있다. 또 카레는 뒤에서 보면 완전한 고등어 태비 고양이지만, 앞에서 보면 몸이 하얀 털로 뒤덮여 있어 앉아 있으면 꼭 새하얀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보인다.


우리집 고양이라서 그런가? 너무 예쁘게 생겼다.


그 뿐만이 아니다. 카레의 몸 중에서 핑크색이 딱 한 부위 있는데, 바로 발바닥 젤리이다! 신기하게도 카레의 발바닥 젤리는 핑크색과 갈색이 퐁당퐁당 섞여 있다. 카레가 꼭 기지개를 피는 것처럼 발바닥을 쫙 폈다가 쥘 때면 콕콕 박힌 딸기 초코 젤리들이 시선을 강탈하곤 한다. 털은 또 얼마나 부드러운지, 생각지도 못했는데 털 색깔마다 털의 감촉이 다르다. 등 쪽의 태비 털은 매끈하면서 부드럽고, 앞 쪽의 하얀 털은 보송하면서 부드럽다.


귀염뽀짝 블랙핑크 젤리




카레를 만난 후, 나는 정말 고양이의 품종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예쁜데, 품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주위에서 종종 카레의 품종을 물어보곤 하는데, 그 때마다 ‘코숏’이라고 대답하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카레가 코숏이 아니었다면? 특정 품종의 고양이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이가 어떤 혈통을 가지고 있던 간에, 우리 가족이 되면 품종 따위 아무 상관 없다. 내 눈엔 몇 백만원으로 팔리는 순수 혈통 고양이보다, 길에서 나고 자란 우리 카레가 가장 예쁘고 귀엽다. 내가 어디를 가든 졸졸 쫓아와 다가와 부비고, 나를 핥아주고, 눈을 깜박, 깜박 하며 인사를 해주고, 박치기를 하고. 나를 쳐다보며 ‘앙!’ 하고 대답하고, 내 무릎과 배 위를 차지한 후 내 가슴 위에 턱 하니 손을 올려두는 카레. 어찌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없겠는가?


사실 나 또한 불과 몇 년 전까지는 고양이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사납고, 무섭게 생겼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강아지들처럼 웃는 표정을 짓거나 하는 등의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고 느껴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정말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고양이들은 강아지들만큼 표정이 다양하지 않고 또 강아지들만큼 쉽게 애정을 주지는 않지만, 누구보다도 진중하고 한 번 믿음을 주면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이다. 눈을 깜박이며 신뢰를 표현하고, 다가와 자신의 냄새를 묻히며 애정을 표현하고, 골골 소리를 내며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과거 모든 고양이를 무서워 했던 나는, 지금은 이 세상 모든 고양이가 모두 사랑스럽다.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아프지 않고 모두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부푼 꿈을 꿔 본다.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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