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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9. 2020

집안일도 안 하는 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고양이

 



어느 휴일이었다. 한가로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이제 미뤄 두었던 집안일들을 할 시간이었다. 남편과 내가 각자 알아서 할 일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아유! 집안일도 안 하는 게!”라고 소리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방금 청소기를 돌렸는데 그새 카레가 화장실에 다녀와 모래 알갱이들이 다시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한숨을 쉬며 청소기를 다시 꺼내 온 남편을 보며 카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귀여운 장면이었다.


"아유! 집안일도 안 하는 게!"


카레가 우리 집에 온 지 거의 사계절을 채워가며,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이 맞았다. 우리 집 구성원은 남편, 나, 카레, 이렇게 셋이었지만 그중 고양이 카레는 집안일을 하나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움직이기만 해도 집안일을 생성해내는 존재였다. 털을 뿜뿜 뿜어대고, 온 바닥에 모래 알갱이를 흩뿌려 놓고, 스크래쳐를 긁어 종이 조각들을 여기저기 나뒹굴게 만든다. 그것뿐이랴?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앙앙 대곤 하는데, 너무나도 귀엽지만 가끔은 정말 너무나도 시끄러워 견딜 수 없는 순간도 있다. 누가 고양이를 독립적인 동물이라 했던가? 카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양이다!




카레와 우리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 오전 7시, 알람 소리에 맞추어 남편과 카레가 일어난다. 카레는 남편에게 골골송을 부르며 애교를 부리다가, 잠시 후 자동급식기에서 사료가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뛰어가 밥을 먹는다. 남편은 밤새 카레가 생성해 놓은 감자와 맛동산을 캐낸 후 출근 준비를 한다. 남편이 집을 나서면 카레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내 옆에서 잠에 든다.


| 오전 9시, 내가 일어남과 동시에 스윗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카레가 보인다. 내가 깨면 내 배 위로 올라와 골골송을 부르며 눈 인사를 하고, 손에 얼굴을 비비며 만져달라 앙앙 댄다. 간혹 내 얼굴에 앞발을 턱 하고 올리곤 하는데, 꼬순내가 솔솔 풍긴다. 카레와 시간을 보내고 일어나면 모래 알갱이들과 스크래쳐 조각들로 밤새 지저분해진 집을 청소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카레 장난감들을 정리한 후에는 카레의 물그릇을 씻어 신선한 물로 갈아주고, 배고프다고 보채는 카레에게 밥을 챙겨준다.


| 오전 10시, 안방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 밥을 다 먹은 카레는 내 뒤에 있는 침대나, 책상 바로 옆 캐비닛 위에 올라가 그루밍을 하다가 잠에 든다. 가끔 내 무릎 위나 책상 위에서 자기도 한다. 도중에 몇 번 깨서 또 배고프다거나 심심하다고 앙앙 대기 때문에 중간중간 카레를 케어해주며 업무를 봐야 한다.


진짜 귀엽긴 한데, 엄마 사료값은 벌어야지 카레...ㅠㅠ

 

일하고 있으면 무릎 위로 올라와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존다

  

| 오후 6시,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집안 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다시 한번 돌리고, 카레가 그새 만들어 낸 감자와 맛동산을 다시 캐낸다. 카레에게 (또) 밥을 주고, 잠시 놀이 시간을 가진다.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지 않는 날에는 저녁 준비를 하는데, 카레가 요리 재료를 호시탐탐 노리므로 잘 방어해야 한다.


| 오후 7시, 번호키 눌리는 소리에 카레가 바로 현관 앞으로 뛰쳐나가 남편을 반긴다. 벌러덩 바닥에 누워 반갑다고 애교를 부려댄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때는 식탁 위나 싱크대에 올라가 음식들을 탐내지만 우리는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옆에 딱 붙어 앉아 자신에게도 맛있는 것을 달라고 계속 시위를 하면 가끔 간식을 준다.


| 오후 8시,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나는 정리를 도운 후 카레를 잡아 양치를 시킨다. 신기하게도 카레는 치약 냄새만 맡아도 바로 알아채고 도망가는데, 버둥거리는 카레를 꽉 잡고 억지로 이를 닦여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빗질을 하는데 아무리 빗어도 털은 끊임없이 계속 나온다. 하지만 카레가 오래 견뎌주지 않으므로 적당히 시켜야 한다. 다음으로는 카레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 시간이다. 우다다를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다가 졸기를 반복한다.


| 오후 11시, 남편과 나는 씻고 잘 준비를 하고, 카레도 그루밍을 한다. 우리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카레는 문 앞에서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카레의 밥을 챙겨주고, 카레의 식기들을 씻어주고 물도 갈아 준다. 카레와 놀아주다가 침대로 들어가면 카레는 남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이렇게 반려묘와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다. 외출을 하지 않는 날에는 아침에만 자동급식기에서 사료가 나오도록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그 외에 5회 정도는 시간마다 밥을 챙겨주고 있고, 또 중간중간 신선한 물로 갈아주기도 해야 한다. 심지어 화장실에 다녀오면 응꼬(?)를 닦아주기도 해야 한다. 혼자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카레가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린 물건들을 치우는 일들도 생각보다 번거롭다. 리모컨 같은 물건들을 떨어뜨리는 것은 예사이고, 간혹 물컵을 엎기도 한다. 여름에는 터치로 작동하는 선풍기 위로 돌아다니다가 전원을 키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휴지나 키친타올을 다 찢어 놓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고 일어나면 자동급식기 위치가 거실 반대편에 가 있던 적도 있었다. 부수지는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 우리가 애지중지 키워온 식물들도 카레 덕분에 다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처음에는 온갖 물건을 다 망가뜨리는 파괴왕 카레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고양이와 함께하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그래, 카레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거기에 그 물건을 둔 내가 잘못이지...’ 하고 반성을 하고, 중요한 물건들은 다 미리 치워 두거나 고정을 해두고 있다. 


매일 할 일 말고도, 주기적으로 해야 할 일들도 있다. 3주에 한 번씩 카레의 화장실 모래를 다 버리고 물청소 및 소독을 해 주어야 하고, 때때로 자동급식기도 해체해 통째로 세척해주어야 한다. 틈틈이 건강을 체크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도 포함된다.


화장실 전체 갈이 중. 카레 아직 거기다 싸면 안 돼...!




고양이가 온 후 우리 집은 이처럼 무척이나 소란스러워졌다. 늘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고, 또 하루 종일 우는 카레 때문에 정신이 없다. 이렇게 집안일 하나 못하는 카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카레지만, 그래도 우리는 카레 덕분에 오늘도 웃는다. 카레가 먼저 다가와주고, 다리에 부비며 인사해 주고, 눈 인사를 하며 골골송을 불러주고, 올라와 품에 안겨 할짝 할짝 핥아주면, 이런 번거로움 따위 모두 다 싹 잊어버리게 된다.


카레와 함께하는 오늘도 나는 3배쯤 더 바빠졌지만 100배쯤 더 행복해졌다.


예쁜 카레. 정말 정말 사랑해!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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