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이지 Oct 30. 2020

우린 그저 예민하기만 한 존재들은 아니라고

쿨해지지 않을 거야

 



언젠가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그냥 좀 쿨해져 봐!” 나쁜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내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한 조언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쿨하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잠시 후 나는 대답했다.

 

“나는 쿨해지기 싫어!”

매사에 까다롭고 유난스럽게 구는 것보다는 ‘쿨’ 해지는 게 훨씬 편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예 신경 쓰지 않고, 걱정도 별로 없을 테고, 밤에 잠도 잘 자겠지. 이상한 꿈도 잘 꾸지 않을 테다. 분명 서른의 나는 10대의 나보다 훨씬 더 쿨해졌다. 그리고 예민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쿨한 부분들도 많다. 예를 들어, 나는 내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또, 결혼 과정에서도 나는 세부적인 것들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스트레스나 트러블 없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내 기준으로 중요한 것들에는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쿨하게 구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어 없이 그냥 전반적으로 ‘쿨해지고 싶냐’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NO였다. 나는 쿨해지고 싶지 않았다.


내게 ‘예민함’을 뺀다면 그게 과연 나일까? 이런 예민함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아닐까. 물론, 내게 일어나는 일들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이 쓰이고, 가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해질 때면 이런 내가 싫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나이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쿨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내가 할 말을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을 때도 나는 내 속에 있는 말을 비로소 꺼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런 결과들로 인해 나는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선택이 후회가 되지 않았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이 행동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못 했다면 그것 때문에 더 괴로웠지, 하고 나서 받는 불이익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었다.


이렇게 사는 건 어쩌면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분명 나의 예민함으로부터 오는 좋은 점들이 있었다. 예민하기 때문에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는 더 꼼꼼하고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또 관찰력이 좋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잘 알아챈다. 늘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운 나였고, 이런 나의 성격은 나를 자주 갉아먹곤 했지만, 내 예민함은 단순히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 한 부분은 늘 그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불안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과거 불안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원시인들은 위험 상황에 더 쉽게 노출되어 살아남지 못했지만, 보다 불안을 더 느끼는 사람들은 미리 조심하고 대비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성향이 우리 모두의 DNA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사회는 예민한 사람들이 만들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그 결과인 것이다. 여성이 투표권이 없던 시절, 흑인들이 노예였던 시절, 사람들은 ‘무슨 여자가 투표를 해?’라고 생각했고, 흑인들은 당연히 차별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의 투표권, 흑인의 노예 해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예민한 사람들이 그동안 열심히 목소리를 낸 결과다. 그들 또한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싸워왔다.


우리는 자주 그저 예민하기만 한 존재들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예민함'이라는 한 단어로만 설명되는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고, 또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인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때때론 세심한 사람이, 예리한 사람이, 감성적인 사람이, 혹은 명민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이런 성향을 우리의 권리와 타인을 위한 배려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닌, 타인을 향한 무례함의 핑계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예민함'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오지라퍼나 프로 참견러가 될 수도,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는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불이익이 있다고 한들 먼저 부딪히고 본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들을 알아보는 내가, 부당한 상황에서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내가, 이런 나라서 너무 좋다. 


가끔 또 이런 생각을 잊어버리고, 스멀스멀 내 '예민함'을 자책하게 되는 상황이 오려고 할 때마다 나는 다시 내게 이야기해본다. 난 쿨해지지 않을 거라고. 쿨해지기 싫다고.


이런 내가 나라서 너무 좋다!




그리고 이것은 카레도 마찬가지다. 카레는 예민한 고양이이지만, 동시에 세심하고, 또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이이다. 만약 카레가 예민하지 않은 아이였다면? 우리와 가까워지는 과정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지금처럼 감격스럽고 또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만약 내가 이렇게 예민하지 않았더라면, 카레를 지금처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또 카레의 눈높이에 맞추어 조심스레 행동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그랬다면 카레가 지금처럼 나를 의지하고, 신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예민함은 작은 변화도 다른 사람보다 금세 알아채게 만들기 때문에, 앞으로 혹시 카레가 아프더라도 남편보다 훨씬 더 빨리 알아채고 알맞은 조치를 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무서워하지만 오직 이 세상에서 나와 남편에게만 먼저 다가오는 카레가 우리는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가까워지기 전까지 두꺼운 철벽을 치고 가로막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철벽을 우르르 무너뜨리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카레가, 이런 카레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다.


이런 너라서 더 사랑해 카레!




이전 25화 집안일도 안 하는 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