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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30. 2020

고양이가 왔고, 내 세상이 변했다

고양이의 시간

 



고양이와 살기 전까지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에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알지 못했다. 분명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는 가늠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행복한 삶을 꿈꾸며 고양이를 들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사실 고양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오히려 고양이를 키우며 더 많은 걱정과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입양 초기, 카레가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 사건 사고만 일어나던 때에는 ‘우리 과연 계속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카레가 완벽하게 적응을 하고 나서도,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시간을 들여 카레를 케어해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로 늘어난 집안일에, 여행도 마음먹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사실 가장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카레가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나는 카레의 나이를 계속 계산해보았다. 카레는 2019년 9월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었다. 집고양이의 수명은 약 15년이고, 정말 오래 사는 고양이는 20년 정도까지 산다고 한다. 이는 사람의 나이로 약 100세 정도와 비슷하다. 


길어도 고작 20년. 카레가 우리 곁에 있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카레와 함께한 지 이제 겨우 사계절을 채워 가고 있는데, 아직 우리 함께할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남았는데도 나는 벌써부터 이렇게 빨리 흘러버리는 시간이 너무나도 야속하다.


고양이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느리게 흘러간다. 내가 카레와 함께하지 못하는 1시간도, 카레에게는 5시간처럼 길게 느껴지겠지. 카레가 나를 언제나 그렇게 반겨주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두 눈을 깜박이며 인사해주는 것 아닐까. 그래서 자다 일어나면 무조건 나를 찾아와 내 품으로 파고드는 것 아닐까.



나는 항상 카레를 보며 위로를 받는다. 우울하고, 무기력해질 때, 불안할 때, 걱정거리가 있을 때, 그냥 이유 없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카레를 보고 있으면 내가 가진 걱정과 불안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카레의 세상에는 오직 나와 남편뿐, 먹고, 자고, 싸고, 노는 것 외에는 아무런 걱정거리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카레는 내가 어떤 모습이던, 어떤 행동을 하던, 언제나 나를 똑같이 대해 준다. 가끔 내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카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작은 아이에게서 어떻게 이렇게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이 샘솟는 것일까? 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나 큰 사랑을 주냐는 말이다. 카레는 어두웠던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는 빛과 같았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아, 나는 늘 엄마를 사랑해.’ 늘 이렇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해주는 카레의 모습에 나는 용기를 얻는다.



카레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진짜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카레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고, 내게 의지하는 건 혹시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서였던 것은 아닐까. 혼자가 아니라고, 언제나 자신이 함께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건 없이 나를 이렇게나 사랑해주는 너란 존재가 나에게서 사라져 버린다면, 과연 내가 견뎌낼 수 있을지 나는 벌써부터 겁이 난다. 지금은 카레가 이렇게 어리고 건강하지만, 시간이 흘러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고, 이빨이 빠져 씹지를 못하고,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끔 남편에게, 카레가 빨리 떠나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슬퍼진다고 이야기할 때면,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그 반대가 아닌 게 참 행운인 것 아니냐고. 우리가 빨리 떠나는 것보다 카레가 우리보다 빨리 떠나기에, 카레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사랑을 주고 좋은 기억만 가득 채워 보내줄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카레가 있던 유기동물 쉼터에 이런 말이 쓰여있다고 한다. '유기견 한 마리를 데려온다고 온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 개에게는 세상이 바뀌는 일이다.’ 그 말이 맞았다. 벌써부터 카레가 빨리 떠나가야 한다는 것이 슬프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카레의 묘생은 전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온다고 온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 고양이에게는 세상이 바뀌는 일이다.


이 생이 끝나고, 하늘나라에 가면 지금까지 나와 함께했던 반려동물들이 마중 나와 있다는 귀여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카레가 짧은 생을 마치고 고양이 별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카레는 늘 고양이 별에서 나를 지켜보고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면 가장 반갑게 달려와 나를 맞아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나를 다독이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본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고, 카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주려고 한다.


가끔은 또 이런 생각을 한다. 20년 후 카레가 떠나면 다시 고양이로 태어나 또 우리에게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그렇게 우리가 끝없도록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본다.






예민한 여자에게 어느 날 예민한 고양이가 찾아왔다.
고양이는 여자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주었다.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하다고,
당신이 어떤 모습이던 늘 똑같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고양이가 왔고, 내 세상이 변했다.



 


지금까지 '예민한 여자에게 어느 날 예민한 고양이가 찾아왔다'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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