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이지 Oct 28. 2020

나를 닮은 고양이

참 비슷해 우리




“카레, 우리랑 좀 닮은 것 같아.”


언젠가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했는데, 알고 보니 생김새가 아니라 성격을 말하는 거였다. 카레가 뒤끝이 없는 게 우리랑 참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우리 부부는 싸울 때는 마치 서로를 죽일 듯 치열하게 싸우지만, 그렇게 싸우고도 잘 화해만 하면 바로 다시 잉꼬부부로 변신을 한다. 결혼 4년 차인 지금까지도 아직까지 자기 전 뽀뽀와 포옹은 물론이고, 매 카톡 메시지마다 하트를 붙이며, 대화가 마무리될 때는 사랑한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여전히 꽁냥꽁냥한 우리 부부. 단어에 '쿠'를 붙이는 것은 우리 부부의 유행어다(?)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비결은 둘 다 뒤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엄마랑 다투고 난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엄마에게 말을 걸곤 했는데, 엄마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아 대답이 없어도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뒤끝이 없는 게 장점이라 했다. 그런데 남편 또한 마찬가지로 뒤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둘 다 뒤끝이 없으니 싸우고 나서도 찝찝한 게 아니라 잘 싸웠다는 마음과 함께 더 돈독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좋은 경기였다…


그런데 우리의 고양이 카레도 마찬가지였다. 냉장고 사건, 병원 미수(?) 사건 등을 겪은 후, 우리는 카레가 그나마 조금 적응했던 것까지 리셋될까 봐 걱정을 했다. 하지만 카레는 우리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바로 다음 날부터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만약 진짜 뒤끝이 심했다면 다시 구석으로 들어가 며칠을 안 나올 텐데, 냉장고에서 떨어지고, 공포에 질려 남편을 심하게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의치 않고 계속 자신의 페이스대로 적응을 해나갔던 것이다. 처음에 그렇게 경계를 했음에도 한 달만에 우리와 가까워진 것은 카레가 뒤끝이 없기 때문이었다.




냉장고 사건

https://brunch.co.kr/@saige/18


병원 미수(?) 사건

https://brunch.co.kr/@saige/19




생각해보니 카레와 내가 닮은 점이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우리 둘 다 굉장히 예민하지만, 예민하다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의 가장 큰 공통점은 낯선 이들에게 경계심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방어기제 때문인지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린다.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고 진짜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넘겨 짐작하는 편이다. 사람들과 빨리 가까워지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고, 이 사람이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내 이야기를 잘 털어놓지도 않는 편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마이웨이’ 스타일이라고들 한다.


카레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함께하며 이제 더 이상 사람이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법도 한데, 지금까지도 카레는 낯선 사람을 무척이나 무서워한다. 초인종 소리만 들리면 바로 숨어버리고, 낯선 사람이 떠날 때까지 안심하지 않고 그 사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도 한 번 신뢰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견고했던 철벽도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나는 평소 정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어느 선 이상 가까워지고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는 가리지 않고 퍼주는 편이다. 혼자서도 잘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진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의존적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카레는 정말 나와 비슷하다. 세상에 단 두 명, 남편과 나에게는 개냥이가 되지만, 낯선 사람이 오면 내 옆에만 붙어 덜덜 떨며 경계를 풀지 않는다.




예민한 특성 때문인지 나는 카레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조심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남편이 자꾸만 카레가 있는 방에 들어가려 해도 최대한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혹시 카레가 놀랄까 큰 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카레가 조금씩 방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도, 최대한 카레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카레의 속도에 맞추어 행동하려 했다. 카레도 느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자신과 비슷한 것 같다고. 카레는 특히 나를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따르는데,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서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나 사람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우리에게는, 특히 나에게는 세상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준다는 게 너무나도 고맙고 감동적이다.


내 사랑 카레


카레와 나의 공통점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카레와 나는 둘 다 겁이 매우 많은 편이고, 금방 금방 배고파지는 특성(?)이 있어 자주 음식을 먹어줘야 한다. 잠이 많다는 것도 닮았고, 스킨십을 매우 좋아하지만 원하지 않을 때는 칼 같이 거절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아, 카레가 남편과도 닮은 점이 있는데, 둘 다 아주 시끄럽다는 점이다. 카레는 조금이라도 배가 고프거나 심심할 때, 혹은 관심을 받고 싶을 때면 끝없이 울어댄다. 남편 또한 저녁에 집에만 오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랩을 해대는데,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우리 집 두 김씨들 때문에 지금도 시끄러워 죽을 것 같다.


“아 제발 좀 조용히 하라구!!!!”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이전 22화 고양이 홀로 집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