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이지 Oct 26. 2020

고양이 친화적 집

한 고양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집안이 필요하다

 



입양 전, 우리는 생각했다. ‘고양이 한 마리 입양한다고 뭐 얼마나 필요하겠어?’ 몇 가지 고양이 물품들은 당연히 구매해야 했지만 친한 지인들이 고양이 집사들이었고 그렇게까지 신경 쓰고 살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어쩌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티봉이를 탁묘할 때도 밥그릇과 물그릇, 화장실, 사료, 숨숨집 정도만 가져왔고 나머지는 원래 우리 집 상태 그대로였다. 티봉이가 3주 간 우리 집에 있기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카레가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만에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온 집안을 아예 뒤집어엎어야 했던 것이다. 먼저, 거실의 경우 캣타워 위주로 모든 가구를 다시 재배치해야 했다. 가뜩이나 좁은 거실에, 욕심은 또 많아 50만 원짜리 고급 대형 캣타워를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창가에 있던 식물들을 집안 이곳저곳으로 다시 배치하고 캣타워를 창가 구석에 둔 후 나머지 가구와 물건들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었다. 그런데 식물들 중 가장 큰 나무는 카레의 캣폴 대용으로 쓰여 며칠 만에 쓰러져버렸고, 한 화분은 넘어뜨려 깨져 버렸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그렇게 3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식물들을 다 보내주어야 했다. 흑...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레가 워낙 뛰어다니기에 혹시 바닥이 미끄러울까 러그도 몇 개 구입해 놓아두었고, 여기저기에 스크래쳐도 배치해 두었다. 테이블 다리에 감아 쓰는 수직 스크래쳐와, 눕혀 놓고 쓰는 골판지 스크래쳐까지. 카레에게 다양한 스크래쳐 경험(?)을 주기 위해 신경을 썼다. 밥그릇과 물그릇도 따로 놓을 자리를 만들고, 이동장도 꺼내 두어 카레가 평소 숨숨집으로 사용하면서 익숙해지게 했다.

 

여기저기 '카레존'이 있다

 

거실에서 가장 큰 가구인 소파에도 변화가 있었다. 결혼 전 아무 생각 없이 편하고 관리가 편하다는 이유로 가죽 소파를 구매했는데, 그건 카레에게 엄청나게 큰 스크래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소파 커버를 이용해 전체를 덮어버려 최대한 긁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몇 번의 수정 끝에 최종 모습이 확정되자 이사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는데 꼭 다시 이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물건들보다 카레의 물건들이 더 많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사람 두 명 사는 집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 들어왔다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버렸다.


카레에게 맞추어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리의 행동에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평소 틈날 때마다 환기를 하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문과 창문을 열 때에도 조심조심 열어야 했다. 카레가 언제 어디서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방묘창을 설치하긴 했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외출할 때에는 꼭 창문을 잘 닫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옷 방은 카레를 완전히 출입 금지시키고 있었기에 카레가 혹시나 들어가지 않도록 문단속을 철저히 해야 했다. 옷 방 문의 경우 끝까지 당기지 않으면 잘 닫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카레가 처음 자가격리를 했던 작은 방에는 여전히 카레의 화장실을 두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작은 방이라 카레의 화장실이 거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카레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 작은 방 전체에 냄새가 퍼지기에 우리 또한 이제 그 방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방 하나 전체가 카레의 화장실이 되어버린 셈이다.



심지어 식사를 할 때도 변화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식사 시간에 편하게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카레는 길냥이 출신이라서 그런지 식탐이 강하고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관심이 많다. 아마 길에서 살며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들도 많이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초반에는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모습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카레의 건강을 위해 우리가 먹는 음식은 절대 주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항상 긴장한 상태로 카레가 음식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카레가 얼마나 식탐이 강한지, 심지어는 개수대 안에 남은 음식물까지도 관심을 가질 정도이다. 덕분에 우리 집은 식사 후 지체 없이 바로바로 설거지가 진행된다.

 



사람 두 명이 살던 결혼 4년 차, 아직은 나름 신혼부부의 집은 그렇게 고양이집으로 변해버렸고, 우리의 행동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한 고양이를 키우는 데에도 온 집안이 필요하다.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이전 19화 예민한 사람에게 반려동물이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