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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Oct 21. 2020

이제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돼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병원에서 돌아온 남편은 많이 지쳐 보였다. 병원에서 주사 두 대를 맞고, 며칠간 챙겨 먹어야 하는 약까지 받아온 남편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했다. 독한 파상풍 주사 기운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고도 다음 날 또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반차까지 쓰고 와 이런 일을 겪은 남편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남편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또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에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하던 도중, 입양 담당자분께 연락이 왔다. 담당자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신다며, 보호소 스탭 두 분이 직접 우리 집에 방문해 카레를 잡아 병원에 데려가 주신다고 하셨다. 입양 보내기 전에 좀 더 신경 써서 보냈어야 하는데 죄송하다는 말씀까지 덧붙이셨다. 아무리 보호소 관계자라고 해도, 대체 누가 이미 입양을 간 아이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줄 수 있을까? 너무나 고마웠고 감동적인 마음까지 들었다. 아이를 입양한 건 우리인데, 입양하고 나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책임져야 하는데. 바보 같은 우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정말 죄송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카레와 우리의 관계는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힘들어지고, 또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우리는 너무나도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우리뿐 아니라 카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우리가 과연 이 아이와 계속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실제로 카레를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물론 카레의 공격적인 모습까지 목격한 우리는 무서웠고, 여전히 카레와 잘 지낼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절대 다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우리의 욕심 때문에 아이를 마음대로 데려와 놓고 또 마음대로 다시 보내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처음에 입양할 때부터 이렇던 저렇던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한 번 입양한 이상 우리가 끝까지 카레를 책임져야 했다.


이런 고양이도 있고 저런 고양이도 있다는 건 잘 알았지만 사실 우리는 집냥이들이나 고양이 카페에서만 고양이들을 봐서, 이렇게 사람을 엄청나게 경계하거나 무서워할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기본적인 관리까지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만 마주쳐도 무서워 털을 세우고 덜덜 떠는 아이, 손으로 츄르를 줘도 안 먹는 아이일 줄은 생각을 못했던 거다. 그런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남편과의 긴 대화 끝에, 우리는 카레를 그냥 ‘관상묘’다 생각하기로 했다. 더 이상 가까워지기를 바라지도 않기로 했다. 처음부터 개냥이를 바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정 안 되면 그냥 공간만 공유하며 살아야지 뭐. 털 관리, 발톱 깎기 등 기본적인 관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걸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병원 방문은 감사하게도 보호소 스태프분들이 대신해 주시지만, 추후에 또 병원을 가야 하거나 우리가 이사를 가는 날이 온다면 그때 카레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큰 걱정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카레와 우리의 관계가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겠지만, 좋아지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기로,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우리를 괴롭히던 걱정과 불안이 조금씩 사라졌다.




며칠 후 토요일, 보호소 스탭 두 분이 우리 집에 방문하셨다. 천안에서부터 서울까지 먼 거리를 오직 우리와 카레를 위해 와 주신 거였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분들께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 카레와 잘 지내는 것뿐이었다. 우리의 일들을 다 전해 들으신 스태프분들 역시 긴장하신 모습이 역력했다. 혹시 장갑이 있냐고 물으시길래 우리가 미리 준비했던 장갑을 건네 드렸다. 하지만 그 얇디얇은 장갑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카레가 있는 방으로 스태프분들을 안내해 드린 후, 우리는 거실에서 숨을 죽인 채로 가만히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났을까, 며칠 전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방 문이 열렸다. 스태프분들의 손에 들린 이동장 안에는 카레가 아주 얌전하게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 서로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대체 어떻게 하신 거지? 우리는 스태프분들이 마치 마법사인 것처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카레가 자다가 깨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재빨리 잡은 게 성공의 비결이었다.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워 오셨기에 좀 더 수월했던 것 같다고 스태프 분께서는 별 일 아닌 듯이 말씀하셨다.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우리의 경우, 남편과 내가 먼저 지레 겁을 먹고 망설이는 시간에 이미 카레는 잔뜩 공포에 질려 공격할 준비가 다 되어 있던 상태였다. 남편 또한 무서운 마음에 한 번에 카레를 딱 잡지 못했기에 그런 상황까지 만들어진 것 같았다. 스태프분들이 멋져 보일수록 우리는 더 작아졌다. 이렇게 쉬운 걸 못했다니. 우리가 정말 바보처럼 보일 게 뻔했다.


그렇게 스태프분들의 도움으로 카레는 무사히 병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카레는 3차 접종과 함께 광견병 주사를 맞았고, 그 외에 귀나 발톱 등 기본적인 부분을 확인받고 구충제까지 먹었다. 카레가 귀 속도 깨끗하고 다 좋은데, 한 가지 체크해야 할 부분은 구내염이 살짝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원래 이갈이 시기에는 잇몸이 붉을 수 있는데, 그런 것 치고도 좀 많이 붉은 편이라 이갈이가 끝나면 다시 확인해보자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호소 스태프분들과 함께 병원에 다녀온 카레.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ㅠㅠ

 

얼마나 무서울까. 미안해 카레.


미리 사 두었던 주스와 과자를 챙겨드리며 스태프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너무나 든든하고 감사했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우리가 전부 감당해야 할 시간이었다. 힘들게 병원에 다녀온 카레는 이동장에서 조심스레 나와 다시 구석으로 숨어 버렸다. 고생한 카레를 위해 츄르를 그릇에 짜 밀어주었지만 카레는 먹을 힘조차 없어 보였다. 이제 조금 적응하는 듯했더니 또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무서운 곳으로 데려가고, 아픈 주사까지 몇 번을 놓아 버렸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고 또 무서웠을까? 마음이 아팠다.


다시 숨어 덜덜 떨고 있는 카레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카레야, 이 곳이 너의 집이야. 이제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돼. 하지만 네가 아직 우리와 가까워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도 괜찮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면 마음껏 그렇게 하렴.” 


그전까지는 카레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려고 겉으로는 많이 노력한다고 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만큼 카레와 빨리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아 초조했고, 그렇기에 사건이 터지면 더 감정적으로 힘들게 다가왔던 거였다. 천천히 가까워져도 괜찮다고 말해 왔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정말로 카레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었다. 우리의 말을 알아들은 걸까? 신기하게도 카레는 그즈음부터 밤이 되어도 더 이상 서럽게 울지 않았다.




카레가 우리 집에 오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남편이 먼저 자러 들어간 후, 거실이 조용해지자 카레가 조심스레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여전히 나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경계하는 느낌이 아닌, 관심을 가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은 조금만 가까워지는 것 같아도 화들짝 놀라 멀리 달아났던 카레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분명 카레는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카레가 나에게 눈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나와 가까워질 준비가 되었다고. 고민 끝에 나는 바닥에 납작하게 앉은 채로 조심스럽게 검지 손가락을 들어, 아주 느린 속도로 카레를 향해 뻗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카레는 천천히 다가와 내 손가락에 코를 살며시 가져다 대는 포즈를 취했다! 실제로 닿지는 않았지만, 카레가 코를 대려 한 건 분명했다.


이 분위기를 이어가야 했다. 나는 천천히 츄르 하나를 뜯어, 카레가 있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카레는 절대 츄르를 이렇게 먹지 않는다. 무조건 그릇에 모두 짠 후, 자기가 숨어있는 공간 앞까지 조심스레 밀어준 뒤 방문을 닫고 밖이 조용해져야만 먹곤 했다. 이 전에도 몇 번 손으로 츄르를 주려 해봤지만 항상 실패했기에, 오늘도 안 된다면 바로 그릇에 짜 주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마 간 망설이던 카레가 조심스럽게 내가 손에 든 츄르를 먹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말이지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다시 도망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미동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카레가 츄르를 반 정도 먹었을 때, 츄르를 뒤로 빼고 조심스럽게 검지 손가락을 다시 카레의 코에 가져다 댔다. 처음에 카레는 어리둥절하는 듯했지만 코 터치 후 다시 츄르를 조금씩 짜 주는 것을 반복하자 어느새 잘 따라와 주는 모습이었다. 정말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고양이와 친해지는 게 이렇게나 힘들고 이렇게나 감동적일 일인가? 고양이 전문가들이 보면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카레가 처음부터 우리를 경계하지 않았다면, 이런 과정들 없이 그냥 우리가 쉽게 가까워졌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하곤 한다. 만약 그랬다면, 카레와의 첫 스킨십, 카레와의 첫 눈 인사, 카레와의 첫 코 터치가 이렇게까지 감동적이고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남편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다시 카레를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쉬운 길보다는 다시 이 어려운 길을 선택할 것 같다. 힘들었기에 더 소중한 카레와의 첫 경험이었다.




유튜브에서도 카레와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카레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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