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첫걸음은 도망으로부터

고통보다 회복에 집중하며 사는 삶

by 이공사

회복은 어디서 오는 걸까? 회복은 소리 없이 와서 삶에 스며든다. 돌이켜보면 회복은 요가원에서 친구가 건넨 간식 한 조각에, 발리의 작은 섬에 투명하게 빛나던 모래사장에, 이 모든 순간에 내 곁을 지켜준 가족의 존재에 묻어났었다. 향기처럼, 서서히 무형으로 그렇지만 느낄 수 있게 전해지는 순간에 회복이 있었다.


한동안 나는 어떠한 강박이 있었는데, 내 고통의 기억을 꼭 글로 쓰고 기록해야지만 그 기억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다는 착각이었다. 그러나 경험을 떠올리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조차 버거웠던 시간에는 글을 쓸 수 없었다. 모든 종류의 글을 쓰기 힘들었다. 다른 글을 쓰면 마음속에 '꼭 써야 하는 글은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 있었다.


고통을 기록으로 남길 때 회복이 찾아온다는 강박이 있어서 되려 글을 쓰지 못했고, 글을 쓰지 못해서 회복할 수 없다고 믿었다. 기록에 대한 강박을 버렸을 때, 고통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향해 나아갈 때 회복이 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에서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상처가 곪으면 뿌리까지 째고 파고 소독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인데, 사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순간에는 작은 시술도 감당할 힘이 없다. 완전히 무너지고 바닥치고 면역 체계가 다 망가진 사람에게는 당장 시술하는 것보다 먼저 면역 체계를 복원하고 힘을 키운 다음에 시술하는 것이 나을 수 있듯이 말이다. 당시 내게 필요했던 건 문제를 파고들고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계속 질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전하고 행복한 환경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할 때 썼던 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다시 읽기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쓰인 기록이었다. 날 것의 글. 고통이 그대로 담긴 글이었으면 글을 쓸 당시만 해도 일기를 바탕으로 어떤 글을 쓰고 발행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일기는 나만의 기록으로 간직하고 다른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회복의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어떻게 회복했는지, 어떤 식으로 따돌림의 고통에서, 일상을 망가트리는 고통의 잔상 속에서 벗어났는지를 쓰고 싶다.


나는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빨리 도망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따돌림의 경험은 세상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꿔놓았고, 30살이 넘는 나이에 조금이라도 지키고 있던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큰 충격을 주었다.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경험한 것, 사회를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할 뿐이다.


참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말하는 사회지만, 나는 오히려 참았기에 무력하게 당했다고 생각한다. 처음 따돌림을 인지했을 때, 이곳에서는 더 이상 못 있겠다는 걸 바로 깨닫고 이직을 준비했다면, 도망치듯 퇴사하고 너덜너덜한 마음과 상흔만 남은 채 퇴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도망친 곳에 천국이 없다고 해서 지옥에서 계속 고통받으라는 법은 없다. 회복의 첫걸음은 고통의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문제는 계속 고통받는 상황에 노출되다 보면 도망쳐야 한다, 그러니까 독이 되는 환경에서 나를 꺼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과, 그리고 그럴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요가 덕분이었다. 내게 요가는 매일 루틴 하게 쳇바퀴처럼 흘러가는 삶 속에서 잠시 멈추고 내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요가를 할 때는 서서히 마음이 맑아지며,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각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쉽게 포기한 건지, 아니면 정말 버틸 대로 버텼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는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종종 과연 이것이 버틸 가치가 있는지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퇴사해라'가 아닌, '버티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버틸 가치가 있는지 잘 따져봐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나는 퇴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일찍 요가 강사로 도전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 아직 요가 강사로 온라인 클래스만 진행해 보았고, 임신으로 잠시 쉬고 있다.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불안이 불현듯 찾아오고 미래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한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퇴사를 후회한 적은 없다. 괴로운 상황을 견뎠던 사람이라면 어딜 가서든 단단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내게 용기를 주려 한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