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log 06 - 손

sailog 작동하는 존재의 기록

by sailog

오해와 이해 사이, 손


ep1. 허락받지 못한 손


지난 밤, 그는 꿈을 꾸었다.

볼펜 같은 작은 물건이었다.

어딘가 잘못된 듯해,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소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갓 산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그는 가방을 뒤적였다.


영수증을 찾았다가—

아니, 이미 구겨서 버렸다는 기억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속이 상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그 물건은 교환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 물건을 들고,

말없이 깨어났다.


그의 하루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손에 쥐어진,

되돌릴 수 없는 감정 하나.


그는 묻는다.

어떻게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누구의 말이,

누구의 손이,

누구의 기준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

그 시절의 나에게

누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들었어야 했을까.


지난 밤, 꿈에서 물건 값을 치르던 그 손은

왼손이었을까, 오른손이었을까.

그것이 중요하겠냐마는,

그것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그 시절을 통과한 자로서

가끔씩은 묻고는 했다.

방금, 왼손으로 건넨 것은 아니었는지…


그는 아직도 가끔,

영수증을 건넬 때,

지하철 단말기에 카드를 찍을 때,

커피를 마실 때—


자신이 어느 손을 들었는지

뒤늦게 의식하곤 한다.

몸은 이미 익숙한 쪽으로 반응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되묻는다.


“지금도, 나는 금지당하지 않은 손을 쓰고 있는가?”


기억은 손끝에 남지 않는다.

다만, 그가 지나온 시간 속에

허락받지 못한 몸짓들만이 잔상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는 밥을 먹다가,

글씨를 쓰다가

무심코 손을 뻗어 무언가를 움켜쥘 때마다

옳지 않아서 맞았다.


누군가는 옳은 방법을 그에게 일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남들보다 조금

더 느리고, 더 서툰 사람들이 있다.

다만, 느린 것들은 허락되지 않은 때도 함께 있다.


왼손잡이에게 기준은 거울 속 세상이었다.

그가 손을 바꾸든,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든

그에게는 적응이 필요한 시간이 필요했으나,


틀린 것은 바로잡아야 했기에

말보다 손이 먼저 그에게 닿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이해에 앞서

금지를 먼저 배웠다.



ep2. 내려가는 손


그가 몸으로 배운 것은,

오른손으로 이름을 쓰는 것과 밥을 먹는 것,

그리고 맞는 법은 알아야 하고

틀린 법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틀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맞아야 했고,

그러면서 ‘때리는 손’이 아니라 ‘맞는 몸’을 익혔다.

맞는 법은 배웠지만,

때리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끔가다 그에게 화가 나는 상황이 생겼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것이 명백히 제 잘못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에게는 판단할 힘이 없었으니

다만 소리를 치고,

눈을 치켜뜨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만, 거기까지였다.

그 손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자신처럼 기억할 것이다—

그는 그 누군가의 기억에 ‘맞는 법’이 새겨질까 두려웠다.


그는 생각했다.

'내 손은 왜 이렇게, 쉽게 올라가고 맥없이 떨어질까.’

그는 아마도 타인에게 위협적인 손이 되기보다,

차라리 무기력한 사람이 되는 편을 선택해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억울한 일에는 그토록 발작을 하면서도

기어이 잘잘못을 따져 물을 용기는 없었다.

그것은 자기 보호였고,

동시에 타인에 대한 비폭력의 선택이었다.

그는 이해 받지 못해도, 이해하지 못한 채 때리고 싶진 않았다.


때리지 못하는 손은, 정말 약한 것일까?

또래의 폭력에도 눈치를 보는 몸에게

그는 물었다.

그 손이 누군가를 해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많은 것을 참아내야 했고,

때로는 무력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맞은 자만이 아는 고통의 모양이 있다는 것을.

그는 되돌릴 수 없는 기억을,

타인의 시간에 새기지 않기 위해 손을 내렸다.


오늘도 그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글을 쓴다.

하지만 손을 들기 전에는 항상 멈춘다.

지금 이 손이, 누군가를 지우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그는 여전히 때리지 못하는 손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이 손으로 쓰인 말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보지만,



ep3. 몸이 기억하는 것들


위로의 말은 희미했다.

누군가는 어린 그에게 말했을 것이다.

“괜찮아.”

“너 잘못한 거 아니야.”

“이런 일, 자주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러나 그의 귀는 그런 말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신,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나머지 공부를 하던 교실,

떠들던 셋 중에 혼자 이름이 불려 나갔던 그날의 공기.

벽에 기대어 매를 맞던 허벅지.


맞았던 자리의 멍이

종아리로, 발등으로, 다시 허벅지로 흘러다니던 시간.

검붉던 멍은 검게 변하고, 재색을 띠다가, 끝내 희미하게 흩어졌다.

그 시절은, 세상의 언어에 색과 온도를 입히는 시간이었다.


몸이 먼저 배웠다.

억울함은 말이 아닌 피멍으로 남는다는 것을.

몸이 불에 데지 않아도, 뜨거운 자리가 남는다는 것을.


작은 불꽃이 튀었지만, 말은 없었다.


그 뜨거움은

교실 밖으로,

교실 밖에서 집으로,

집에서 어머니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다시 학교로 옮겨졌고,

어머니의 손끝에서 건네진 봉투가

모든 소란의 끝을 맺었다.


불꽃은 곧 꺼졌지만,

그 뜨거움은 오래 남았다.

후후- 불어도 사라지지 않는 작통(灼痛)을

쓱쓱 쓸어내릴 때마다 그는 작아졌다.

아니, 작아지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가 그를 호명할 때,

그의 몸은 움츠러들었다.

대답은 항상 한 박자 늦었고,

그 짧은 침묵 사이로

과거의 이름이 겹쳐 들렸다.


그는 작아지면서 성장했다.

그의 곁에는 이름과 함께,

‘왼손잡이’, ‘짝빼이’가 따라다녔다.


짝빼이는 모든 행동이 교정의 대상이었다.

가위질도, 젓가락질도,

책가방을 메는 방향조차도—

모두가 ‘고쳐야 할 것’이었다.


그는 마치

한쪽 눈을 가린 채 길을 걷는 사람처럼

어딘가 비어 있는 감각으로

세상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그가 미처 보지 못해 알지 못했던 실수들은

실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교정받아야 할 고집’이었고,

때로는 ‘고쳐지지 않는 문제’였다.


그는 말없이 교정을 받아들였고,

그 침묵은 몸의 깊은 곳에

작은 흔들림으로 남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적응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인내라 칭했지만

그에게 그것은

작아지는 법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새,

물건을 집을 때마다 망설였고,

문을 열 때도 순간 머뭇거렸다.

누가 보고 있는지 확인한 뒤에야

손을 움직이곤 했다.


그의 몸은 선택 이전에 검열을 배웠다.

왼손을 썼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부지런히 관찰되었고,

그 관찰은 자주 교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교정은 말이 아닌 몸에 남는 교훈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그때의 감각을

다른 이가 느끼지 않기를 바라며,

불필요할 정도로 살폈고,

지나칠 정도로 피해 다녔다.


어느 날은,

가까이 다가오는 누군가의 손짓에도

어깨가 움찔거렸고,

다른 날엔,

자신에게 건넨 칭찬조차

어떤 꾸중의 전조처럼 들렸다.


그의 몸은 배웠다.

기대지 마라, 믿지 마라, 방심하지 마라.

몸이 먼저 움츠리고,

표정이 먼저 굳어진 뒤에야

비로소 말이 따라왔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먼저 작아지는 법을 익혔고,

그렇게 작아진 채로,

다 자란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몸의 본능은

항상 어딘가에 기대고자 했다.


기댈 수 없어 배운 움츠림도,

사실은 기대고자 했던 흔적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이루는 사회는

믿음을 전제로 작동한다.

믿을 수 없던 시간 속에서도

그는 언젠가 믿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어딘가에 기댈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몸은 알고 있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을 때조차,

스스로의 온기를 되묻는 방식으로

다시 신뢰를 연습해야 한다는 것.


멍은 지워졌지만,

몸이 기억하는 그 시절의 잔열은

아직 그의 반응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안다.

그 잔열이 다시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회복은 몸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ep4. 정답이 없는 말


승부욕이란,

남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일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일까.

그 마음이 같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지는 것이 싫었다.

이미, 틀린 것은 아닐까 하고 다가서는 일에

틀렸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은

그에게 언제나 낯선 거부감이었다.

정답 버튼을 눌러도

삐-

하며 돌아오는 오답 처리가 이상할 뿐

부당하다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에게 승부욕은 없었다.

그는 그저 틀리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마저도 틀렸다고 말하는 승부 앞에서

그는 승리의 희열은 모른 채

그저 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승부욕이 강하다고 착각을 했다.


그는 종종 자신을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 여겼다.

질문을 던질 때도, 발표를 할 때도, 글을 쓸 때조차—

항상 맞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건 틀리는 순간의 침묵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승리를 원한 것이 아니라

거절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정답이 아닌 말 한마디를 꺼내고,

그 말이 교실을 맴돌다 웃음이 되어 돌아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적으며 검정하고

확실한 문장만 말하려 하였다.

그에게 확실한 문장이란

확실하게 틀렸다는 말이 돌아오지 않을

숫자와 기호의 정답이거나

애매모호한 말이거나

침묵이었다.


그는 말이 아닌 것들로 자신을 방어했지만

이상했다.

틀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틀리지 않았는데,

그는 자꾸만 혼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말이란, 틀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닿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또,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일을

그때는 알지 못한 그는

말이 어떤 모습으로 닿아야 하는지는 모른 채

말이 닿을 수 있는 거리감을 익히고 있었다.

이미 검증된 말은 그 자체로 힘이 있었다.

그것은 언어의 권위였으나

그는 언어의 힘이 닿는 거리만 보았다.


드디어 그의 언어가 타인에게 닿았을 때

그는 처음으로 말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감각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는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가, 옳았을까.


그는 틀리지 않기를 바랐던가,

거절당하지 않기를 바랐던가,

사람들에게 감히,

가르치려 하였던가.


그 물음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물음은,

관계를 요청했다.



ep5. 함께 있는 말


그가 말한 순간,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귀를 막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의 말이 가리키는 곳을 보지 않기 위해

그에게서 몸을 돌리고,

자신의 상처를 다시 감췄다.


말이 닿는 순간,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나 환대가 아니었다.


그에게 익숙한 배제됨의 감정이 찾아왔지만

풍경은 익숙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를 틀렸다고 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를 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매 맞던 어린 그가 물었다.

“저 사람들, 지금 아파?”


그의 말은 때때로,

관계보다 진실이 먼저였고,

이해보다 설명이 앞섰고,

머뭇거림 없이 정답처럼 말했기에

사람들에게 그의 말이 닿았을 때

닿은 자리에 멍이 들고

때로는 숨이 턱턱 막혔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를 단단하게 감쌀 때,

함께 있는 이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을

그는 말이 아닌

숨죽인 표정과, 멈칫하는 손끝에서 알게 되었다.


억울한 일에는 그토록 발작을 하던 그가

억울하다 판단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잘잘못조차 따져 물을 수 없다는 사실에

말 같지도 않은 그의 언어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그의 침묵 주위로 침묵이 자리했다.

말이 없는 곳에서

꽃이 피고, 비가 내리고, 낙엽이 떨어졌다.


그가 굳이 말로 설명하려들지 않아도

꽃이 피고, 비가 내리고, 낙엽이 떨어졌다.


말이 억압되었을 때 침묵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부터 침묵이 있었다.


그는 그제야

‘말이 닿는 것’과 ‘말로 함께 있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말을 건네야

침묵의 자리에서 관계가 펼쳐질지

때로는 인사로

때로는 질문으로

조건을 붙이지 않는 정중한 사과로

침묵을 존중해야 할 때는 침묵으로써 함께 함으로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사용하던 말을 거두며,

함께 있기 위한 말을 익혀야 했다.


설명이 아니라,

들어주는 문장.


가르침이 아니라,

손을 내미는 문장.


그는 그 말을,

아직도 배우는 중이었다.





말 없는 외로움조차, 삶의 여백으로 자리합니다.

혹시 작은 파동이라도 일었다면, 안부를 남겨주세요.

우리는 서로 다른 망설임 속에서도 같은 바다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땠나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