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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킴 Aug 26. 2020

밴쿠버 학교 선생님에게 묻는다.

캐나다 교육 이야기

 부모는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훌륭한 사람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초등학생인 두 명의 딸이 있다. 나는 딸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소망하는 모습을 향해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의지가 있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다행히 딸들은 한국에서 나의 바람과 걸맞은 배움터에 다녔다. 고령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역의 공공시설물 실태를 직접 조사한 Barrier Free 인증 활동, 동물 복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구호동물 돌봄 활동, 스스로 터득한 학습 원리를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지식 나눔 장터, 민주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고민하게 된 각종 캠페인 등 딸들의 초등학교 시절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던 나의 학창 시절과 달랐다. 입시위주의 획일적인 교육환경으로부터 벗어나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배움의 재미를 실천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 공교육이 진화 중이라는 것을 딸들의 초등학교 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2020년 3월, 우리 가족은 갑작스럽게 캐나다로 왔다. 캐나다는 ‘공평 교육’과 ‘전인교육’을 지향하며 OECD 국가 중에서도 공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 우수한 교육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있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한국에서 즐겁게 학교 잘 다니던 애들을 낯선 곳으로 데려와서 괜히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노파심이 들었다. 캐나다의 실제 학교 현장을 알고 싶었다. 마침 이민 1.5세대로 밴쿠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현재 버나비 지역 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양범모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인터뷰를 청했다.     

밴쿠버의 초등학교


“캐나다의 교육이념은 지덕체를 중심으로 학생의 정서, 성격, 가치관, 열정, 대인관계 등 여러 요소가 조화로운 인격자 양성을 추구합니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잖아요. 캐나다가 그렇습니다.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가보면 미취학 아동들도 하키 스틱 들고 얼음 위를 평지처럼 달려요. 스키장 가면 상급자 슬로프를 날아다니는 꼬마들도 많고요. 제법 경사가 있는 트레킹 코스를 자전거로 질주하는 겁 없는 어린이들도 볼 수 있어요. 혹자는 이런 캐나다 교육을 ‘발육 교육’이라고 하던데, 저는 ‘전인격적 소양 인재를 육성하는 전인교육’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양범모 선생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온 것은 양 선생님이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97년이다. 원래 양 선생님 가족은 9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2년 4개월 간 살았다. 시카고에 있는 대학의 유학생이었던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온 양 선생님은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양 선생님 형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영어를 못하는 동양인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학교에 한국 애들이 없었어요. 동생이랑 한국말하며 지나가면 미국 애들이 시비를 걸어요. 아시안에 대한 차별이 있었죠.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가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부모님께서 캐나다 이민을 결정한 것이 싫었어요.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데 왜 캐나다에 가야 해? 오죽하면 독립할 나이가 되면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으니까요. 그런데 캐나다에 와보니 미국과 다른 거여요. 캐나다랑 미국은 북미로 묶이니까 비슷한 줄 아는데, 전혀 달라요. 미국은 문화의 용광로라고 하잖아요. 미국에 왔으니 너희 나라 문화는 다 버려! 이런 마인드거든요. 캐나다는 모자이크 문화예요. 이민자가 고유문화를 간직하기 장려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배려해주죠. 저는 이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양 선생님은 미국과는 다르게 캐나다의 학교생활 무난했다고 한다.     


“밴쿠버에 와서 처음에 버나비의 공립학교를 다녔는데요, 전교생 2,000여 명 중에 한국 학생이 약 300명이었어요. 중국 애들도 많았고.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가면 까만 머리가 가득했다니까요.(웃음) 동양인 교사들도 계셨고요. 심지어 당시 BC주 주지사가 인도 사람이었어요. 성인이 되어서 캐나다로 온 이민 1세대였대요.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죠. 미국은 이민 역사가 캐나다보다 한 세기쯤 앞섰죠. 그 차이가 큰 가 봐요. 캐나다는 나라가 어려서인지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없는 편이에요. 대신 영어를 못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인종차별은 없지만, 언어 차별은 있다.’고 해요.”     


 양 선생님은 미국에 살 때 영어를 못해서 상처를 입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영어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국의 중학생 시절 공부했던 성문 기본 영어, 맨투맨 종합 영어는 영어의 기초를 닦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저는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을 값지게 생각해요. 중학교를 다니면서 얻은 ‘책상 의자에 엉덩이 붙이는 습관’이 훗날 대학원 공부까지 이어졌거든요. 미국도 그렇지만 캐나다는 4년제 대학을 가려면 크게 각오해야 합니다. 졸업이 어렵거든요. 학위 취득 비율이 40퍼센트도 안 돼요. 캐나다는 고등학교 혹은 2년제 전문대학을 졸업해도 충분히 살 수 있어서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만 4년제 대학에 진학해요. 세컨더리(secondary, 한국의 중·고등학교 과정)는 대게 8과목이고 시험 보는 과목도 얼마 없어서 한국학교에 비해 학습량이 적어요. 수능 같은 대학 입학시험도 없고요. 그렇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큰일 납니다.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심해요. BC주의 명문 대학인 UBC만 해도 전 세계에서 입학 준비를 하잖아요. 전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경쟁하는 거죠. 세컨더리 시절에 룰루랄라 놀았다가는 나중에 고초를 겪어요. 저는 아버지가 유학했던 시카고에서 학부를 다녔고, 석사과정은 캐나다에서 했는데 캠퍼스의 낭만을 누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공부가 너무 빡쎄서요.”     


 대학에서는 음악교육, 대학원에서는 합창 지휘를 전공한 양 선생님은 영어가 유창했음에도 불구하고 석사과정까지 단어장을 만들어 암기할 만큼 영어 공부를 놓지 않았다.     


“영어가 대체 뭐 길래, 이 생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어요. 제 인생에 영어를 안 배우고 살아도 되는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절대 안 했어요. 영어는 잔인해요. 10을 노력하면 1도 얻기 어려우니 효율성도 꽝이죠. 제가 음악을 했잖아요. 악기 연습을 하다 보면 기량이 꾸준하게 느는 게 아니라,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밖에 없더라고요. 열심히 하면 쫌 나아지나 싶다가, 잠깐이라도 멈추면 바로 고꾸라지거든요. 영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영어 때문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독하게 영어 공부를 했기에, 캐나다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었죠. 언어는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잖아요.”     


ELL(English Language Learning Service) 안내 팸플릿: 밴쿠버 공립학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에게 ELL 수업을 제공한다.


양 선생님은 두 번 다시 영어로 인한 설움을 겪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고 한다.      


“얼굴에 철판 깔고 무작정 콩글리시로 들이 댄 적도 있어요.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을 때까지 안 해본 게 없죠. 캐나다에서는 발음과 어휘 수준이 높고,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말하면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더라고요. 영어학습 방법은 단순합니다. 책상공부와 영어 노출의 무한 반복. 특히 단어와 발음이 중요해요. 억양은 배우기 어려워요. 하지만 발음은 연습하면 바뀔 수 있어요. 발음은 근육운동이다 보니 안 쓰던 미세근육을 단련시켜야 해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발음이 나아지면 설득력이 생겨요. 발음이 나쁘면 면접에서 떨어지고,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절박감을 가져야 합니다. 생활영어는 원어민을 따라가기 쉽지 않지만, 어휘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한국 사람이 모든 한국어 책을 이해하는 건 아니잖아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 독해가 어려운 거죠. 마찬가지여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랐어도 영어 단어를 다 알지는 못해요. 저도 석사 때까지 단어 공부를 놓지 않았어요. 요즘도 신문 읽다가 모르는 단어 나오면 사전을 찾아요. 영어는 완벽이 없어요.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살기 불편하지 않은 거죠. 괴로워도 단계를 계속 뛰어넘어야 합니다. 원하는 삶을 살려면 감내해야 해요. 토익점수받는 얘기가 아닙니다. 캐나다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말씀드리는 거예요.”     


 세상에 공짜가 없다지만, 이렇게 까지 시련을 겪어야 한다니. 이제 학교생활을 시작할 딸들의 앞날이 걱정됐다.     


“워낙 영어로 인한 고생을 심하게 했어요. 누가 캐나다에서 학교 다니기 어떤지 물어보면 마냥 장밋빛 미래를 전할 수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좋은 나라예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존중해주니까, 고맙죠. 캐나다 사회에 진심으로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는 학교에서부터 배워요. 심지어 성적을 내는 방식도 천차만별입니다. 이 나라가 체육을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10학년까지 필수과목이죠. 제가 운동신경이 썩 좋지는 않아요. 실력이 부족해도 수업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랬더니 체육선생님이 체육교과 전교 1등 상을 주셨어요.(웃음) 캐나다 애들이 난리가 났죠. 운동 잘하는 애들을 제치고,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월등하게 좋다는 이유로 체육 전교 1등이 되었으니까요.”     


 캐나다는 세컨더리 학생들도 3시 이전에 수업이 끝난다. 하교 이후에 생산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 캐나다의 학생들은 학과 공부 이외에 체육, 미술, 음악, 컴퓨터, 봉사활동 등 관심 분야를 깊게 판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터라, 음악 쪽으로 진로를 잡았어요. 한국에서 중학교 다닐 때는 학교 공부가 많아서 피아노 연습 시간이 부족했죠. 캐나다 오니까 시험 보는 교과도 적어서 학교 공부가 수월하더라고요. 남은 시간에는 음악 공부에 매진했어요. 캐나다는 악기마다 급수 테스트가 있어요. 급수 시험에 통과하려면 실기와 필기시험을 봐야 하는데, 필기가 어려워요. 음악사와 화성학이거든요. 세컨더리 다닐 때 도서관 다니며 학교 숙제랑 음악 필기 공부에 집중했어요. 세컨더리 다니면서 급수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는데, 음대 전공 2학년까지 커버되는 분량이더라고요. 대학 공부는 친구들과 잠시 수다 떨 겨를이 없을 만큼 살벌했는데, 미리 급수를 받아둔 덕분에 조기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양 선생님이 경험한 캐나다에 대하여 물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고 성인이 되어서는 6개월 간 원어민 강사도 했는데, 저는 한국의 공교육을 높이 평가해요. 한국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평생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캐나다를 동경하는 사람이 많지만, 서비스도 느리고 답답한 점도 있잖아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대한민국도 살기 좋은 나라예요. 다만 캐나다는 젊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하기가 괜찮아요. 최저시급이 높고, 상명하복이 없으니까요. 갑질 문화, 꼰대 문화가 없죠. 동료 선배 교사들은 물론 교장 선생님도 후배 교사들을 정중하게 대하셔요.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또한 좌파국가다 보니 노동조합 파워가 강해요. 저도 교사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데, 혜택을 많이 받고 있어요. 이런 면에서 젊은 세대들은 캐나다에서 일을 하는 게 유리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어느 나라든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장·단점이 있잖아요. 캐나다행를 고민하고 계신다면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가치관이 캐나다와 어울리는지 점검하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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