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한 메시지는 자기 앞으로 온 메시지

실전 연습 1 - 편지 쓰기

by 세일러킴
만인을 향한 메시지는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 가' -


지금까지 우리는 ‘요린이의 기본 밥상 차리기’처럼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소박한 글쓰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과 실제 조리과정은 차이가 난다. 글도 직접 써보면 감이 다르다. 막상 커서가 껌뻑거리는 하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면 눈앞이 컴컴하다. 글쓰기 비법을 줄줄 외워도 쓸 때는 단기 기억상실을 앓는다. 당장 거창한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우선 가벼운 글쓰기부터 도전해보자. 편지는 실전 연습으로 유용한 글쓰기 장르다.

물론 글쓰기의 원형은 일기다. 소설가 김연수는 명상록 ‘시절 일기’에서 일상의 기록이 언젠가는 문학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며 일기 쓰기를 예찬했다. 나의 회상에 우리의 기억이 가미되는 일기는 아름답다. 하지만 일기는 나를 향한 글이므로 독자가 있는 글쓰기 훈련에는 편지 쓰기가 좋겠다.


강원국 작가는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상대방이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염두하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란 조언을 전한다. 글쓰기는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수단이다. 글쓴이의 의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 마음이다. 아무리 좋은 글도 읽을 사람이 없다면 무용하다. 그래서 독자에게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강원국 작가는 ‘글은 읽는 사람 입에 떠 넣어 줘야 한다. 손에 잡히도록 쥐어주어야 한다.’라고까지 표현했다.

독자마다 글에 몰입하는 포인트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읽을 수밖에 없는 글이 있다.

그것은 ‘나에게 온 메시지’다.


제우크시스와 파라시오스라는 화가가 있었다.
라이벌인 두 사람은 누가 더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에 관하여 시합했다.
제우크시스 그림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었기 때문에 새가 날아와 그림 속 포도를 따먹으려고 할 정도였다.
그림의 완성도에 만족한 제우크시스는 한껏 가슴이 부풀어 파라시오스의 그림을 보았다.
그런데 파라시오스가 벽에 그린 그림에는 보자기가 덮여 있어 보이지 않았다.
제우크시스는 ‘보자기를 벗기게’라고 재촉했다.
그 순간 승부는 가려졌다.
왜냐면 파라시오스는 ‘보자기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 가> p183 수정 발췌 -


‘어떤 글이 살아남는 가’는 일본의 진보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로 교수가 대학에서 강의한 ‘창조적 글쓰기’ 수업 내용을 엮은 책이다. 우치다 교수는 제우크시스와 파라시오스 화가의 에피소드를 통해 수신자의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메타 메시지’의 위력을 보여준다.


우치다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종류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무조건 집중한다. 언어라는 개념조차 없는 갓난아이와 엄마 사이에 교감이 가능한 것은, 엄마의 말과 행동이 ‘자기 앞으로 왔다’는 것을 아기가 직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에게 온 메시지’라는 것을 알면, 비록 그것의 의미가 불분명해도 경청한다. 주변이 아무리 소란해도 자신의 이름이 들리면 귀가 쫑긋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치다 교수는 이처럼 수신자가 해석을 덧붙이지 않고 통과시키는 메시지를 ‘메타 메시지’라고 설명한다.

‘메시지를 읽는 법을 지시하는 메시지’인 메타 메시지의 형식을 취하면 인간은 수신을 거부하지 않는다. 의미를 왜곡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는 메시지는 바로 승인되지 않는다. 인간의 기본 값은 타자의 메시지를 간단하게 수신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타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다.


‘편지’는 일종의 ‘메타 메시지’다. 편지는 수신자가 특정되어 있다. 편지를 손에 쥔 그대는 ‘선택받은 자’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이 메시지를 작성하게 되었다고, 당신이 그곳에서 이 메시지를 들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당신과 소통을 나누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는 신호를 받은 사람이다. 수신자는 편지의 내용은 나름대로 해석해도, 이 편지가 ‘나에게 왔다’는 사실 하나는 오해하지 않는다.


편지 쓰기를 연습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결국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띄우는 편지다. 글쓴이는 이 메시지가 누구에게 가닿을지 알고 있어야 한다. 수신자가 모호하다는 것은 발신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뚜렷할수록 수신인도 분명해진다.

‘그런 글’은 독자가 안다. '나에게 온 메시지'라는 것을.

지구별 어딘가에서 나의 존재를 위로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작가의 진심은 독자에게 전해진다.


이 글은, 그러니까, ‘그런 글’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 보낸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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