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을 앞두고 딸들이 잭오랜턴을 만들었다.
온 동네가 핼러윈이다.
핼러윈의 원형은 고대 켈트족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새 해를 준비하며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달랬던 풍습이라고 전해진다. ‘교회 상식 속풀이’의 저자인 박종인 신부는 평화방송과 인터뷰에서 ‘켈트족의 문화였던 핼러윈은 보편 교회 안에 다양한 문화를 포용했던 로마 가톨릭 역사 속에서 가톨릭 성인들을 기리는 축일 전야제로 발전됐다.’고 설명한다.
나에게 핼러윈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핑계 김에 서양 귀신 복장을 하고 소란스럽게 노는 ‘정체불명의 서양 풍습’이었다.
캐나다에 와서 첫 해, 집주인 제인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기뻤으면 좋겠다며 집 안팎을 장식했다. 간식을 준비 해 둘 테니, 핼러윈 날 “trick or treat”을 외쳐보라고 딸들에게 권유하는 제인의 정성이 고맙다. 제인뿐 아니다. 점점 에버랜드로 변해가는 동네를 보며,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이웃들과 생의 기쁨을 나누는 핼러윈 데이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켈트족의 이질적인 문화를 수용하면서 겪었을 진통을 상상해본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태도는 쉽지 않다. 고국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려니 저항감이 만만치 않다. 미처 몰랐던 배타적인 본심이 새록새록 드러난다. 낯선 땅에 살기로 결정한 이상 계속 가져가야 할 숙제다.
동네가 온통 핼러윈이다.
마흔다섯에 삶터가 바뀐 것은 일생일대의 돌발 상황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생물학적으로 노화가 진행 중인 이 나이에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몇 해 전,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 있다. 강헌 교수는 40세에 일본 유학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동경의 한 대학에서 일본과 한국의 대중음악 비교연구를 제안한 것이다. 장학금까지 제공됐지만, 강헌 교수는 고심 끝에 거절한다. 마흔은 그간의 커리어를 리셋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판단이 들었단다. 이 일화를 소개할 당시 강헌 교수는 50대 중반이었다. 강헌 교수는 돌이켜 보니, 마흔은 충분히 젊은 나이었다며,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의 교과서에 실릴 만큼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화가, 모지스 할머니를 좋아한다. 평생 가난한 농부로 살았던 모지스 할머니는 75세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고, 100세 생일날에는 뉴욕시가 ‘모지스 할머니의 날’을 선포할 정도로 화단과 대중의 환호를 받는 미국의 국민화가가 된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모지스 할머니의 삶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영감을 준다.
모지스 할머니의 자서전(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박완서 작가도 존경한다. 가정주부였던 박완서 작가가 ‘나목’으로 문단에 등단했을 때 나이가 마흔이다. ‘느낌표 지정 도서’ 선정으로 유명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 작가 나이 62세에 출간되었다. 괴테는 82세에 ‘파우스트’를, 세르반테스는 죽기 일 년 전에 ‘돈키호테’ 속편을 완성했다. 움베르트 에코가 첫 번째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한 것은 49세였고, 위대한 자유인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64세 때 창조했다.
도전에 늦은 때는 없다. 도전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시간의 파도에 밀려가는 인생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부끄럽게도 앎과 삶은 항상 불일치한다. 계획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 최초 의욕의 ‘백분의 일’이라도 움직였다면, 실패도 귀한 경험으로 여기며 가야 할 길을 갔더라면, 인생은 180도 달라졌으리라. 포기는 가장 쉽다. 우선 고통을 견디기보다는 미리 겁먹고 마치 ‘신포도의 여우’처럼 정신승리하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늘 제자리다.
‘꽃들에게 희망을’에 등장하는 ‘애벌레 기둥을 오르기 위한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남들 뒤따라서 겹겹이 쌓인 애벌레를 밟고 정상까지 기어오르고 싶지는 않다. 그건 진짜 도전이 아니다. 꼭대기는 기어서가 아니라 날아가야 한다. 날아가려면 먼저 ‘기어올라’ 번데기가 되어야 한다. 번데기가 되기 위해 기어오르는 고통을 견디고, 지난한 번데기의 시간을 견디면 나비가 된다. 나비는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로 떠나면 나비가 된다는 게 아니다. 캐나다를 기회의 땅이라고 여겼던 적은 없다. 하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땅이 맞다. 일생의 기반을 내려놓고 무에서 출발하는 두려움이 설렘이면 좋겠다. 이 거대한 땅덩어리에 주눅 들지 않고 ‘심장을 뛰게 하는 그것’을 찾고 싶다. ‘나만이 해낼 수 있는 그것’을 창조하고 싶다.
안다. 당장 생계 걱정 없는 자의 과한 순진함이라는 것을. 우리 가족은 절박한 상황으로 몰린 이민자들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다. 가장의 무게를 모르는 팔자 좋은 소리일 수도 있다. 오늘도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돌아온 남편은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한숨을 쉰다. 영어 때문에 피눈물을 흘려본 적 없고, 인종차별 때문에 크게 속상한 적도 없다. 누군가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본 적도 없다. 무엇보다도 아직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았다! 거듭되는 면접 탈락에 좌절하지 않았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위축되지도 않았다. 향수병도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레이스 전이다. 막 출발점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도전은 축복이다.
막상 살다 보면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 한 날들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처지를 비관할 수도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통곡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끝까지 도전해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당신에게 권유하고 싶다.
도전에 늦은 나이는 없으니, 오늘 ‘심장을 뛰게 하는 그것’을 해도 괜찮다고.
그때까지 끈기 있게 버텨 보이겠다.
초보 이민자의 캐나다 생존기는 이제 막 시작했다.
으랏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