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등교

밴쿠버의 초등학교

by 세일러킴

2020년 9월 10일. 아이들이 드디어 학교를 갔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닫힌 국경은 열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일일 신규 확진자가 매일 6만~7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하니 캐나다 정부의 판단은 당연하다. 나와 아이들 비자는 여전히 표류 중이지만, 이와 관련된 여러 조치 덕분에 신분 문제는 해결되었다. 아이들도 교육청의 도움으로 무사히 입학허가를 받았다. 지난 1월 겨울방학 이후 장장 8개월 만의 등교다.


BC주의 초, 중, 고등학교는 기존 예정일보다 이틀 미룬 9월 10일에 가을학기를 개학했다. 교육청마다 학제, 운영방식이 다르다 보니 어떤 학교는 30분간 오리엔테이션만 했다던데 아이들 학교는 첫날부터 오전 수업을 했다.


등교 전날, 마음이 바쁜 부모, 두려움 반 설렘 반 둘째와 달리 첫째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덕질하느라 무념무상이었다. 학교에 다니게 되면 하루 종일 뒹굴 거릴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할 뿐이었다.


학교가는길.jpg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등교일.

새로 산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 아이들을 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잘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아이들 교실이 위치한 별관 앞에서 시작종을 기다리는데, 상냥하게 눈인사를 하며 하얀 마스크를 쓴 중년의 여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ELL(English Language Learning Service) 교실 담당 교사, 니키(가명) 선생님이었다. 니키 선생님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영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을 해주셨다. 잔뜩 주눅 들어있는 우리 가족에게 니키 선생님은 천사였다.

친절한 니키 선생님과 대화 후 약간 긴장이 풀린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짠했다.

부모가 의연해야 하는데, 부부가 쌍으로 속이 물렁하다.


하교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 담임교사의 감독 아래 전교생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우리 집 애들만 빼고.

둘째는 어정쩡하게 뒷짐을 지고 반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첫째는 영혼이 가출한 것처럼 넋이 나간 채 놀이터 난간에 앉아 있었다. 우리 부부도 덩달아 멘붕이 왔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것은 예상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림.jpg 첫째가 등교 첫날의 심정을 그림으로 그렸다. 오른쪽 중간에 마스크 쓰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아이가 본인이다.


시무룩해진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데 온 가족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남편과 나는 긴급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이민 선배들에게 SOS를 요청하니, 경험에서 우러난 귀한 조언들을 해 주셨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아이들에게 첫 학기 동안 수행해야 할 미션을 정했다.


1. 공부와 친구 사귀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기.

2. 낯선 환경을 불편해하지 말고 우선 관찰하기.

3. 영어 앞에 정직하기. 알아들은 ‘척’ 하기 없기. 못 알아들었으면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4. 친구들과 눈이 마주치면 ‘Hi!’라고 말해주기.


역시 영어 때문에 내내 스트레스를 받으며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남편이 아이들과 본인의 경험을 나눴다.


“아빠도 매일 영어와 전쟁 중이야. 그럴 때는 ‘콩나물 키우기’를 떠올리거든. 시루에 콩나물을 키울 때 물을 흠뻑 주면 아래로 다 빠져나가도 콩나물이 자라잖아. 물이 전부 흘러내린 건 아니기 때문에 콩나물이 클 수 있었겠지.
영어도 마찬가지 같아. 물이 싹 빠진 것처럼 보여도 콩나물이 자라듯,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영어 실력도 나아질 거라고 믿어 보자.”


진지하게 듣는 걸 보니 어지간히 절박한가 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 아이들의 곤경은, 남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이 나라에서 무리 없이 살아가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자각이 들지만 엄두가 안 난다.


아침 등굣길에, 첫째 담임선생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한두 마디만 할 줄 알고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말이 끝나질 않는다. 아차, 싶었다. 아이들과 알아들은 ‘척’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낌새가 이상했나 보다. 둘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뜻을 물었다. 더는 속일 수 없어서 이실직고했다.


“얘들아 미안해, 엄마가 거짓말을 했네,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하기로 해놓고... 사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

“흥, 그럴 줄 알았어. 아빠에게 일러야지.”


둘째가 어이없다는 듯 삐죽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첫날의 충격 이후, 아이들은 나름대로 낯선 환경에 적응 중이다. 감사하게도 아이들 담임선생님 두 분 모두, 말 한마디 못하는 새로운 학생을 환대해 주셨다.

특히 첫째의 담임선생님은 무척 열정적이고 소탈하시다. 남편과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아이가 학교를 좋아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주고 계신다. 첫째는 그 반의 유일한 동양인이다. 담임선생님은 한국에서 온 이 가여운 어린양을 위해 한국 문화 특별 수업을 진행하셨다. 첫째가 제일 좋아하는 BTS로! BTS 활동 동영상을 시청한 후, BTS의 노래 ‘louber than bombs’ 가사로 영어 수업을 했다고 한다. 한글을 알지 못하는 담임선생님이 손수 제작한 학습 자료를 보니 눈물이 왈칵 났다. 주책이다.


학습자료.jpg 담임선생님이 직접 만든 학습자료. BTS와 블랙핑크 노래를 활용하셨다.


덕후는 덕후를 알아보는 건가. 애니메이션 ‘하이큐’와 영화 ‘해리포터’ 덕후인 첫째는 반에서 같은 주제로 소통이 가능한 친구를 만났다. 이 두 덕후는 손짓 발짓으로 각자의 최애 캐릭터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둘째는 말이 통하는 한국인 여자 친구 덕분에 반 아이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어때, 대단하지? 이건 초등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반 친구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좋았다며 둘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캐나다 학교가 처음인 건 우리 부부도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서툴고 어색해서 벌어지고 있는 이 해프닝들도 언젠가는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딸들아, 오늘도 단단히 기합을 넣고 버텨보자.


으랏차차!


학교준비물.jpg 캐나다 학교를 다녀본 적 없는 부모는 학교 준비물 챙기는 것도 전쟁이다. 문구점을 다섯 번 오가며 겨우 준비물 구입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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