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슬럼프
밴쿠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4개월 만에 싫증이 났다.
누가 그랬다. 캐나다는 지루한 천국이라고.
지루한 건 괜찮을 줄 알았다. 터지는 사건사고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치러야 할 의무, 반복되는 번다한 일상, 무한 경쟁, 비교하고 눈치 보게 되는 주변 시선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20 여전 년, 난생처음 해외를 나갔었다. 그림 같은 호숫가를 달리던 스위스 사람들을 보며, 이런 청정 자연에서 여유롭게 살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배부른 투정이란 걸 안다.
막연하게 꿈꿨던 삶이 이뤄졌는데, 밴쿠버 사람들이 일 년 내 내 기다린다는 여름이 왔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소년은
더 이상 악몽을 꾸진 않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조금도 행복해지지 않았어요.
"내 나쁜 기억은 모두 없어졌는데
왜 나는 행복해지지 못한 거죠?"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처절하게 후회했던 기억
남을 상처 주고
상처 받았던 기억
버림받고 돌아섰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자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더 유연해질 수가 있지
행복은 바로 그런 자만이 쟁취하는 거야
그러니 잊지 마
잊지 말고 이겨내
이겨내지 못하면
너는 영혼이 자라지 않는 어린애일 뿐이야"
- 동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중에서 -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여주인공이 쓴 동화책을 보면 주제를 알 수 있다. 동화작가인 여주인공의 작품 중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에는 마녀에게 과거의 나쁜 기억을 지워달라고 부탁한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악몽만 사라지면 행복해질 줄 알았지만 영원히 영혼이 자라지 않는 어린애로 남겨지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림자를 갖고 있다. 융 심리학자인 로버트 존슨은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 타인에게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의 그늘을 거부하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애틋하게 보살펴주고 보듬어 안을 때, 진짜 나를 완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거룩한 나의 가치는 뜻밖에도 그늘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삶의 활력과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자, 개인은 물론 공동체를 발전시킨다.
고통은 불행, 쾌락은 행복이라고 여겨왔다. 작은 시련도 외면하려 했다. 외부환경은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터득한 이후에는,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싶었다. 악의와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미천하고 가난한 내면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부족하고 나약한 내면의 어린아이가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어른으로 거듭하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평생 ‘성장’을 추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힐링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익숙한 환경과 결별하고 지상낙원이라는 밴쿠버에 도착했으니 마냥 신날 줄 알았다. 골치 아픈 사회생활에 지쳤었는데, 자극 없는 일상은 무료했다. 충전이 완료됐는데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곳이 없다 보니 공허해졌다. 비자 문제만 해결되면 일터로 달려가고 싶었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어차피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막상 그 순간이 오면 ‘쉴 때가 좋았는데’라며 아쉬워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이다.
밴쿠버 생활 4개월 만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무언가를 추구하지 못하면 왜 불안해지는 걸까?
성장을 목표로 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고통의 원인이 제거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헤아려보니 이 모든 것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믿음이더라.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당신은 포도주와 술이 어떤 맛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 백 병 혹은 수천 병이 당신의 뱃속에 들어가면 모두 같습니다.
당신은 여과기일 뿐입니다.
- 세네카 -
진정한 성장은 고유한 소임을 향한 지난한 실천이다. 하지만 나의 성장은 못나고 부끄러운 흔적을 지우려는 몸부림이었다.
불교에서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욕망에 집착하는 것을 갈애라고 한다.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다. 당장은 갈증이 가실 것 같지만 마실수록 목은 더 타게 마련이다. 유용한 가치라고 칭송받는 ‘성장’도 마찬가지다. 나의 갈애는 성장에 대한 탐닉이었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상처를 받은 이유는 부족한 내면 아이 때문인 줄 알았다. 초라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썼다. 가면을 들킬까 봐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혼이 자라지 않는 어린애로 남고 말았다.
내면 아이는 잘못이 없다. 충분한 준비가 끝나면 자신감을 가질 줄 알았다. 대체 그 준비는 언제쯤 완성된단 말인가? 착각이었다. 애초에 부족한 것은 없었으니 채울 필요도 사라졌다. ‘성장’을 내려놓아야 한다니, 허무해졌다. 이제껏 무엇을 해온 것일까? 성장 말고,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오늘이라는 시간을 대하는 두 가지 삶의 태도가 있다.
하나는 시간이 장소를 통해 만들어내는 사건에 무의식적이며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시간과 공간에 매몰되어 그것들의 노예가 된다.
또 하나는 내가 완주하고 싶은 목표를 향해 전략을 짜고 묵묵히 실천하는 방식이다.
- 배철현, 수련: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
충동적으로 요가 수업을 신청했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갑갑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요가는 결혼 전에 잠깐 접한 적이 있었다. 급한 성정을 다독이는데 요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먹고살기 바빠 잊고 지냈다.
고전 문헌학자인 배철현 교수에 따르면 인류는 오래전부터 야생마처럼 날뛰는 마음을 다스리려면 좌정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대 인도에서는 좌정하는 수련을 ‘요가’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요가는 신체를 단련시키는 운동의 개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을 절제함으로써 가치 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한 훈련이다.
부족한 나를 버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 것은 몸의 감각을 놓쳤기 때문이다. 몸이 쑤시고 아픈 것은 진짜 통증이다. 통증을 견디기 힘들어서 근육을 안 쓸 궁리만 하고 살았다. 환상은 신체 훈련을 게을리한 결과다.
캐나다는 파워요가의 한 종류인 빈야사(vinyasa) 요가의 고장이다. 빈야사 요가는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동적인 움직임이 특징이다. 첫 시간부터 극기 훈련 같은 격렬한 동작이 쉼 없이 진행됐다. 영어도 못 알아듣고, 동작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뜬금없는 부위의 힘줄이 통증을 호소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무감각해졌던 근육이다. 한 시간 남짓 선생님을 따라 몸을 움직이다 보면 잡념이 침투할 겨를이 없다. 몸을 고되게 다그치고 나니 고통의 역치도 0.00001mm쯤 늘어날 것 같다.
신이나 인간은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일생 동안 반복하는 수련을 통해 서서히 완성되는 것이다.
- 배철현, 수련: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
온 마음을 다해 반드시 이뤄야 할 임무는 아직 알지 못한다.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수련을 반복하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온전하게 집중하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 같던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고유한 소임도 다다르지 않을까.
그때쯤에는 소년의 영혼도 어른이 되어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