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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May 16. 2023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다들 노력하면서 살아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지금까지 살았다는 건-

어떤 이는 정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성공해서 지금의 부를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정말 게을러서 팽팽 노는데, 워낙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 써도 써도 줄지 않는다고 한다.

두 사람 다 행복할까?


나이를 먹어도 늘 철이 없는 나이긴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적당한 노력과 적당한 건강과 적당한 휴식과 적당한 성공이 행복을 가져온다.

양극단에 치우친 삶은 각자의 욕망일 뿐. 정작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말자 하면 가족이야기인데, 나는 막내라서 오빠와 나이차이가 꽤 난다. 오빠가 70이다.

토요일 칠순이라 양 가족들 모여서 식사를 한 모양이다. 나는 가지 않았다.

양가라 함은 큰 언니의 친정식구들과 우리 친가들로 사돈으로 40년씩 서로 얼굴들을 본 사이인데

거기에 북적거리며 끼어서 밥을 먹는 것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조용히 나중에 가게로 찾아가던지, 두 사람 앞에 조용히 내 이야기를 서로 하는 것이 더 낫다.


언니의 전언으로는(그 전언이 3시간의 통화이다 ㅠㅠ) 재산은 많아도 쓸 줄을 모르고 아직도 계속 일을 하는 데다가 언니의 사주는 모으는 사주라서(돈을 모으는 게 취미다) 그만둘 수도 없는데, 파킨슨 초기 증상이 있다고 한다. 오빠라고 건강하겠는가. 두 사람다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이를 악물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70이다.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쪽은 또. 조카며느리도 결혼한 지가 한참인데 아이가 없다.

둘째 언니를 붙들고 조카며느리가 한쪽 구석에서 펑펑 우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시어머니 붙들고 울기엔 좀 그럴 것 같고 늘 편하고 착한 둘째 언니를 붙잡고).

시험관 아이가 안 들어서고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없지 않다. 장조카 나이도 벌써 37세라고 한다.

나 어릴 적 기저귀 갈던 놈이 내일모레 사십이라니......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것이다.

아직은.


4년 있으면 또 둘째 오빠가 70이라고 한다.

엄마를 보내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러다 조금 있다가 우리 차례가 오는 수순.


20살이 오기 전에 죽을 것이라고 굳게 믿던 소녀가 있었다.

10대 시절부터 살기 싫었던 아이다.

그런데 21살 셋째 오빠의 죽음을 보고도 기어이 자살도 안 하고 질기게 살더라.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생각보다 삶이 질기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은가?


며칠 전 뉴스에서 스쿨존 사고로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그날따라 아침밥도 잔뜩 먹고 룰루랄라 하면서 학교를 가겠다고 나선 아이가 몇 분도 안되어서......

뉴스를 보다가 후드득 눈물이 흐른다.


아이가 뭐 잘못한 일이 있나? 뭐가 잘못돼서 그런 게 아니다. 그 잠깐의 순간이 생사를 갈라놓았다.

우린 그런 삶 앞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한 없이 미약하고 나약하고 그러나 개미처럼 견디고 부지런히 살려고 노력하고.


지금 당신 앞에 거대한 장막이 드리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힘들더라도  힘든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도 있으니 안도하고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버티다 버티다 안되면, 피로든 과로든 스트레스로 먼저 기는 사람도 있고, 살고 싶어도   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죽음으로 생을 끝내려던 것을 그리 하지 않은 이유는.

굳이 죽으려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을 안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벼랑 끝에 서 있을 것이다.

원하지 않아도 그리 몰릴게 뻔한.

그 앞에서 뛰어내리던, 단 몇분이라도 더 살려고 나무줄기나 풀데기를 잡고 버티던 누구에게나 그 순간이 온다.


혼자만의 사투.


다만,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두루두루 사람들을 만나고, 소식을 전하고, 공감을 하고, 소통을 하며, 마음이라도 털어놓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직 추모 기간이거나 애도의 기간이다.

사람에게나 쓰는 용어이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그냥 그렇다.


21그램.

"겉모습은 달라도 영혼의 무게는 같다"라는 브랜딩 슬로건이 보인다.

또 화장하고 나면 아이가 겨우 21그램이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마도 최초의 아이 아롱이가 21그램이었던 듯하다.


대박이는 큰 아이라 900그램 정도가 된다. 사랑하는 아이를 보내는데도 사람처럼 조용하고 예의를 갖춰 보내주어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아직도 사체 처리는 쓰레기봉투이거나 아무 곳에나 묻거나 버리거나... 15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둘째 오빠네가 한강으로 놀러 오고 잔디밭 근처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애견 사체를 발견한 일도 있었다. 자리를 옮겼지만, 아무 곳에나 어떻게 버릴 수 있는지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만 가득했던 기억.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청난 노력이다.

환희의 순간이 있었고, 성공의 짜릿함도 있었고, 세상 부러울 게 없던 시절도 있었다.

결혼 한 번도 못해본 사람도 있는데, 결혼도 해봤고, 아이도 장성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삶이 우리를 속인 적은 없다. 삶은 그저 적나라했을 뿐.

서로의 출발점이 꼭 평등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생물의 삶인데.


“시간의 시차만 있을 뿐, 우린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할 고통이 산더미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래서 세상이 공평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많은 일에 순응하며 감사하며 살자.

이만큼이 다행인 것이다.


그리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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