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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Jun 20. 2023

개가 죽어서요

-첫 산책-

여긴 어디 인가?  나는 누구인가?


대박이 첫 산책이다.

아직 어려서 모든 감염에 대비해야 해서, 집에서 한강까지 사람 걸음으로는 15분이면 될 것을 한 시간도 넘게 걸은 것 같다. 사실 왜 안 그렇겠는가? 우리의 입장이야 늘 보던 자동차며, 사람들이며, 건물들이며 익숙하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들은 대박이의 걸음을 한발 한발 내딛는 것조차 엄청난 용기였을 것이다.


1차 접종 (6~7주) : 종합백신(DHPPL)+코로나백신
2차 접종 (7~9주) : 종합백신(DHPPL)+코로나백신
3차 접종 (9~11주) : 종합백신(DHPPL)+켄넬코프
4차 접종 (11주~13주) : 종합백신(DHPPL)+켄넬코프
5차 접종 (13주~15주) : 종합백신(DHPPL)+캐니플루
6차 접종 (15~16주) : 광견병+캐니플루

대략 이런 것이 기본 접종이고 여기에 심상사상충과 파보 같은 특수한 예방 접종을 더 추가한다.

사람도 태어나서는 3년 내내 접종을 하듯이 개들도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땅에서 아무것이나 신기한 것은 뜯고 씹고 맛보는 아이들이라,  집어 먹고 탈이 나는 경우도 어린 강아지에겐 흔한 일이어서 산책 시에도 주의를 많이 기울여야 한다.

사실, 내가 꿈꾸는 산책을 2년간은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첫해에는 아이가 크면서 호기심이 너무 많아, 고양이만 나타나면 갑자기 덤불숲으로 뛰어 들어가서 나는 무릎이며, 손바닥이며 산책하면서 성한 곳이 없었다. 갑자기 튀어 나가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늘 긴장하면서 끈을 잡아야 하고 견주라면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에 주인인 나나 반려견이나 적응 시간이 꽤나 필요하다.


나중엔 내 손의 오른쪽 악력은 무슨 유도 선수급으로 강력해졌지만.

그래도 한강으로 나오니 표정이 자연스러워졌다. 역시 사람이고 강쥐이고 간에 자연은 늘 안식의 기분을 준다.

아직 초봄. 겨울에 태어나서 2달이 지났고, 1월 말이나 2월 초쯤 되었을 것 같다.

대박이는 당최 뛰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에게 저항하느라 앙앙 한 일 외에는 잘 짖지도 않아서.

나는 혹시 애가 벙어리인가?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부르면 콜이 되는데 무슨 개가 오질 않는다.

대박이라고 아무리 자기 이름을 불러도 한번 돌아볼 뿐.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는 성격이다.

그것이 시베리안허스키의 성격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아기들도 조금씩 눈을 맞춘다. 점점 더 주인을 알아보고 애정을 갖기 시작하는.

저 파아란 목줄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너무 작아서이다. 두루마리 휴지 정도의 둘레랄까?

나중엔 가슴줄로 했을 때 저 목줄은 대박이 다리 하나 감싸지 못했을 텐데...


산책 중에 하나 웃겼던 이야기는.

어느 날인가는 애가 뭘 토했는데 보니까, 이건 산삼뿌리도 아니고, 길이가 족히 50cm는 되는 뿌리였다.

그걸 아들과 들여다보면서....

아니 도대체 맨날 지켜봤는데, 이걸 언제 먹은 거야?

아들도 '글쎄... 정말 불가사의하다" 하고,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는 닭가슴살을 녹이려고 싱크대에 올려놨는데, 난 나중에 그게 사라진 줄도 몰랐다. 사실 나도 엄청 바쁜 사람이라.

그런데 대박이가 토하고 보니, 보통 육가공 식품 밑에 까는 피를 흡수하는 스펀지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유추한 것이 이 아이가 그 팩을 먹었구나 하는 거였다.


정말 조용히 침착하게 진행된 아이의 존재감.


그래도 그런 와중에도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자라주었고, 길 가다가 소시지 껍질을 확 먹어서 식겁한 날도.

무리 없이 잘 지나가서 다행이었다.

그런 모든 서툰 경험과 뜻밖의 위험과 최초의 경험과 모두,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난다.

참 귀엽던 녀석이었다.


아가인 대박이는 작고 여리고 그러나 앙칼지고 모험심이 강했던.

그러한 모두의 경험을 아들과 내게도 안겨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다시없을 나의 아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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