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네 남자냐?
“총각이... 처녀 만나는데
이유가 필요해요?”
퇴근 준비로 분주한 시간
전화벨이 울렸어.
“누구... 시죠?"
그때 전화기 저편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어.
마치, 천년 잠에서 깨어난 구렁이가
입을 떼는 것 같았어.
“총각이... 처녀 만나는데
이유가 필요해요?”
헉!!
"초. 총각이 처녀...
아..."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지 뭐야.
짧고 단순한 한마딘데
숨이 턱 막히는 거 있지?
늘 까칠하고 기고만장하게
일언지하에 거절하던
철벽녀 굳건한 아성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
그 정체를
확인해야 할 이유가 생긴 거지.
무언가에 홀린 듯
약속한 카페에 들어섰어.
"첫 만남부터 늦다니..
가 버릴까?"
순간, 망설이는데
그가 헐레벌떡 나타났어.
두리번거리며 한 손으로
습관처럼 머리를 쓸어 올리더라
어라!!
한 덩치 하더라
백 킬로가 뭐야?
카페 자동문 고장 안 났나 몰라
키?
180은
훌쩍 넘는 듯
마치, 카페 천장하고 맞짱 뜨는 줄
내가 좋아하는
천하장사 이 모 씨가
눈앞에 강림한 줄 알았지 뭐니
"훗!!"
우리 엄마 평소 지론이
뭔 줄 아니?
“남자는 자고로 듬직하고 입이 무거워야 한다.
느그 아버지 같으면 안 된다.”
서로 어색하게
눈인사 건네는데
이가 보이지 않게
입술로 씩! 웃는 걸 보니
엄마가 말한 사람이
이런 사람인가 싶더라.
평소 한 성깔 하던 내가
순간 능금처럼 상기되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가관이었지 뭐니.
아마 머릿속으로
하얀 드레스 자락이 얼핏
스쳐 간 듯도 해
아! 이건 필시
하늘이 보낸 사람이다!
긴 세월 살아오진 않았지만
내 촉은 틀린 적이 없거든?
그런데 이 남자,
미소만 짓고
도무지 입을 뗄 생각을 안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대수겠어!
그동안 남자라면
그림자라도 닿을세라
까칠하게 군 결실(?)
그게 이게 아닌가 싶더라.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어
"심봤다!!"
교회도 나가지 않은데
내 입은 저절로 방언이 터졌어.
묻지도 않은 내 삼십 년 인생사를
암기라도 한 듯 지껄여대기 시작했어
아마 트로트 가수 이 박사가
왔다면 줄행랑을 쳤을 거야.
이전에 소개팅할 때
새초롬하게 입술만 달싹거리던
내가 아니더라고.
그런데 한 시간이 넘도록
이 바위 같은 남자가
주절대는 내 입만 보면서
빙긋이 미소만 짓는 거야.
진중한 것도 좋지만
사람을 불러놓고 이러는 건
아니지 싶었지.
평소 같으면
벌써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듯
포르르 화를 냈을 텐데,
그 미소의 의미가 뭐겠어?
저렇게 입이 무거운 사람이
전화할 때 보통 마음이었겠니
뭔가 깊은 내심이 있을 거야.
묻지도, 하지도 않은
마음까지 배려하면서
쉴 새 없이 지껄이다 보니
입술도 타 들어가고,
얼굴은 발그레,
햇덩이가 된 꼴이라니...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는지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
그 남자도 눈치챘나 봐.
헛기침을 하더니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더라.
드디어
한 시간 넘도록 아낀 말을
하려는 거지.
가출하려는 심장을 간신히 붙들고,
지진 난 동공에 힘을 주었어.
일초가 백 년 같았지 뭐...
"우리 진지하게 한 번 만나보실래요?"
"담주에 영화 한 편 어떠세요?"
대충
이런 말 하려는 게 아니겠니?
뭐, 살짝 못 이기는 척
~ㅋㅋ
어휴!!
내 속은 가뭄에 논바닥처럼
쩍쩍 타들어갔어
드디어
이 남자 결심했나 봐
헛기침을 내뱉더라
그리고선
드디어...
거대한 롤러처럼
그 남자 입술이 움직였어.
...
...
...
"저.. 예쁘고, 얌전한 친구 있어요?
소개 좀 시켜주시죠!!"
?????